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플러스 '강호동의 밥심' 방송 캡처
SBS 플러스 '강호동의 밥심' 방송 캡처

[헤럴드POP=천윤혜기자]최제우가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눈물을 보였다.

18일 방송된 SBS 플러스 예능 프로그램 '강호동의 밥심'에서는 최제우가 출연했다.

1990년대 대표 하이틴스타 최창민은 최제우로 개명했고 역술인으로 변신했다. 그는 "강 사장님 보니까 올해 금전 거래를 조심하셔야 한다. 큰돈 나갈 일들이 있는데 사업을 벌일 흐름이 아니다"고 강호동의 올해 사주를 예상했다. 이어 "남창희 씨는 혹시 썸 타고 계시는 분 안 계시냐"고 물었다 2022년과 2023년이 결혼할 수 있는 사주다. 성혼의 인자도 있지만 아이 출생과 관련된 입태 기운이 있다. 같이 들어오기 때문에 가을 시기가 있을 거다. 결혼을 하셔서 와이프가 생기시면 금전 형태의 발전도 빨라진다"고 해 남창희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이어 명리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최제우는 "방송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못했다. 영화도 안 됐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지 생각을 했다. 그러다 이름 바꾼 것도 일이 너무 안 풀려서 공부하기 전에 바꿨다. 그런데 이름을 바꾸고 나서 활동성에 변화가 없었다. 우연치 않게 친구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사주 보는 선생님을 보러 가라고 해서 같이 갔다. 그분이 저를 쳐다보시더니 '20대에 죽었어야 했는데 왜 살아있지?' 하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20대 때 너무 힘들어서 극단적인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그걸 공부하면 제 인생을 알 수 있냐'고 해서 배우기 시작했다. 내 왜 힘들게 살아왔는지 알게 되니까 그 다음부터는 화도 안 나고 누가 밉지도 않다"고 했다.

그는 또한 커피 우유를 보더니 "태어나고 제일 처음 먹은 게 커피 우유"라고 전했다. 최제우는 "태어났을 때 형님과 17살 차이가 난다. 제가 막둥이로 태어났는데 저희 집 환경이 가난했다. 옥수동이 산동네였을 때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나이가 많으시니까 모유를 할 수가 없었다. 분유를 제가 잘 먹었다고 한다. 형이 저 때문에 일찍 생계에 뛰어들었는데 우연히 커피우유를 먹였는데 잘 먹더라고 하더라. 커피우유가 분유보다 싸니까 먹은 거다"고 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최제우는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어린 시절에 대해 회상했다. 그는 "5학년 때 동네에 장의사 하는 분에게 보조를 하겠다고 했다. 안 된다고 하셨는데 할 수 있다고 하고 잡일만 했다. 2주 됐을 때 교통사고를 당하신 분이 오셨다. 헛구역질하고 토했다. 아저씨가 저한테 수고비를 주시는데 미안해서 '2만원만 가져가겠다'고 하고 통장에 넣었다. 그 알바를 하고 산동네다보니까 분뇨 차가 올라오지를 못해서 사람의 손으로 덜어내야한다. 분뇨 지게를 지고 수거도 했다. 어린 나이 때부터 미친 듯이 돈을 벌고 싶었다. 막내인데 저를 예뻐만 해주셨다. 저는 자립적으로 하겠다고 싫다고 했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일을 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놀 수도 없었던 상황. 최제우는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을 가야 했다. 연탄을 갈았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까 연탄을 갈고 다시 나가기에는 너무 늦다. 이럴 바에 다른 알바를 찾아서 하면 밥벌이를 할 것 같았다. 그거 번 돈으로 육성회비를 냈다. 밤에 알바비를 식탁에 놓는다. 아침에 밥 먹으면서 '용돈 좀 주세요' 했다. 그걸 너무 해보고 싶었다. 돈을 드리면서 너무 뿌듯했다"고 해 뭉클함을 자아내기도.

최제우는 과거 농구 선수를 꿈꿨던 일에 대해서는 "'마지막 승부'를 보면서 농구를 잘하면 장학금 받으면서 대학교를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알바비로 농구공을 사서 연습했다"고 했다.

또한 "우연히 방송국을 갔다가 룰라 댄스팀 단장으로부터 권유를 받고 방송일을 시작했다고. 그는 "돈도 벌 수 있냐고 질문하니까 잘하면 벌 수 있다고 하시니까 가서 배웠다. 그러다 방송에 나가야 하는 형 한 명이 다리를 다치셨다. 그때 저보고 해보라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되더라. 그렇게 방송에 나갔는데 단장님이 잘 하신다며 주전 자리로 올라갔다. 박지윤 씨 했었고 제일 많이 했던 건 터보의 전속 댄서가 됐다"고 설명했다.

최제우는 당시 인기에 대해 "팬클럽이 생겼다. 터보 형들은 음악적으로 인기가 많았는데 그거에 비해 팬분들이 많지 않았다"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조인성보다 더 인기가 많았다는 말에는 "댄서로 유명해지면서 모델 제의를 받았다. 1기 모델로 활동했는데 그 매장이 70~80개가 생겼다. 그 뒤에 조인성 씨가 3기 모델을 하셨다. 그때 당시에 조인성 씨는 신인이었다"고 하기도.

최제우를 응원하기 위해 김승현과 김형준이 찾아왔다. 김승현은 "그 당시 음악 프로그램 MC를 본 적이 있었다. H.O.T.와 젝스키스와 함께 1위 후보에 올랐었다"고 최제우의 당시 인기를 증명했다. 이에 최제우는 "1위에 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겸손해하기도.

최제우는 김승현과 처음 만났을 당시를 회상하며 "모델할 때 봉고차에서 처음 봤다. 키 크고 호리호리한 사람이 옆에 타길래 '형'했다. 그러니까 '동갑'이라고 화를 내더라"고 했다. 그러자 김승현은 "저는 촬영 전날 남자 모델이 온다고 해서 찾아봤었다. 농구를 좋아하니까 급격하게 친해졌다"며 친분을 다지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김형준은 최제우와 친해진 계기에 대해 "안무연습실이 같았는데 팬들이 많이 있어서 '팬들이 많이 왔네' 하면서 내렸다. 환호성이 들릴 줄 알았는데 최창민 씨 팬이었다. 거만하게 가다가 깨갱했다. 그런 적이 두 번 있었는데 그게 서태지 씨가 4년 7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다"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최제우는 갑자기 방송 활동을 멈춘 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활동을 하다가 소속사에 사기를 당했다. 어렸을 때 힘들게 자란 환경이었어서 회사도 없고 차도 없고 그런 분들과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 저는 이분을 믿었어서 통장과 인감도장을 드렸었는데 합병이 된 후에 잠적하셨다. 제가 번 돈들도 집안에 안 주셨더라. 1~2년 사이에 벌었던 돈들이 5억 이상은 됐다. 하지만 제가 갚아야 할 빚이 2억이 됐다"고 해 안타까움을 유발했다.

그러면서 "합병한 회사에서는 이중계약된 돈을 토해내라고 하면서 밤업소 다니면서 갚으라고 했다. 그런데 너무 하기 싫어서 밤에 밖에 나가서 전봇대에 팔을 쳐서 부러뜨렸다. 계약금으로 묶인 1억을 일용직을 하면서 갚았다. 일용직하면 하루에 5만 5천원 정도 받는다. 제가 쓸 수 있는 돈은 지하철비였다. 3년간 그렇게 모았다. 그때 고소공포증이 생겼다. 줄 하나로 버티다가 미끄러져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30대 넘어서도 가끔 일용직을 했는데 그때 다친 손가락이 낫지 않았다"고 했다.

힘들게 돈을 다 갚은 최제우는 자기에게 사기를 친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고. 그는 "그 대표님한테 전화를 했다. 용서할 테니 같이 잘해보자고 하려 했는데 대표님이 안 받고 어머니가 받으셨다. 저한테 존댓말을 하시더라. 안되는구나 싶었다. 그때 진짜 많이 울었다. 설렘이 한순간에 63빌딩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 돈을 갚은 게 엄마한테 미안하기도 했다. 혼자 나쁜 생각도 많이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 그에게 깜짝 선물이 도착했고 그 선물은 최제우의 엄마가 쓴 편지였다. 어머니는 최제우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고 편지를 들은 최제우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는 "돈만 많이 벌어서 엄마 행복하게 하려고 했던 무지했던 사람인 것 같다. 편지를 써보지도 못했고 돈으로만 행복하게 만들어주려고 한 바보 같았다. 조만간 어머니한테 답장을 쓰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40년 살면서 제일 좋은 복채를 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제우는 김승현의 빚도 대신 갚아줬다고 밝혔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같은 회사였다. 왜 끌고 들어와서 얘 인생을 망쳤을까 생각했다. 그 회사의 문제를 승현 씨한테 떠안기기 싫었다. 1억이든 1억 1천이든 큰 차이 없다"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에 김승현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회상 사정은 자세히 몰랐다. 저는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갖게 돼 그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인데 회사 상황까지 알 여유가 아니었다. 그 당시에 아이 있다는 걸 고백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분위기도 편견이 많았다. 세 네살 쯤 됐을 때 세상에 알려졌다. 모든 방송활동이 다 중단됐다. 나가면 손가락질하니까 집안에만 몇 년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이러다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옥탑방으로 이사갔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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