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루 귀신·거제 소녀·신라공주까지‥캐릭터가 된 멤버들
80만 구독자로 단숨에 껑충‥순수체급으로 증명한 저력
자체 콘텐츠로 역주행까지‥리센느가 바꾼 성공 공식
[헤럴드뮤즈=김나율 기자]“지금은 ‘잘 만들어진 존재’보다 ‘함께 성장하는 존재’에 더 반응하는 시대죠.”
K-팝은 오랫동안 ‘완벽함’을 경쟁해왔다. 더 화려한 퍼포먼스, 더 정교한 세계관, 더 강력한 팬덤이 흥행의 공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흐름은 정반대로 향한다. 사투리 쓰는 멤버들과 일본인 갸루 캐릭터 등 틀을 깬 매력으로 주목받는 리센느가 그 중심에 있다.
리센느는 데뷔 후 2년 가까이 화제성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급변했다. 멤버 원이의 개인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구독자는 한 달 새 10만 명에서 80만 명으로 급증하며 팀 공식 채널 51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특별한 마케팅이나 바이럴 전략은 없었다. 릴스 챌린지나 숏폼 유행을 타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영상을 보고 “웃기고 재미있다”는 이유로, 이어서 다음 영상을 찾아봤다. 그렇게 축적된 관심은 리센느라는 팀의 관심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지난해 발표한 ‘Love Attack’은 멜론 TOP100 6위까지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한 가요 관계자는 최근 리센느 현상에 대해 “완벽하게 세팅된 완성형 아이돌보다 생활감이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모습에 더 쉽게 반응하는 시대”라며 “정제된 이미지는 오히려 거리감을 만들지만, 일상적인 모습은 팬들이 스스로 해석하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고 밝혔다.
아이돌인데 왜 내 ‘옆집 친구’ 같을까
리센느 신드롬의 시작은 의외로 음악이 아니었다. 지난 3월 공개된 일본인 멤버 미나미의 ‘갸루’ 콘텐츠였다. 갸루 분장을 한 미나미가 원이에게 이른바 ‘갸루 마인드’를 전수하는 영상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퀸의 마인드’를 담아내며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단발성 화제에 그칠 것 같았던 리센느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원이와 제나의 사투리 브이로그가 또 다른 전환점이 됐다. 경상도 출신인 두 사람은 사투리를 숨기지 않았다. 성수동 거리를 걸으며 자연스럽게 사투리로 대화를 나눴고, 길에서 자신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을 신기해했다. 이미 데뷔한 지 2년이 된 아이돌임에도 아직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한, 순수한 모습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대다수 아이돌이 데뷔 전부터 완성형 스타로 훈련을 받는다. 리센느는 달랐다. 잘 만들어진 스타라기보다 이제 막 서울 생활에 적응해가는 또래 동네 친구들 같았다. 대중이 반응한 지점 역시 바로 그 부분이었다. 완벽함보다 생활감, 스타성보다 친근함이었다.
갸루 소녀와 거제 소녀가 만든 청춘영화
결정타는 미나미와 원이의 거제 편이었다. 고향 거제로 돌아간 원이와 여전히 갸루 마인드를 유지하는 미나미의 조합은 예상 밖의 파괴력을 만들어냈다. 미나미는 바닷가에서 ‘파라파라(일본 디스코 댄스)’ 를 추며 물고기가 잡히길 기도했고, 특유의 힘 빠진 텐션의 “거제 야호~”로 웃음을 자아냈다. 반면 원이는 옷을 입은 채 바다에 뛰어들고, 줄낚시를 하고, 길가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동네 주민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저 덕연이 딸이에요”라고 인사했다. 그간 전략적으로 설계된 다수 아이돌 콘텐츠와는 다른 신선한 풍경이었다.
화려한 세트도, 대중의 감정을 자막으로 유도하는 웃음도 없었다. 대신 거제라는 공간과 두 사람의 캐릭터가 영상을 이끌었다. 구독자들은 이 콘텐츠를 두고 “독립영화 같다”, “청춘영화 같다”는 반응을 내놨다. ‘거제야호’, 파라파라 춤, 갸루 미나미, 파이리를 닮은 원이의 비주얼은 자연스럽게 밈이 됐다.
리센느 콘텐츠의 힘은 여기에 있다. 거창한 세계관이나 설정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콘텐츠가 됐다. 미나미의 갸루 캐릭터, 원이의 거제 소녀 이미지, 제나의 신라공주 캐릭터까지. 사람들은 어느 순간 리센느 자체를 이야기했고, 그때부터 팬 콘텐츠가 대중 콘텐츠로 확장됐다.
바이럴을 설계하는 힘, K-팝 레이블의 새로운 경쟁력
돌이켜보면 K-팝 역사에는 늘 예상치 못한 순간이 존재했다. EXID는 하니의 직캠으로, 여자친구는 빗속 꽈당 무대로, 브브걸은 역주행 신화로 대중의 마음을 얻었다. 그리고 올해, 리센느는 또 다른 방식의 성공 공식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흐름의 역전이다. 보통은 노래가 먼저 알려지고 사람이 뒤따르지만, 리센느는 그 반대였다. 콘텐츠를 통해 멤버들의 매력을 알게 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Love Attack’을 찾아 듣기 시작했고, 결국 차트 역주행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 가요 관계자는 “과거에는 직캠 같은 외부 촬영물이 예상치 못한 화제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공식 채널 콘텐츠가 플랫폼 안에서 재가공되며 퍼지는 구조”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콘텐츠 자체보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고 확산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퍼질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능력 자체가 아티스트와 레이블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리센느 현상의 핵심은 단순한 바이럴이 아니다. ‘사람’ 자체의 힘이다. 대중은 우연히 리센느를 소비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무언가를 이들에게서 발견했다.
잘 ‘만들어진’ 아이돌은 많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아이돌은 드물다. 리센느가 보여준 장면은, 어쩌면 지금 K-팝 팬들이 가장 갈망해온 ‘진짜 사람의 이야기’에 가장 가까운 답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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