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했다”는 말은 익숙해졌지만, 늘 같은 결과
일반인 출연자 시대, 예능이 알아야 할 ‘명성 자본’의 무게
완벽한 검증은 불가, 우선순위 검증은?
[헤럴드뮤즈=김나율 기자]“사전 검증을 충분히 거쳤습니다.”
출연자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제작진은 늘 준비된 듯 같은 해명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 ‘복사 붙여넣기’ 식 답변이 반복되는 동안, 정작 예능계의 출연자 리스크는 줄어들기는커녕 만성화되는 모양새다. 이제 대중은 새로운 출연자를 반기기보다 “또 터졌다”는 냉소적 반응을 먼저 보낸다.
최근의 리스크는 더 이상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흑백요리사2’ 임성근 셰프의 과거사부터 ‘현역가왕3’ 숙행을 둘러싼 잡음, ‘쇼미더머니12’의 병역 비리 의혹과 ‘합숙맞선’의 불륜 논란까지.
장르와 포맷을 불문하고 터져 나오는 잡음 앞에 제작진의 ‘선 검증 완료’라는 공언은 무색해졌다. 문제는 “사람을 잘못 뽑았다”는 실수가 아니라, 시청자가 납득할 수 없는 부실한 검증 시스템 그 자체에 있다.
‘일반인 예능’ 시대, 프로그램 출연은 더 이상 가벼운 경험이 아니다
일반인 출연자는 더 이상 일회성 참여자가 아니다. 방송을 계기로 광고, SNS 영향력, 연예 활동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흔해졌다. 출연은 곧 ‘셀레브리티로의 진입’이 됐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이 지점을 출연자 리스크의 핵심으로 짚었다. 이 교수는 “시청자들은 방송 출연을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일종의 특혜로 인식하고 있다. 방송을 통해 얻게 되는 유명세, 즉 ‘명성 자본’이 커진 만큼, 그에 상응하는 자격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출연자는 아직 연예인이 아니지만, 연예인이 되는 경로에 서 있다. 이 변화된 위상에 비해, 예능의 검증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검증 끝에도 손해 떠안는 건 결국 ‘애청자’
출연자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제작진은 “개인의 사생활까지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제작 과정에서 완벽한 검증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이기도 하다.
이 교수 역시 이 한계를 인정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출연자 기준은 굉장히 높고, 기준 자체도 빠르게 변한다. 제작진이 개인의 사적 영역을 조사할 권한도 없고, 자발적 참여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모든 과거를, 모든 기준으로 검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터질 때마다 그 여파를 온전히 감당하는 주체가 시청자라는 점이다. 재편집·통편집 또는 하차 공지로 끝나는 사후 대응은 이미 프로그램의 몰입을 깨뜨린 뒤다. 결국 제작진의 “검증했다”는 말은 책임을 설명하지 못한 채 반복된다.
장르에 따른 출연진의 ‘선택과 집중’ 필수
그렇다면 예능은 무엇을 어떻게 검증해야 할까. 이 교수는 ‘완벽한 검증’이 아닌, 선택과 집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프로그램 장르와 기획 의도에 따라 검증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오디션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성장 서사’를 전제로 하는데, 타인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짓밟은 과거가 있다면 서사와 명성 자본 사이에 불일치가 생긴다. 학폭이나 괴롭힘 등을 우선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데이팅 예능이라면 불륜, 이중 교제 논란이 핵심 리스크가 된다. 이 교수는 “출연자의 매력과 관계를 보여주는 장르이기 때문”이라며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획득하는 ‘명성 자본’의 성격을 고려해 검증의 우선순위를 두는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모든 논란의 경중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예능 제작진은 늘 이 세밀한 차이를 함구한 채, ‘검증 완료’라는 단어 뒤에 숨어 모든 책임을 갈음하려 한다. 진정한 검증이란 단순히 과거를 캐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고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이제는 “검증했다”는 말로 면피를 시도할 때가 아니다. 논란 발생 시 제작진이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구체적인 사후 대응책부터 제시해야 한다.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출연자 리스크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가장 깊은 내상을 입는 쪽은 언제나 프로그램을 순수하게 즐기던 시청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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