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천윤혜기자]만력제가 묻힌 정릉의 저주가 실제로 있었던 것일까.
24일 방송된 MBC '서프라이즈'에서는 정릉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졌다.
1956년 중국의 한 마을, 노부부가 원인 불명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마을에는 사남매가 사망한 채 발견되기도. 그 밖에도 비슷한 시기 또 다른 마을 주민 역시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한 마을에서 7명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자 그들의 죽음이 한 무덤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무덤은 만력제가 묻힌 정릉. 천수산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황제가 묻힌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왕릉이 있었다. 명십삼릉이라고 불리는 이 왕릉에는 13명의 황제, 7명의 후궁, 1명의 태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1955년 만력제가 묻힌 정릉의 발굴 계획이 발표됐고 일부 학자들은 부족한 기술력으로 인한 왕릉 훼손 위험을 이유로 반대했다. 그럼에도 베이징 시 부시장 우한은 정릉 발굴을 강행했다.
발굴이 시작됨과 동시에 2달간 빗줄기는 쏟아졌고 무덤을 지킨 수호상들이 벼락에 깨지고 무덤 입구를 지키던 두 명의 인부는 번개에 맞아 사망했다. 그럼에도 발굴은 계속됐고 3000여 점의 문화재가 출토됐다.
우한은 유해만 옮긴 후 유해가 담겼던 관은 폐기하라고 지시했고 공교롭게도 만력제의 관을 가져간 부부가 얼마 안 있어 사망했다. 특히 두 부부가 발견된 장소는 만력제의 관을 이용해 새롭게 만든 관 속이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후 폐목재를 주워간 부부의 아이들이 사망, 정릉 발굴 현장 감독관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 발굴 현장 사진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정릉의 저주라는 소문이 돌았고 중국 내에서는 황제의 능을 함부로 발굴하지 않겠다는 정책이 형성됐다. 그리고 1969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며 우한이 체포됐으며 옥중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역시 정릉의 저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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