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혼’ 서사로 고착된 예능, 하차없는 안전지대 된 이유

“인생 2막” 아닌 서사 재활용…멈춘 창의성

‘신발 벗고 돌싱포맨’ 방송캡처
‘신발 벗고 돌싱포맨’ 방송캡처

[헤럴드POP=김나율기자]“이상민·김준호 씨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오히려 프로그램의 이야기가 더 확장됐죠.”

‘돌싱포맨’ 서하연 PD의 이 발언은 얼핏 새로운 출발선에 선 듯 들리지만, 실상은 익숙한 안전지대의 재포장일 뿐이다. 제작진은 ‘새혼’이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걸었지만, 결국 검증된 포맷에 몸을 의지하며 모험은 피했다.

한 예능 작가의 말처럼, 출연자의 개인사는 제작진에게 ‘가장 손쉬운 아이템’이다. 이혼과 재혼은 불편함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는 소재, 게다가 주요 시청층이 중장년층이니 시청률 보장은 덤이다.

최근 예능 무대 위에는 중년 남성 스타들의 연애·이혼·재혼 서사가 줄줄이 반복된다. SBS ‘돌싱포맨’, ‘미운 우리 새끼’는 이를 ‘새혼’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며 전면에 내세운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이제는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하차를 요구해도, 제작진은 그들의 연애 실패와 재혼 시도를 또 하나의 ‘콘셉트’로 포장해 내놓을 뿐이다.

물론 성적표는 확실하다. ‘미우새’는 매주 10%대 시청률로 주말 예능 1위를 놓치지 않고, 그 스핀오프인 ‘돌싱포맨’도 3~5%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요 예능 2049 타깃 시청률 1위를 지켜왔다. 시청률과 화제성을 다 잡은 안정된 포맷을 방송가가 쉽게 놓을 리 없다.

시청률 방패 뒤에 숨은 ‘가성비 예능’의 민낯

유튜브 ‘준호 지민’ 캡처
유튜브 ‘준호 지민’ 캡처

중년 남성 연예인을 중심으로 ‘결혼’ 또는 ‘이혼’ 서사나 콘셉트는 이미 여러 차례 소비됐지만, 제작진은 새로운 시도보다는 기존 서사의 반복에 머문다. 새로운 소재보다는 반복 가능한 소재를 활용해 제작 리스크를 줄이고, 동시에 시청률을 보장받는 전략을 택했다. 제작진이 검증된 포맷의 안정성에 기댈 때, 출연자들의 서사는 반복적으로 소비돼 신선함이 떨어진다. 새로운 시도나 실험이 없는 콘텐츠는 다양성을 해치는, 그저 가성비 좋은 콘텐츠다.

OTT와 디지털 플랫폼의 부상으로 시청자의 선택지가 늘어난 이상, 창의적 기획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OTT 예능의 경우, 단발성 포맷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기 좋은 환경이고, 반응에 따라 시즌제로 운영도 가능하다. 그러나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창의적 기획 시도는 쉬운 일이 아니다. 파일럿으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고 하더라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으며, 단발성 흥행을 노리다가 고정 시청층까지 잃을 수 있다. 기존 시청률이라도 보장받아야 하기에 안전한 자극에만 기댈 수밖에 없다. 결국 ‘새혼’이라는 포장 아래, 새로운 서사를 포기했다.

안전한 얼굴들이 만든, 모험 없는 예능

임원희, 탁재훈, 김준호, 이상민/사진제공=SBS
임원희, 탁재훈, 김준호, 이상민/사진제공=SBS

이상민, 김준호, 김종국, 김종민… 이름만 바뀔 뿐, 무대는 그대로다. 이들은 프로그램과 포맷을 자유자재로 오가지만, 결과적으로 남는 건 ‘익숙함’이지 ‘신선함’이 아니다. ‘이혼남’에서 ‘재혼남’으로, ‘싱글’에서 ‘커플’로 간판만 갈아 끼운 서사의 재활용은 ‘돌싱포맨’과 ‘미우새’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새 얼굴의 새 서사로 모험을 걸기보다는, 이미 검증된 얼굴에 의존해 리스크를 회피하는 전략. 그 결과 ‘새혼’은 실험이 아니라 회피, 도전이 아니라 합리화의 다른 이름이 됐다. 이혼과 재혼이라는 민감한 소재는 자극적으로 소비되는 동시에 안정적인 시청률을 보장하는 ‘예능의 안전 자원’으로 전락했다.

한 예능 작가는 “결국 제작진은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보다는, 이미 화제성과 대중 인지도를 확보한 출연자의 개인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시청률을 담보하는 동시에 제작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안전한 전략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민감한 개인사, 웃음의 상업적 소비

‘미운 우리 새끼’ 방송캡처
‘미운 우리 새끼’ 방송캡처

‘돌싱포맨’의 서 PD는 “‘돌싱’이라는 꼬리표보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정체성이 옮겨갈 것 같다”라며 새로운 정체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의 반복된 서사의 문제점은 결혼 중심적 사회 프레임을 고착화한다는 거다. 방송은 결혼과 재혼을 안정된 삶으로 비추고, 비혼이나 비연애를 비정상적으로 묘사한다. 이는 시청자에게 특정 사회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며, 다변화된 사회를 담아내지 못한다.

한 예능 작가는 “출연자의 개인사를 지나치게 소비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화제성을 담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피로감을 줄 수 있다”라며 “과도하게 사적인 영역까지 예능화하는 것은 자칫 ‘TMI’(Too Much Information)처럼 비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특정 프레임이 고착화된 이혼이나 재혼이라는 개인적 서사는 웃음으로 소비된다. 시청률과 흥행을 위한 수단으로 쓰이며 안전장치로 기능한다. 개인의 관계와 경험이 소비되는 일은 출연자의 상품화로 이어지고, ‘혼자는 불완전하다’라는 프레임을 강화한다. 물론, 중년 남성 연예인의 ‘새혼’이 비슷한 처지인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관계 서사는 건강하지 않은 예능 추세로, 진정성을 잃은 채 한계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