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어릴 적 갖고 싶은 생일 선물은 오직 '강아지'였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끝내 강아지를 품에 안겨주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 예쁜 강아지들을 보면 한 마리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기까지였다.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지 없는지 가늠하기 위해 세운 기준은 명확했다. '강아지를 위해 나를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를 자문하는 것.
강아지는 예쁘다고 쉽게 살수 있는 비싼 액세서리가 아니다. 아프면 돌봐줘야하고, 외롭지 않게 집에 빨리 돌아 와야 하고, 운동이 부족하지 않도록 산책도 시켜줘야 한다. 나이가 들면 그들도 시력이 나빠지고, 무기력해진다. 동물이지만 사람과 같다. 반려견과 함께 걸어가는 길은 즐겁기도 하지만 가끔 버거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은 몸에서 뛰고 있는 생명의 무게감을 짊어지기 위해서는 그 무게에 걸맞은 책임감이 필요하다.
뮤지컬 '더 언더독'은 지난 2012년 SBS TV '동물농장 - 더 언더독' 방영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됐다. 어떤 이유로든 주인에게 버림받았다는 이유로 쓸쓸히 안락사라는 죽음을 맞이하는 유기견들의 현실은 참혹했고, 점점 늘어가는 반려견 가구만큼 이는 사회적 이슈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제작진은 4년간 대본 작업과 개발을 통해 '더 언더독'을 무대에 올렸다. 강아지의 시선에서 그려낸 이 작품 속에는 그와 맞닿아 있는 우리의 삶이 있다.
진돗개 진은 주인에게 버림받고 떠돌다 투견이 된다. 고된 훈련과 처절한 싸움을 이겨내며 살아오던 그는 단속반에 의해 유기견 보호소에 오게 된다. 유기견 보호소에는 이미 여러 마리의 강아지들이 살고 있다. 떠들썩한 보호소에서 언제나 중심을 잡고 있는 골든리트리버 할배부터 발랄한 달마시안 믹스 죠디, 화려하고 예쁜 푸들 소피, 그리고 강아지 공장에서 새끼를 낳는 삶만 허락되었던 마르티스 마티와 이들 위에 군림하며 질서를 잡고 있는 셰퍼드 중사까지. 개성 넘치는 이들의 생김새와 성격만큼이나 보호소로 오게 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마음을 모아 기다리는 것은 새로운 주인에게 선택받아 보호소에서 나가는 것이다.
"누군가가 들어오면 누군가는 나간다"는 법칙에 따라 진돗개 진이 들어오던 그 날, 한 마리의 강아지가 선택받았다. 하지만 웃으며 떠난 그에게 닥친 실상은 끔찍했고, 진은 이 사실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기회는 균등하고, 우리는 평등하다"는 말을 외치며 개들을 통솔하던 중사에게 진은 거칠게 부딪힌다. 이 과정에서 중사는 '선택받은 자는 죽는다'는 끔찍한 진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왜 선택의 순간마다 그가 자리에 없었는지에 대해 다들 분노한다. 하지만 어렵사리 마음을 하나로 모은 그들은 단체로 탈출을 시도한다. 잠시 자유를 맛봤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발각된다. 커튼콜 뒤에 닫히는 철창문이 그들이 살아내야 앞으로 할 차가운 현실을 인식시켜 주는듯하다.
유기견 보호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강아지들의 이야기는 가슴에 묵직하게 무언가를 남긴다.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존재는 버림받는다는 사실, 그 이유가 노약해서건, 필요가치가 없어져서건 버림받은 자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죽음에서 벗어나려 자유를 갈망해도 주인의 손을 떠나 '유기견'이 된 개들은 인간에게 더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된 개들은 보호소에 갇혀 기적같이 나타날 주인 혹은 죽는 날을 기다려야만 한다. 어딘가 사회 속에서 선택받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닮았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애완견을 키우는 가정도 늘어났고, 그와 함께 유기견의 수도 늘어났다. 얼마 전 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유기견으로 파악된 강아지는 6천 마리, 이 중 2천 마리는 안락사 되고 있다. 보통 보호소에 들어와 안락사 되기까지의 기간은 20일 남짓, 그 기간 안에 새 주인이 손을 내밀지 않으면 짧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보호소에서 잘 키워지면 좋겠지만, 사료와 예방접종에만 연간 13억 원이 들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슬픈 소식쯤이 될 뻔한 유기견 이야기가 무대에 올려진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수치로 보는 통계가 아무리 자극적이어도 가슴에 남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더 언더독'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작품이다. 인간이 그려낸 유기견의 시선에서 만든 작품이지만, 현실을 알리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강아지로 분한 배우들 또한 개 그 자체가 아닌 개의 마음을 대변하듯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울림을 전한다. 철조망, 대형 환풍기 등의 무대 위 세트와 포인트를 잘 잡아낸 조명 또한 유기견 보호소라는 이미지를 조금 차갑게 그려내며 관객들의 집중력을 높인다.
뮤지컬 '더 언더독’에는 진돗개 진 역에 김준현·이태성, 군견 셰퍼드 중사 역에 김법래·김보강, 마르티스 마티 역에 정명은·정재은, 골든리트리버 할배 역에 정찬우·김형균, 달마시안 믹스 죠디 역에 김재만·최호중, 푸들 쏘피 역에 구옥분·박미소, 그 외 역할에는 김기영, 김율, 이진성, 문갑주, 이준용, 심재가 출연한다. 특히 진돗개 진 역의 배우 이태성은 데뷔 14년 만의 첫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눈길을 끈다.
한편 뮤지컬 '더 언더독'은 2017년 2월 2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된다.
(사진 제공=㈜킹앤아이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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