[헤럴드POP=장민혜 기자]'방구석1열'이 영화 '동주'와 '덕혜옹주' 이야기를 나눴다.
1일 방송된 JTBC '방구석1열'은 3.1절 100주년을 맞이해 3.1 운동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영화 '동주'와 '덕혜옹주'를 다뤘다.
이날 '동주' 각본과 제작을 맡은 신연식 감독, 한국의 역사를 이야기해 줄 최태성 강사와 오은 시인이 함께했다.
최태성 강사는 "3.1 운동을 맞이해서 의미 있는 영화 두 편이 선정됐다고 생각한다. 80여 년밖에 안 되는 시간들인데 그 가까운 시간 동안 그런 일이 있었는지 돌아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오은 시인은 "2000년대 초반 포털사이트 가입할 때 닉네임을 '불현듯'이라고 지었다. 불현듯이라는 아이디를 정하고 보니 불현듯 시인이 되고 불현듯 입사와 퇴사를 하고 어떤 것들이 불현듯인가 싶다"라고 밝혔다. 그는 젊은 층에게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일단 얼굴은 아니다. 시인이 잘해야 할 게 관찰 같다. 제가 보는 게 청년에 관한 시를 많이 써서 좋아해 주시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첫 번째로 다룬 영화는 '동주'였다. 신연식 감독은 "이준익 감독과 한국 영화 감독 조합에서 만났다. 먼저 이준익 감독님과 서울로 와야 했다. 이준익 감독님과 기차 안에서 기획을 시작했다. 그날 바로 기획을 했고 다음 주까지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신연식 감독은 "그때 이준익 감독님이 '사도' 각색 중이었는데 그때 제가 사무실 월세도 밀리고 있어서 치고 들어가려고 빨리 썼다"라고 밝혔다. 신연식 감독은 "이준익 감독님이 관심 있는 인물들은 뭔가 하고 싶어 한다. 뭔가를 못 한다"라고 전했다. 장유정 감독은 "뭔가 하나의 열린 희망을 꺼내고 끝난다. '동주' 마지막 장면에도 동주와 몽규의 행복한 장면이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신연식 감독은 "OST '자화상'은 강하늘이 부르고 제가 가사를 썼다"라고 덧붙였다.
신연식 감독은 "예산을 줄이기 위해 한국 로케이션으로만 촬영했으며, 보조출연자도 일인다역이다. 같은 건물에서 네 도시를 촬영한 적도 있다"라고 밝혔다.
최태성 강사는 "'동주'라는 시인이 나왔을 때 제가 좋아하는 시인인데 망하면 어떡하지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신연식 감독은 "윤동주 시인으로 장르 영화를 만들 수도 없고 그분을 이용해서 너무 상업적인 영화를 만들 수도 없었다. 이준익 감독은 그런 부담이 있었을 거 같다"라고 말했다.
신연식 감독은 "저희가 캐스팅정할 때만해도 강하늘, 박정민 씨가 지금 정도로 유명하지 않았다. 강하늘 배우를 택한 이유를 두 시간 동안 연설했다"라고 밝혔다.
장유정 감독은 "8대2 가르마를 하고 안경을 쓰고 가서 캐스팅 됐다고 한다. 박정민 배우 같은 경우 북간도 사투리를 하면 한 단어를 할 땐 어려운데 그걸 소화하더라"라고 말했다. 장유정 감독은 "고뇌하는 연기를 다각도로, 안면 근육까지 섬세하게 사용해 식민지 시대 시인의 고뇌를 열연했다"라고 덧붙였다. 주성철 편집장은 "극중에서 강하늘 배우가 삭발 당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데뷔 후 처음으로 삭발한 거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오은 시인은 "열등감이 있었기에 윤동주 시인은 시를 썼다. 시는 자기 고백의 장르다. 자기는 어느 순간도 주인공인 적이 없었던 거다. 자기 인생에서는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주체적으로 하지 못하고 혼쭐이 나고. 반면에 몽규는 외향적이고 영향력 있고 열패감으로 변할 수 있는 감정이다. 동주는 묵묵히 견뎠다. 집필하고 항상 품고 다녔다고 한다. 언젠가는 출판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라고 말했다. 윤종신은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거 같다"라고 덧붙였다. 장유정 감독은 "그 당시 주인공은 송몽규였지만, 지금은 윤동주 시인이다"라고 말했다.
'서시'를 마지막에 넣은 데 대해 신연식 감독은 "이준익 감독이 하자고 하는 순간 한치의 고민도 없이 '서시'를 엔딩 장면으로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오은 시인은 "'서시'는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들어가 있다. 윤동주의 다음을 생각하게 하는 시 같다"라고 말했다.
오은 시인은 "시든 소설이든 창작 불가능했다. 1910년대에 강압 정치를 펼쳤기 때문이다. 1930년대 이후 검열로 제재했다. 직접적인 저항시보다 속에 담아내려고 하는 저항 문학이 빛을 냈다"라고 전했다. 신연식 감독은 "지금 20-30대는 지나치게 기성세대들이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있고, 인구도 많다. 과거에는 그러지 않아서 시대를 선도할 수 있었는데 지금 청춘들에게는 주어진 환경이 마땅치 않다. 구시대적 가치관은 결국 무의미해지는 시대가 올 거기 때문에 너무 좌절하지 않고 100년 전 동주와 몽규처럼 저항하고 그런 정신이 나와줬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두 번째로 다룬 영화는 '덕혜옹주'였다. 주성철 편집장은 "투자가 잘 안 될 때 10억 원을 직접 투자했다고 하더라"라고 입을 열었다. 허진호 감독이 덕혜 옹주를 주제로 만들게 된 데에 대해 장유정 감독은 "덕혜옹주에 관한 다큐를 보게 됐다고 하더라. 귀국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하더라. 굉장히 나이가 들어 보이시더라. 옹주님이라며 우는 장면을 보고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더라. 그때 소설 '덕혜옹주' 이야기가 소설로 나오며 100만 부가 팔렸다"라고 말했다.
최태성 강사는 "팩션 사극을 보면 주의해야 할 게 있다. 덕혜옹주가 항일 운동을 한 건 거짓이다. 황실에 대해 우리 민족이 가졌을 기대를 보여주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종이 항일 의지를 보여주지만 역사에서는 그런 적 없다. 비극적 요소를 끌어올리기 위해 고종을 저항의 아이콘으로 만든 듯하다"라고 덧붙였다.
최태성 강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덕혜옹주에게는 비극이었다. 짓눌릴 수밖에 없었던 거 같다"라고 말했다. 장유정 감독은 "정체성의 혼란 끝에 자기 자신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던 거 같다"라고 덧붙였다. 최태성 강사는 "대한제국 황실의 딸 모습이 저랬다면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위안부 등이 생각났다. 그들의 꿈은 단순했다. 그걸 못했다. 대한제국 황실 비극을 통해서 일제강점기 평범한 사람들의 아픈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게 아닐까 싶었다"라고 말했다.
최태성 강사는 "황족들을 한순간에 없애면 굉장한 저항에 부딪힐 수 있기에 황족을 일본인과 혼인시켜 서서히 소멸시키려는 목적이었는데 100% 성공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종이 자식을 많이 낳았다. 그중 오래 살았던 건 순종, 영친왕, 의친왕, 덕혜옹주다. 영친왕은 영화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망명 의지가 없는 사람이었다. 일제와 타협한 왕족이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에야 귀국했고 사망했다. 의친왕은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영화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망명하려 했던 건 의친왕이었다. 만주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당했다. 일본으로 다시 보내려고 하는데 거부하고 광복되고 나서 황족들을 이승만 정부가 돌보지 않았고 6.25 전쟁 중에 영양 실조로 사망했다. 의친왕 아들 이우는 광복을 보지 못하고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폭으로 사망했다"라고 밝혔다.
윤종신은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까지 새로운 체제를 만들려는 사람은 왕족을 원하지 않았던 거 같다"라고 말했다. 최태성 강사는 "다시 황족을 중심으로 뭉치자는 세력이 나올 수 있었기에 집권 세력은 황족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오은 시인은 "덕혜옹주와 의친왕은 철저히 이용당한 거 같다. 일본으로 갔을 땐 일본의 정통성으로 이용당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한국의 정통성으로 이용당했다"라고 말했다.
최태성 강사는 "덕혜옹주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다 1989년 낙선재에서 생을 마감했다. 실제로 '전하 비전하 보고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라고 마지막에 남겼다"라고 전했다. 그는 "3.1 운동 이전 주인공이 덕혜옹주와 같은 황족이라면 3.1 운동 이후는 동주 같은 시민이었다. 시민들이 새로운 세상을 외치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출발점이 된 듯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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