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만의 재결합, ‘갑자기’, 혹평 딛고 음원차트 1위

‘불호’를 ‘극호’로 바꾼 한 끗.. 대중의 마음 어떻게 뒤집었나

‘갑자기’가 쏘아 올린 공, K팝 시장의 ‘웰메이드 집착증’을 깨다

아이오아이 SNS
아이오아이 SNS

[헤럴드뮤즈=박서현 기자]“요즘 너무 행복해서 매일 눈물이 나요.” 최근 성료한 데뷔 10주년 콘서트, 뜨거운 함성 한가운데서 터져 나온 이 한마디는 지금 아이오아이(I.O.I)가 누리는 제2의 전성기를 실감나게 한다. 수차례 무산됐던 재결합을 성사시킨 데 이어, 신곡 ‘갑자기’까지 음원차트 최정상에 올랐으니 그야말로 기적 같은 서사다.

2016년 Mnet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101’ 시즌1 데뷔조인 아이오아이는 고작 8개월의 활동을 하고 각자의 길로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짧은 활동 기간에도 ‘드림걸스’, ‘너무너무너무’, ‘소나기’로 새긴 존재감은 강렬했고, 9년만에 마주한 완전체는 신곡으로 멜론 음원차트 1위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아이오아이 ‘갑자기’ 챌린지 유튜브 댓글 캡처
아이오아이 ‘갑자기’ 챌린지 유튜브 댓글 캡처

하지만 ‘갑자기’가 처음부터 흥행가도에 올랐던 건 아니었다. 음원 발매 전, 숏폼 챌린지로 공개한 신곡을 대중은 “촌스럽다”, “시대착오적이다”라며 냉소적인 혹평을 쏟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별 후의 미련을 노래한 신스팝 기반의 ‘갑자기’는, 최근 K팝 씬을 지배하는 세련된 이지리스닝이나 미니멀한 사운드 공식과는 철저히 동떨어져 있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이 노래 듣고 식겁해서 벌떡 깼다”, “지금이 2026년이라고 누가 좀 알려줘라”, “이거 좋다는 사람들은 ‘영포티’ 장담한다”, “별로는 아닌데 그냥 수록곡 같다” 등 시청자들의 조롱 섞인 ‘불호’ 피드백이 줄을 이었다. 역대급 컴백이라는 기대치에 비하면 처참한 성적표였다.

그러나 진짜 반전은 ‘갑자기’ 시작됐다. 귓가를 맴도는 직관적인 후렴구의 중독성에, 여론은 곧 무서운 속도로 뒤집혔다.

결국 지난달 19일 베일을 벗은 이 곡은 무서운 입소문을 타며 발매 단 7일 만인 5월 26일, 멜론 톱100과 핫100을 동시 석권했다. 음원 차트를 장기 집권 중이던 코르티스의 ‘REDRED’마저 밀어내고 거둔 성과다.

‘촌스럽다’에서 ‘갑며들다’로…반전 만든 힘

아이오아이 ‘갑자기’ 챌린지 캡처
아이오아이 ‘갑자기’ 챌린지 캡처

초반의 불호를 단숨에 세탁한 일등 공신은 역설적이게도 ‘구관이 명관’임을 증명한 무대 퀄리티였다. 다소 과해 보였던 복고풍 의상과 직관적인 안무는 멤버들의 탄탄한 라이브와 무대 장악력을 만나며 ‘촌스러움’이 아닌 ‘클래스’로 치환됐다. AI처럼 매끈하게 세팅된 5세대 걸그룹 무대에 피로감을 느끼던 대중에게, 아이오아이의 귀환은 적응기가 필요했을 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갔다.

더불어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직관적인 후렴구, 이른바 ‘뽕끼’가 느껴지는 사운드가 매력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대중에게 익숙한 복고풍의 멜로디가, 중독성만을 강조한 단조로운 반복 리듬의 곡들로 가득한 차트에서 빛을 발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반전 흥행에 ‘갑며들다’(갑자기 스며들다)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이들이 전개한 챌린지 마케팅 역시 영리했다. 흔한 아이돌 간의 품앗이를 넘어, 멤버들이 지난 10년간 배우와 예능인으로서 확장해 온 개인의 ‘활동 궤적’을 마케팅 자원으로 치환했기 때문이다. 강태오, 박재범은 물론 ‘오징어 게임2’의 임시완까지 가세한 라인업은 아이오아이의 공백기가 단순한 멈춤이 아닌, ‘개인 브랜드의 성장기’였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아이오아이 ‘갑자기’ 챌린지, 베어스 티비 영상 캡처
아이오아이 ‘갑자기’ 챌린지, 베어스 티비 영상 캡처

여기에 스포츠 서브컬처 레이어까지 더해졌다. ‘자려고 누웠는데 양의지’라는 야구 밈을 마케팅으로 흡수, 두산 베어스 양의지 선수와의 컬래버를 성사시킨 기획력은 신의 한 수였다. 지난 3일 KBO리그 두산 베어스 홈경기에서 잠실 야구장을 밟은 김소혜, 임나영의 시구와 시타는 해당 밈이 대중성 확장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마침표였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이오아이의 이번 흥행 관련 헤럴드뮤즈에 “사실 ‘갑자기’는 처음 들었을 때부터 대중적인 멜로디와 직관적인 후렴구를 갖춘, 히트 가능성이 높은 곡이었다”며 “티저 공개 당시에는 낯설다는 이유로 혹평이 쏟아졌지만, 전곡이 공개된 이후 곡 자체가 가진 힘을 대중이 다시 인식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반응이 뒤집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갑자기’만의 기적일까…변화하는 K팝 공식

아이오아이 SNS
아이오아이 SNS

결국 아이오아이의 반전 흥행은 일시적인 화제성이나 팬덤의 화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최근 K팝 시장에서는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감성을 재해석한 음악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일릿의 ‘잇츠미’, 제로베이스원의 ‘TOP5’, 퀸즈아이의 ‘Y2K’ 등 2000년대 초·중반 가요계를 연상시키는 곡들이 잇따라 등장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동안 세련된 이지리스닝과 미니멀한 사운드가 주류를 이뤘던 K팝 시장에 보다 직관적이고 대중적인 멜로디가 다시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하재근 평론가는 “아이오아이가 가진 서사도 흥행에 영향을 미쳤지만, 결국 ‘갑자기’는 대중이 좋아할 만한 멜로디를 갖춘 곡”이라며 “아이오아이를 향한 그리움과 아쉬움, 멤버들의 스타성이 노래의 분위기와 맞물리며 시너지를 냈다. 단순히 향수에 기댄 것이 아니라 곡 자체의 대중성과 팀의 상징성이 결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어 “처음에는 요즘 세대에게 다소 낯설고 촌스럽게 들릴 수 있었지만, 이번 성공을 통해 편안하고 친숙한 멜로디의 힘이 다시 주목받게 됐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대중 친화적 멜로디를 전면에 내세운 곡들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공개 초반 혹평을 받았던 ‘갑자기’는 결국 대중의 선택을 받으며 K팝 시장의 또 다른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됐다. 이 갑작스러운 반전 극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지, 아니면 K팝 시장의 흥행 공식을 통쨰로 바꿀 전환점이 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