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화 감독 / 서보형 기자
백승화 감독 / 서보형 기자

[헤럴드POP=성선해 기자] '아프니까 청춘'은 이제 지겹다. '걷기왕'은 참고 이겨내라는 세상을 향해 '힘들어 죽겠는데 참긴 뭘 참느냐'고 항변한다.

20일 개봉한 영화 '걷기왕'(감독 백승화/제작 인디스토리)은 무조건 빨리, 무조건 열심히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선천적 멀미 증후군 여고생 만복(심은경)이 경보를 통해 고군분투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경보가 소재이기 때문에 스포츠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걷기왕'은 안티 스포츠 무비에 가깝다. 해당 장르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는 하지만 반전이 있다. 클리셰를 비튼다. 뻔한 감동 코드와도 거리가 멀다. 어떻게 생각하면 발칙하기까지 하다.

이는 백승화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지난 2014년 초고를 쓴 뒤 끊임없는 시나리오 수정을 거쳐 '걷기왕'을 완성했다. 2년여의 시간과 품이 들어간 '걷기왕'은 20일 드디어 빛을 봤다.

사실 세상만사가 귀찮은 만복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캐릭터다. 뭐든지 적당히 하면서 살고 싶어한다. 더욱이 영화 속에는 갈등을 조장할만한 마땅한 악역이 없다.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감동이나 힐링 코드도 찾기 힘들다. 기존 영화의 문법에 모조리 빨간 줄을 긋는다. 참으로 묘하다.

영화 '걷기왕' 스틸 / CGV 아트 하우스 제공
영화 '걷기왕' 스틸 / CGV 아트 하우스 제공

백승화 감독은 "대부분의 주인공은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하지만 만복은 아니다. 초고에서는 더욱 없었다"라며 원래는 더욱 수동적인 캐릭터였음을 밝혔다. 이어 "우리 영화에는 크게 눈에 띄는 악역도 장애물도 없어서 고민이 됐다. 대신 만복 스스로가 나중에 과잉의 모습을 보이고, 그게 갈등과 유사한 역할을 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걷기왕'을 관통하는 큰 주제는 느린 청춘들의 가치다. 뛰지 않는 공백의 청춘 역시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귀에 딱지 앉도록 들었던 '아프니까 청춘'이란 캐치프레이즈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면 못 이룰 게 없다는 말은 무책임하다고 본다"라고 말하는 백승화 감독. 그가 만든 '걷기왕'은 무한경쟁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청춘들에 대한 위로다.

"청년들이 조급해하지 않고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설혹 그런 게 없더라도 무능한 사람이란 의미는 아니다. 자책할 필요가 없다. 그 마음이 제일 컸다. 경쟁을 하다가 그만두어도 된다. 그건 패배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일 뿐이다."

메시지가 분명한 '걷기왕'. 그렇다고 해서 기성세대에 반발하는 거친 저항물은 아니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웃기는 코미디에 가깝다. 소위 말하는 '병맛코드'가 곳곳에 깔려있다. 영화 '타이타닉(Titanic)' OST '마이 하트 윌 고 온(My heart will go on)'의 리코더 연주 버전이 BGM으로 깔리는 후반부가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숨넘어가게 웃긴다.

영화 '걷기왕' 스틸 / CGV 아트 하우스 제공
영화 '걷기왕' 스틸 / CGV 아트 하우스 제공

백승화 감독은 '마이 하트 윌 고 온'에 대해 "편집할 때 가이드 삼아서 넣은 노래다. 근데 보는 사람들이 재미있어해서 완성본에도 넣었다. 사용료가 비싸서 고민을 하긴 했지만, 결국 지불했다"라며 비하인드를 밝혔다.

"분명 '걷기왕'은 재미있는 영화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다른 청춘영화들과는 달리 만복은 장애물을 극복하거나 어떤 걸 성공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사실 그런 전개가 맥이 빠져보일까 봐 고민이 되긴 했지만, 이런 이야기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popnew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