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이유진기자]최악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인생이 공개됐다.
11일 방송된 SBS '과몰입 인생사'에서는 오늘의 인생 텔러로 정치외교학자 김지윤이 등장해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인생을 설명했다.
김지윤은 "1987 포브스 선정 세계 10대 부자, 미국 CIA가 치를 떨었다는 악인 중 악인, 최악의 마약왕"이라고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소개했다.
김지윤은 "파블로는 코카 잎을 코카인으로 만들었다"며 "부자들이 코카인을 많이 원하자 미국에 대량으로 팔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고민 끝에 파블로는 바하마라는 섬을 샀다. 김지윤은 "파블로가 신호를 보내면 바하마 섬에 있는 수백 채 집이 바퀴벌레처럼 흩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지윤은 "콜롬비아에서 가져온 마약을 미국 해안에 뿌렸다"며 "미국 코카인 75%가 파블로의 마약이었다"고 설명했다.
파블로는 마약 조직들을 통합시켰다. 조직원만 10만 명이었다. 해당 마약 대기업의 이름은 메데인 카르텔이었다. 하루 수익이 6천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800억 원이었고 연간 수익은 28조 5천억 원이었다. 김지윤은 "파블로가 돈이 어느 정도로 많았냐면 딸이 추워하면 땔감으로 돈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태운 돈이 26억원"이라고 설명했다.
패널들에게 김지윤이 "이 정도 돈을 번다면 뭘 하고 싶냐"고 묻자 이찬원은 "저는 몇 십조 벌었으면 90%는 사회에 환원할 것 같다"고 답했다. 송해나가 "진짜 그 돈이 있다면 그런 생각이 들까요?"라고 묻자 이찬원은 "아니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손 털고 이민 가서 제2의 인생을 산다'와 '메데인에 남아 빈민가를 돌본다' 중 선택해야 했다. 파블로의 실제 선택은 빈민가를 돌보는 것이었다. 쓰레기 산이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했다. 학교를 세우고 집을 짓고 축구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면 돈뭉치를 쥐어줬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찬원은 "빈민으로 살았다 보니까 빈민으로서의 고충을 알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했다.
파블로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자신의 자식이었다. 자식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어 선행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결과 메데인 시민들은 파블로를 '로빈 후드'라고 부르며 영웅으로 여겼다. 이찬원은 "당장 내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준 사람이니까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국회의원 선거 출마'와 '미국에 공급을 중단하고 몸을 사린다' 중 선택해야 했다. 파블로의 선택은 국회의원 선거 출마였다. 전문가들은 당시 파블로가 미국을 포기했다면 일본, 홍콩이 잘 사는 나라였기 때문에 아시아를 노렸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파블로는 1982년 의회 의원으로 당선이 된다. 그러나 엘리트 변호사 출신 법무부장관 로드리고 라라 보니야가 파블로에게 재산을 어떻게 모았는지 의심했다. 이에 파블로는 "법무부 장관이 나를 모욕했다"며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실제로 라라 보니야가 마약 밀매 머그샷을 증거로 제출했고, 파블로가 신문 1면에 실렸다.
파블로는 아들에게 "사람들이 널 좋아하지 않으면 존중하게 만들고, 존중하지 않으면 두려워하게 만들어라"라고 말했다. 다음날 법무부 장관이 살해 당했다. 그때부터 국가가 카르텔과 싸우기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파블로는 돈으로 사람들을 매수했다. 뇌물을 거절하면 총으로 쏴서 죽였기 때문에 '은 또는 납'이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결국 대법원 안으로 테러범들이 들어갔다. 국가와 테러범들의 싸움이 27시간 동안 지속됐고 그 싸움 도중 100여 명이 사망했다. 파블로는 "나는 신이다. 내가 저 사람 죽는다고 하면 반드시 죽기 때문"이라는 말을 남겼다.
민간 항공기를 탄 대통령 후보를 죽이기 위해 민간 항공기를 폭파시킨다. 아비앙카 203편 폭탄 테러 사건이었다. 그런데 수속 직전, 발길을 돌려 살아남은 가비리아는 결국 대통령이 됐다. 파블로가 직간접적으로 죽인 사람은 6천 명 이상이 넘었다.
대통령 가비리아가 "자수하면 형량 감형하고 미국에 보내지도 않겠다"며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자수를 했다. 파블로의 수감생활은 호화로웠다. 개인 사무실, 드레스룸, 헬스장, 축구장, 연회장까지 딸려있는 별장같은 곳이었다. 이찬원은 "저게 감옥이면 저도 저기 간다"며 허탈해했다.
파블로는 조건을 세 가지 걸었다. 직접 만든 감옥에 들어가는 것, 교도관과 재소자를 직접 선택하는 것, 감옥 3km 이내에 미국 접근 금지를 조건으로 걸었다. 콜롬비아 정부는 파블로가 마약 사업을 지속하되, 테러를 금하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파블로가 감옥에 갇혀 있음에도 테러와 살인이 이어졌다. 심지어 감옥 안에서도 살인을 했다.
결국 콜롬비아 정부는 파블로의 폭주를 멈추기 위해 파블로를 군 감호소로 옮기려 했으나 이를 미리 알게 된 파블로가 탈옥했다. 그러나 밖의 상황은 예전과 달라졌다. 로스 페페스라는 모임이 생겼다. 파블로에게 살해된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포기하지 않은 파블로는 가족들을 해외로 보냈다. 그러나 입국 거부 되어 가족들이 다시 돌아왔다. 파블로는 더이상 손을 쓸 수 없었다. 가족에게 전화를 해 안부를 묻던 파블로는 위치추적을 당해 결국 머리에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파블로의 죽음 이후 콜롬비아의 코카 농장은 3배 이상 늘어났다. 빠니보틀은 "파블로는 지옥 문을 열어놓고 지옥에 들어갔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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