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황수연 기자]'걷기왕'은 힐링 영화다. 꿈과 열정을 강요당하는 현실에서 만복이라는 인물의 성장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거대 자본을 투자한 대작도 아니며, 피 튀기는 자극적인 소재도 없다. '노잼'일 것 같다고? 아니, 약속하건대 이 영화 정말 '꿀잼'이다.
영화 '걷기왕'(감독 백승화/제작 인디스토리)은 무조건 빨리, 무조건 열심히를 강요하는 세상에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선천적 멀미 증후군 여고생 만복(심은경)이 자신의 삶에 울린 '경보'를 통해 고군분투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저예산 힐링 영화로 홍보에 앞장선 '걷기왕'은 다른 대작들에 비해 관객 기대도가 낮은 작품이다. 익숙한 인물은 '부산행' '수상한 그녀' '써니'로 친숙한 심은경 뿐이다. 위 작품들로 '역대 최소 흥행퀸'이라는 타이틀을 단 심은경은 망가짐을 두려워하지않는 특유의 코믹연기와 탄탄한 연기력으로 어느 작품에서도 그 이상을 해내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분명 '걷기왕'은 원톱 심은경이 하드캐리 하는 영화다. 심은경은 선천적 멀미로 인해 2시간 거리의 통학 길을 걸어 다니는 고등학생 만복을 연기한다. 짝사랑하는 힙합 배달부 효길(이재진 분)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가 오바이트를 하는가 반면, 거침없는 대사와 표정으로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꿀잼'인 이유는 원톱 심은경에 김광규, 허정도 등 감초 배우과 신예 백승화 감독의 재치 있는 연출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고지식한 아빠 역을 맡은 김광규는 만복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만복의 선천적 멀미 증후군이 정신력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현실은 총각인 김광규의 자연스러운 아빠 연기는 보는 재미를 더한다.
육상부 코치를 맡은 허정도는 만복이 경보를 할 수 있게 도와주지만, 만복보다 만복의 담임선생님에게 더 관심이 많다. 허정도는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W'(더블유)에서 미친개 박교수 역으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걷기왕'에서도 매 장면 미친 존재감을 뽐낸다.
최근 영화·방송계 트렌드가 남자들끼리의 우정을 다룬 브로맨스라면, '걷기왕'에는 워맨스가 있다. 육상부 선배이자 에이스 수지 역을 맡은 박주희는 짧은 머리와 시크한 말투를 지녔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성격으로 걸크러시를 매력을 뽐낸다.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차세대 충무로 기대주로 손꼽히는 여배우다. 하이라이트는 우정 출연에 나선 '소순이' 안재홍과, 힙합 배달부 이재진이다. 안재홍은 만복이네 소이자 소울메이트인 '소순이' 목소리 내레이션을 맡았다. 목소리 출연이라고 존재감이 가볍지는 않다. '걷기왕'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역할이다. 이름은 '소순이'인데 안재홍은 남자다.'꿀잼'을 책임질 강력한 웃음 포인트다.
안재홍의 참여는 평소 절친한 심은경이 직접 추천한 것이 계기가 됐다. 백승화 감독은 "원래 '소순이'는 저음의 중년 남성을 생각했다. 근데 심은경이 안재홍이 어떠냐고 묻더라. 결과는 굉장히 만족한다"며 비하인드를 밝혔다.
FT아일랜드 이재진도 예상을 뛰어넘는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그가 맡은 역할은 힙합에 푹 빠진 중국집 배달원 효길이다. 그가 일하는 중국집은 이름부터가 '하이루'다. "난 슬플 땐 힙합을 춰"라는 명대사와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바치는 자작곡 랩은 폭소를 자아낸다. 진지한 힙합 청년의 허세는 이재진의 본 모습일까 싶을정도로 자연스럽다. 꿀잼 끝판왕은 신예 백승화 감독의 센스 있는 연출력과 완성도 높은 작품성이다. 오프닝부터 엔딩곡까지 이 영화는 감독의 손때가 유독 잘 묻어나는 영화다. 오프닝 타이틀은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백 감독이 자신의 장기를 살려 만복이가 걷는 2시간 거리의 등굣길을 '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해 만들었다. 실사 영상을 프레임별로 한 장 한 장 뽑아내 그 위에 그림을 덧입혀 움직임을 표현하는 작업 방식이다.
영화에 사용된 '타이타닉' OST 리코더 연주는 '미쳤다' 싶을 정도. 좌절에 놓인 만복의 심리를 대변하며, 우울한 장면을 웃음으로 바꾸는 놀라운 마법을 보여준다. 또한 재기 발랄한 엔딩곡은 백승화 감독이 직접 작사하고, 심은경이 노래를 불렀다.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메시지가 마지막까지 '걷기왕'을 미소 짓게 만든다.
한편 '걷기왕'은 20일 개봉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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