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본체보다 거대해진 개인…‘따로’에 쏠린 무게

소녀시대·트와이스·아이오아이까지‥K팝 선배 그룹들이 ‘10주년’을 기념하는 법

거대해진 개인 IP 시대…‘원팀’을 움직이는 진짜 동력은

리사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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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뮤즈=김나율 기자]“10주년이란 단순히 한 줄 이벤트가 아니에요. 소속사와 멤버, 팬덤이라는 세 축이 함께 쌓아온 서사를 마음에 새기는 시점이 되어야 합니다.”

블랙핑크의 데뷔 10주년을 맞이하는 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지난 10년간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그룹인 만큼, 축제의 온도 역시 뜨거울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정작 기념일을 앞두고 축하보다 아쉬움과 서운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멤버들이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 아쉬움의 본질은 단순히 ‘규모’나 ‘양’에 있지 않다. 팬들에게는 네 사람이 함께 화면에 담기는 그 찰나의 순간 자체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이자 핵심 콘텐츠였다.

멤버 전원이 개개인으로서 글로벌 아티스트 반열에 오른 지금, 블랙핑크라는 이름이 축적해 온 10년의 서사를 어떻게 기념하고 증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블랙핑크 10주년, 팬들이 그토록 서운했던 ‘진짜’ 이유

지수/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지수/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어느덧 데뷔 10주년, 블랙핑크는 K팝의 국경을 넓힌 아이콘을 넘어 멤버 하나하나가 거대한 독자적 브랜드로 뿌리내렸다. 지수, 로제, 제니, 리사. 각자의 이름으로 펼쳐낸 음악과 패션, 연기는 이미 그룹의 울타리를 넘어 저마다의 영역을 구축했다.

재계약이라는 분기점에서 이들이 선택한 전략은 ‘팀과 개인의 이원화’였다. 팀의 이름은 YG엔터테인먼트의 테두리 안에 두되, 개별 활동은 각자 독립적으로 나아가는 구조다. 어떻게 보면 멤버 개개인이 하나의 거대한 기획사이자 브랜드가 된 지금, 회사 하나가 모두의 궤적을 하나의 스케줄표로 묶어두던 과거의 공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문제는 팬덤의 기대다. 팬들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의 지점을 향한다. 이들에게 블랙핑크는 네 명의 솔로 아티스티이기 전에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견디며 울고 웃은 하나의 팀이다. 특히 ‘10주년’이라는 묵직한 이정표는 각자의 화려한 성과보다, 네 사람이 한 자리에 서 있는 ‘완전체’의 존재감을 간절히 원하게 만든다. 홀로서기의 성과가 아무리 눈부실지라도, 함께하는 온기를 느끼지 못할 때 팬들의 마음 한구석에 그늘이 지는 이유다.

블랙핑크 10주년 기념행사를 이틀 앞둔 6일, 서울 마포구 YG 사옥 출입문을 골프채로 가격해 체포된 20대 여성/사진= 트위터 X 갈무리
블랙핑크 10주년 기념행사를 이틀 앞둔 6일, 서울 마포구 YG 사옥 출입문을 골프채로 가격해 체포된 20대 여성/사진= 트위터 X 갈무리

이는 비단 블랙핑크만의 고민은 아니다. 과거 소녀시대, 트와이스, 아이오아이, 방탄소년단 등 K팝 대형 그룹들이 데뷔 기념일에 완전체 활동이나 특별한 프로젝트를 선보였던 사례가 쌓이면서 팬들에게는 일종의 ‘10주년 공식’이 생겼다. 대규모 컴백이나 신곡이 아니더라도 멤버들이 함께 모이고, 팬들과 지난 시간을 되짚는 의미가 중요해졌다. 결국 블랙핑크를 둘러싼 아쉬움의 본질은 ‘얼마나 거대하게 기념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다 함께 온전히 모였느냐’에 있다.

개인 IP가 커질수록 더 중요해진 ‘원팀’ 설계

블랙핑크/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블랙핑크/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블랙핑크의 상황은 멤버 개인의 영향력이 팀의 이름만큼이나 커졌기에 더욱 주목받는다. 멤버들은 각자 다양한 영역에서 독립적인 IP를 구축했다. 이제는 ‘블랙핑크의 멤버’라는 설명 없이도 하나의 독자적인 브랜드가 됐다.

K팝 업계에서는 개인 활동을 위해 서로 다른 회사에 소속되더라도 팀으로서는 활동을 이어가는 ‘따로 또 같이’가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블랙핑크 같은 대형 그룹에게는 현실적인 선택지다.

심재걸 대중음악평론가는 이 구조를 ‘멀티IP-원팀’으로 설명하며 “팀이 개인을 키우는 단계, 개인이 팀의 가치를 높이는 단계, 이는 유기적인 사이클로 돌아간다”며 “예측 가능한 정기적, 장기적 설계를 각 소속사, 각 멤버 간 얼마나 원활히 소통하는지에 따라 ‘멀티IP-원팀’ 구조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개인 IP의 성장이 최고점에 도달하면 이와 함께 팀 활동에 신선한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 활동이 커졌다고 해서 팀의 가치가 반드시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오히려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한 멤버들이 다시 팀으로 모였을 때 이전과 다른 화제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시 모이는 순간’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보여줄지다.

10주년 행사는 일방적 이벤트 아닌 팬들과 쓴 ‘공동 기록’

블랙핑크가 팬들에게 선물한 6900원 떡과 꽃다발/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블랙핑크가 팬들에게 선물한 6900원 떡과 꽃다발/사진=온라인 커뮤니티

K팝 그룹의 10주년을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반드시 거대한 콘서트나 신곡, 대형 프로젝트가 있어야 성공적인 10주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팀과 팬들이 함께 만들어온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하느냐다. 특히, 10년을 함께한 팬덤에게는 데뷔 당시부터 현재까지 멤버의 성장 과정 하나하나가 개인의 추억이기도 하다.

심재걸 대중음악평론가는 “10년의 공동 기록자로서 저마다의 인생을 넣었고, 이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존재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속사와 멤버뿐 아니라 팬덤 역시 10년의 시간을 함께 만든 당사자라는 것이다.

그는 “어떠한 콘텐츠를 기획하던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고 수고했다며 어깨를 토닥이는 정서를 잘 담아낼 수 있는 의미의 프로젝트가 취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블랙핑크의 10주년을 둘러싼 팬들의 반응을 바라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과거와 똑같은 방식의 완전체 활동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10년 동안 함께한 시간이 여전히 팀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확인은 필요하다.

개인 IP가 커진 시대일수록 그룹 ‘완전체 활동’의 가치는 더욱 귀해진다. 하나의 기획사에서 모든 멤버를 관리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멤버들을 한 프레임에 모으는 과정 자체가 그만큼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블랙핑크의 10주년 역시 완전체의 모임이 결코 당연할 수 없는 시대다. 그러나 중요한 건, 팬들이 그 시간을 통해 지나온 10년의 서사를 온전히 보상받고 확인할 수 있는가에 있다. 결국 이번 10주년 논란은 단순히 팬덤의 불평을 넘어, 초대형 IP로 진화한 K-팝 그룹들이 거대한 글로벌 개인 활동과 동시에 팀의 정체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무거운 고민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