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열린 엔하이픈 콘서트서 국내팬 선예매 최초 도입
해외팬 차별 지적 있지만 국내팬 반응 긍정적 “공연 분위기 달라져”
오는 8월 ‘암표근절법’ 시행…韓선예매, 새로운 공연 문화로 자리 잡을까
[헤럴드뮤즈=박서현 기자]“분명 서울콘서트인데 주변에서 중국어 밖에 안 들렸어요.”
해외 팬덤이 막강한 K팝 아이돌의 국내 콘서트 후기에 보이던 국내팬들의 단골 하소연이다. 하지만 최근 공연장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5월 개최된 엔하이픈 서울 콘서트 ‘BLOOD SAGA’가 시작이었다. 비결은 대형 기획사들이 칼을 빼 들고 도입한 ‘국내 팬 선예매 제도’다.
국내팬 선예매는 말 그대로 한국팬들에게 티켓을 우선 예매할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기존에는 글로벌 팬클럽 가입자 전체를 대상으로 일괄 선예매가 진행됐다면, 이제는 일정을 분리해 국내 팬클럽 예매를 먼저 거친 뒤 글로벌 회원 예매를 진행한다. 특히 국내 선예매를 하기 위해서는 휴대폰 인증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외국인이라면 사실상 참여를 위한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해외 팬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으나, 국내 팬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그동안 안방에서 벌어지는 공연임에도 정작 안방 주인들은 소외당하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한령 이후 현지에서 케이팝 공연을 보기 어려워진 중화권 팬들의 한국 원정 관람이 급증하면서 서울 공연의 관객 지분은 급격히 해외로 쏠렸다.
여기에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중국발 암표 거래 조직까지 가세했다. 이들이 매크로(자동 입력 프로그램)를 이용해 무대 앞 명당인 그라운드석을 대량 선점한 뒤 고가에 되팔면서, 평범한 국내 팬들에게 명당 티켓팅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 되었다.
왜 지금일까…암표근절법이 바꾼 예매 문화
이러한 암표 시장의 폭주는 통계로도 여실히 증명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블랙핑크, 에스파, 라이즈, 제로베이스원 등 K팝 가수들의 공연 티켓은 재판매 사이트에서 정상 가격의 최대 51배까지 폭등해 거래되는 기현상을 낳았다. 지난 3월에는 K팝 콘서트 티켓을 되팔아 71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암표 거래 조직이 수사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기획사들이 이 시점에 국내 팬 우선 보호로 노선을 튼 이유는 분명하다. 업계에서는 오는 8월 28일 시행을 앞둔 이른바 암표근절법(공연법·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대비한 선제적 조치로 해석한다. 법 개정으로 암표 단속이 대폭 강화되는 만큼, 주최 측 역시 실제 관람할 진짜 팬들에게 티켓이 돌아가도록 시스템을 손질할 사회적 책임이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외 투어 확장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던 국내 팬심을 달래기 위한 당근책이기도 하다. K팝 그룹들의 주 무대가 글로벌 시장으로 넓어지면서 국내 공연 횟수는 자연히 줄어들었다. 가뜩이나 보기 힘든 국내 콘서트인데 표마저 구하기 힘들자, 기획사들이 체감 혜택을 높이기 위해 국내 예매권이라는 확실한 메리트를 쥐여준 것이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헤럴드뮤즈에 가장 큰 목적은 역시 “암표 근절”이라고 짚었다. 그는 “해외에서 매크로를 이용해 확보한 티켓이 암표 시장으로 흘러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내 선예매만으로 암표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부정 거래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팬클럽 운영 측면에서도 유료 가입자에게 더 나은 혜택을 제공하고, 해외 투어가 많아진 상황에서 국내 팬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국내 공연만큼은 메리트를 주려는 취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형 기획사가 먼저 움직였다…확산되는 국내 팬 선예매
국내 팬 선예매는 대형 기획사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이브 산하 빌리프랩의 엔하이픈을 시작으로 빅히트 뮤직 코르티스, SM엔터테인먼트의 레드벨벳·NCT 드림·에스파, JYP엔터테인먼트의 스트레이 키즈, YG엔터테인먼트의 빅뱅 20주년 콘서트까지 잇따라 국내 팬클럽 선예매를 도입했다.
이 같은 변화는 실제 공연장 분위기에서도 체감됐다. 티켓팅부터 이전보다 훨씬 수월했다는 반응 속 진행된 서울 콘서트는 전체 관객 중 한국인 비중이 크게 늘었다는 후기가 이어졌다. 앞열을 대부분 차지하던 외국인 관객 비율이 줄면서 공연 호응도가 달라졌고, 이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한국어 떼창도 터져 나왔다. 엔하이픈 멤버 역시 팬 소통 플랫폼을 통해 “서울 공연이 끝나자마자 대표님이 ‘이건 한국에서 한 번 더 해야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밝혔으며, 이후 실제 부산 콘서트 추가 개최로 이어졌다.
또 다른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헤럴드뮤즈에 “국내 팬 비중이 늘어나면서 응원 소리도 이전 공연보다 훨씬 커지는 등 현장 분위기 변화가 체감됐다”고 전했다. 이어 “국내 선예매 대상자들은 예매 대기 단계부터 경쟁률이 달라진 만큼 예매 환경이 개선됐다고 체감하는 팬들이 많은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국내 팬 선예매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 관계자는 “팬들의 만족도가 높은 만큼 일회성 제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국내 팬 비중이 높은 팀과 해외 투어 비중이 큰 팀 등 아티스트별 상황이 다른 만큼 모든 공연에 일률적으로 적용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내다봤다.
업계는 이번 암표근절법 시행과 국내 팬 선예매 도입을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하면서도, 해외 서버를 둔 암표 조직 등의 단속 한계를 지적하며 암표 시장의 변칙적 진화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결국 국내 선예매 제도의 안착 여부와 실질적인 암표 근절 효과는 법 시행 이후 진정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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