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이소담 기자]허진호 감독이 '덕혜옹주'를 향한 호평에 감사를 표했다.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제작 호필름)이 지난 3일 개봉해 박스오피스 역주행을 이뤄내며 1위에 올랐다. 개봉 첫주 170만 관객을 동원한 '덕혜옹주'는 여전히 예매율 1위를 지키고 있다.
‘덕혜옹주’는 일본에 끌려가 평생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손예진/아역 김소현)의 이야기를 그린다. 손예진이 덕혜옹주를 연기하며 박해일이 덕혜옹주를 고국으로 데려가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 독립운동가 김장한 역, 윤제문은 친일파 이완용의 수하 한택수 역, 라미란이 덕혜옹주 곁을 지키는 궁녀이자 동무 복순 역, 정상훈이 김장한의 동료 독립운동가 복동, 백윤식이 고종황제 역, 박주미가 덕혜옹주 친모 양귀인을 연기한다.
영화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은 최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헤럴드POP과 인터뷰 도중 '덕혜옹주'가 예매율 1위로 올라서자 기쁜 마음을 표했다. 여기에 관객 호평이 이어지자 허진호 감독은 "정말 기분이 좋다. 사실 '덕혜옹주'는 촬영에 들어가기도 어려운 영화였다"며 "덕혜옹주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화 제작을 준비를 했을 때 주변에서 반대를 많이 했다. 가까운 사람들은 덕혜옹주의 인생을 영화화하기 쉽지 않다고 만류했다"고 털어놨다.
"'덕혜옹주' 영화 제작이 회의적이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덕혜옹주가 딱히 긍정적인 인물도 아니고 숨겨진 위인이거나 훌륭한 사람도 아니란 점 때문이었다. 그저 비극적 삶을 살다간 인물인데, 과연 관객들이 그런 영화를 보러 올까 싶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때마침 권비영 작가의 동명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잘 팔렸다.(웃음)"
반대도, 우려도 많았던 '덕혜옹주'. 허진호 감독은 "'덕혜옹주'는 분명 흥행 대작 공식에는 맞지 않는 영화였다. 하지만 무언가 있지 않았을까 싶었라. 딱히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DNA엔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긴 설움,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등에 대한 설움과 애환이 지금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며 "그렇기 때문에 덕혜옹주란 한 개인의 비극적 삶에도 공감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허진호 감독은 "분명 관객에게 뭔가 전해졌겠죠. 물론 덕혜옹주가 유관순 열사 같은 훌륭한 인물이 아니었더라도,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가슴을 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공감 하는 것"이라고 호평과 흥행 이유를 설명했다. '덕혜옹주'는 개봉 전 덕혜옹주를 독립운동가로 그리는 것 아니냐며 역사왜곡 의혹에 시달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덕혜옹주'는 시대의 아픔 때문에 벌어진 개인의 비극에 주목하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나간 그런 영화였다. 왕실 찬양도, 미화도 없었다.
허진호 감독은 "물론 '덕혜옹주'를 역사왜곡의 시선에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선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끼워 맞추기 식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개연성과 정당성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고민했다. 배우도 나도 스태프도 그런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며 "사실 영화 '덕혜옹주'는 픽션이잖나. 극화된 이야기가 들어가게 되는데, 그 안에서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덕혜옹주에 대한 기록이 많았으면 모르겠는데, 생각보다 기록이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들도 많았다. 또, 예를 들어 고종에 대한 판단도 현재 제각기 다르잖나. 고종 같은 경우, 지금까지의 작품에선 대부분 무능하고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캐릭터로 많이 다뤘다. 하지만 대한제국 시기에 망명하려던 것이나, 상해에 집을 마련했던 것 등에도 주목했다. 이 왕가의 차관으로 있었던 일본인의 일기를 읽어보면 일제가 고종에게 일왕에게 가서 무릎 꿇고 인사하라며 강압적으로 굴었음에도 안 가려고 했다는 기록이 있더라."
이어 허진호 감독은 "우리 영화는 실존인물을 다루는 것이지만 소설에서 가져온 극화된 부분이 있잖나. 김장환(박해일)과 복순(라미란)도 그렇고, 덕혜옹주를 비롯한 왕족의 망명 작전 같은 경우도 픽션화 된 느낌이 있다. 여기에 덕혜옹주가 연설하는 장면, 해방 후 출국장 장면 등 극화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것들을 가지고감에 있어서 시기는 달랐지만 비슷한 시도는 있었다고 들었다"며 "앞서 의친왕이 망명을 하려다 실패한 사건도 있었고, 상해 임시정부에서 영친왕 합류를 위한 망명계획을 추진했으나 사전 누설되어 실행되지 못하기도 했었다"고 설명했다.
"만약 덕혜옹주가 왕족이 아니었다면, 아버지가 독살당한 원수의 나라지만 왕족의 자존심이 없었다면, 고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덕혜옹주도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영친왕처럼 개인적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왜 정신을 놨을까? 왜? 아마도 어머니 양귀인의 죽음 등 그렇게 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게 영화 '덕혜옹주'를 만드는데 큰 축이 됐다."
그러면서 허진호 감독은 "실제로 안 그랬을 것 같아도, 만약 덕혜옹주가 한번쯤은 연설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학교를 만드는 장면은 영친왕의 엄마가 숙명여고를 만들었던 것에서 따왔다. 왕족들이 교육에 대한 꿈이 있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덕혜옹주 본인도 재능이 많았다. 노래 작사도 하고 그런 면에 있어서 교육이 중요하단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 영화를 구상했다"고 역사 왜곡보다는 극적인 장치를 위한 픽션이 영화의 본질을 해치진 않았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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