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합작 로맨스, 뻔한 서사에 새로운 변주…OTT 시대 만나 활개”
히트 IP 수명이 긴 일본 시장 겨냥해 장르 확장도
[헤럴드뮤즈=김민지 기자] “짤랑” 흩날리는 벚꽃잎 아래 은은하게 울리는 종소리. 최근 한국 로맨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일본’의 모습이다.
오늘날 일본이라는 공간적인 설정은 두 인물의 영화로운 서사, 그 시작의 배경으로 잠깐 비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본이 스토리의 전반적인 축이 되거나 아예 처음부터 한일 합작 드라마로 제작 단계서부터 두 나라의 배우와 제작진이 협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
이러한 합작은 TV 드라마보다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인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온스크린작으로 상영되며 화제를 모았던 넷플릭스 재팬 시리즈 <로맨틱 어나니머스>는 관련해 좋은 선례를 보여줬다.
해당 시리즈는 일본의 인기 배우 오구리 슌과 한효주의 만남은 물론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제작사가 기획 단계부터 모든 걸 함께 만들어 나가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다른 두 나라의 협업이었지만, 상호 배려를 통해 더욱 현장감 넘치고 유연한 촬영 환경이 구축됐다는 후문.
이에 상응하듯 드라마는 일본 넷플릭스 작품이지만 국내외를 불문하고 이례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넷플릭스 공식 Tudum 웹사이트에 따르면, <로맨틱 어나니머스>는 공개 후 넷플릭스 1위를 차지했고, 인도네시아, 한국, 태국, 대만,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도미니칸 공화국, 온두라스,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레위니옹에서는 넷플릭스 국가별 Top 10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의 경우, 공개 첫 주 7위로 입성해서 둘째 주 6위, 셋째 주 10위를 기록하며 서로 다른 두 나라 간 로맨스의 설렘이 통했음을 입증했다.
“한일 합작 로맨스, 뻔한 서사에 새로운 변주…OTT 시대 만나 활개”
한일 합작 로맨스는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쿠팡플레이는 이세영과 사카구치 켄타로를 내세워 2024년 공지영·쓰치 히토라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선보였고, 스튜디오 드래곤은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를 리메이크한 일본판을 제작해 선보이기도 했다.
이후 <로맨틱 어나니머스>부터 아카소 에이지와 강혜원 주연의 <첫입에 반하다>, 디즈니+의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지창욱과 일본 배우 이마다 미오가 함께 하는 <메리 베리 러브>, 오는 16일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 되나요?>까지. 시청자들은 OTT를 통해 한·일 배우의 로맨스 연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사실 예전에도 한국 배우의 일본 진출은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이 흐름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일본 드라마에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수준을 넘어 제작 단계서부터 협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 평론가)는 특히 로맨스 장르에서 두 국가의 잦아진 교류에 대해 “뻔하지 않은 서사를 위한 변주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로맨스 장르가 소재적인 부분에서 참신함을 제대로 가져가지 못하면 굉장히 진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이를 희석하고 새로운 이야기로 바꿔낼 수 있는 것들이 ‘국적’ 관련인 것”이라며 “특히 한국은 로맨스에서도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는 측면이 있는데, 일본은 굉장히 조용하고도 정적인 편이라 그런 차이점이 흥미로울 수 있다”고 봤다.
이어 윤 교수는 “사실 한류 초기부터 한일 합작 로맨스는 꾸준히 시도되기는 했었는데 글로벌 유통과 소통에 강점인 OTT 시대가 도래하면서 더 확장된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일 합작 로맨스물을 연이어 내놓고 있는 넷플릭스도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헤럴드뮤즈에 “사실 한국 로맨스 장르가 일본 90년대 작품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부분이 있다”며 “한국과 일본은 이전부터 수준 높은 콘텐츠 환경과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정서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며 영상 콘텐츠 분야에서 활발할 수밖에 없는 협업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넷플릭스의 <로맨틱 어나니머스>나 <이 사랑 통역되나요?> 등은 한국과 일본 배우 출연 등 양국의 요소가 자연스럽게 융합된 형태인데 이는 합작의 개념보다는 양국의 문화와 탤런트, 창작자들이 자연스럽게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이 글로벌 OTT라는 그릇 위에서 마련됐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정서적인 배경을 지녔지만 다른 국가에서 오는 차별점이 변주로 기능해 오늘날 국경 없는 콘텐츠 놀이터인 OTT를 만나 활개를 펼친 것.
넷플릭스가 올해 첫 시리즈로 선보일 <이 사랑 통역 되나요?>도 일본을 배경으로 로맨틱함을 더한다. 여기에 일본 배우 후쿠시 소타가 서브남주로 등장해 한국 드라마에 일본어 비중이 꽤 크게 다가온다.
그러나 넷플릭스 측은 “해당 드라마의 경우 한일 합작이 아닌 이야기 전개 상 다양한 해외 로케이션을 특징으로 한 작품이기에, 일본은 하나의 요소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익숙한 여행지인 일본의 모습을 통해 내용에 더 잘 이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다중언어 통역사 주호진(김선호 분)이 글로벌 톱스타 차무희(고윤정 분)의 통역을 맡게 되면서 펼쳐지는 예측 불가 로맨틱 코미디다.
한일 합작, 로맨스 넘어 수사물로 장르 확장 “히트IP 수명이 긴 일본 시장 겨냥”
한편 로맨스 외에도, 한일 합작 작품은 시청자들을 연이어 찾아올 예정이다. 손석구와 나가야마 에이타가 주연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는 수사물 넷플릭스 <로드>와 옥택연과 이소무라 하야토가 출연하는 오리지널 일본 드라마 <소울메이트>가 그 주인공. <소울메이트>는 스튜디오드래곤 자회사 지티스트가 제작을 주도한다.
그렇다면 장르의 확장을 이루고 있는 한일 합작의 강점은 무엇일까. 스튜디오드래곤 관계자는 헤럴드뮤즈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히트 IP(지적재산권)의 수명이 무척 긴 시장”이라며 지난 2019년 방영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공연화된 현재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이처럼 일본은 흥행 IP를 기반으로 다양한 부가사업(드라마 커머스, 공연 등)을 진행하기에 일본 시장은 제작사 입장에서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드라마IP를 보유한 스튜디오드래곤은 일본드라마 <내남결 일본판>과 미국드라마 <운명을 읽는 기계> 등의 성공을 발판 삼아 올해도 글로벌 스튜디오로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스튜디오드래곤이 현재 미드 및 일드로 기획개발 중인 드라마가 20여 편이고, 중장기적으로 스튜디오드래곤 연간 제작 라인업 중 웰메이드 미드와 일드를 안정적으로 3~5편 포진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이들은 “일본 사업자와의 공동 제작은 시작 단계인 만큼, 한일 합작을 통해 일본 제작 프로세스와 일본 드라마 시장에 대한 경험치를 높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OTT 플랫폼의 확산으로 국가 간 문화 협력이 다양해진 가운데 어쩌면 한국과 일본의 합작은 양국 IP 산업 발전을 위한 영리한 선택일 지도 모른다. 감정 표현의 차이가 이야기의 참신함으로 기능하기 때문. 다만 콘텐츠 시장에는 냉정한 유효기간이 존재한다. 합작이 매번 긍정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만큼, 새로운 IP 창출이 늘 귀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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