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박아름 기자]굳이 끔찍하거나 잔인한 장면이 눈 앞에서 펼쳐지지 않아도 더 공포스러울 수 있다. 바로 '해빙’(감독 이수연/제작 위더스필름)이 그렇다.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조진웅, 김대명, 이청아, 데뷔 55년 만에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한 신구 등이 출연한 영화 '해빙'은 얼었던 한강이 녹고 시체가 떠오르자, 수면 아래 있었던 비밀과 맞닥뜨린 한 남자를 둘러싼 심리스릴러 영화로, 올해 가장 충격적인 심리 스릴러를 예고하고 나섰다. 스릴러면 스릴러지 '심리 스릴러'가 대체 뭘까? '해빙'은 다소 낯선 장르인 심리 스릴러의 세계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해빙'의 주인공은 우연히 휘말리게 된 살인사건의 공포에 빠지는 내시경 전문의 승훈(조진웅)이다. 잘나가던 서울 강남 병원의 의사였던 승훈은 전락으로 인해 경기도 신도시의 작은 병원 계약직으로 거취를 옮긴다. 아내와도 이혼하고 혼자 정육점 건물 원룸에 사는 신세다. 어찌 보면 하는 짓도 찌질하다. 그는 정육점 주인 성근(김대명)의 아버지이자 치매노인인 정노인(신구)의 수면 내시경 검사를 시행한 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미스터리가 도사린 사건에 휘말려 점점 두려움에 휩싸여가며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후 휴식의 공간이어야 할 집은 들어가기도 무서운 곳이 되고, 집주인 부자(정노인-성근)의 친절 또한 섬뜩하기만 하다. 남에게 이해시킬 수도 없고, 혼자서는 해결할 수도 없는 의혹과 공포의 한 가운데, 승훈의 시선과 심리를 쫓아가는 영화 '해빙'은 주인공이 절대악인 살인마를 찾고 추격하는 한국 스릴러의 패턴과는 다르다. 살인의 공포는 승훈과 함께 관객 또한 숨쉴 틈 없는 서스펜스로 조이며 심리 스릴러의 새로운 재미를 선보이고 제각기 다른 캐릭터들의 비밀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며 퍼즐처럼 맞춰져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는 미스터리 본연의 재미에 충실하다.

승훈이 집주인 부자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고, 갑작스런 심리 변화와 극도의 예민함을 보이면서 관객들은 스크린에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시종일관 승훈의 시선과 내면을 따라가는 '해빙'에서 조진웅은 차차 드러나는 비밀과 맞닥뜨렸을 때의 그의 반응과 표정 변화를 통해 자신이 느끼는 긴장감과 공포, 의혹 속으로 관객들을 함께 데려간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감정과 의심, 그리고 나름의 반격까지 조진웅은 섬세한 연기와 신경질적인 날선 이미지의 모습으로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런 승훈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든 정육점 가족들은 어딘가 의뭉스럽다. 소고기도 아닌 날 것의 돼지고기를 잘근잘근 씹어먹는 섬뜩한 모습의 정노인과, 과도하게 친절한 그의 아들 성근, 그리고 새로 이사온 승훈을 잔뜩 경계하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성근의 혼혈 아들까지 그 누구 하나 평범한 사람 없는 이들은 승훈뿐 아니라 관객들조차 잔뜩 움츠리게 만드는, 말 그대로 무서운 가족이다.

명품을 휘두르고 다니는 간호조무사 이청아 역시 심상치않다. 늘 승훈의 곁을 맴도는 미연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들킨 사람처럼 바짝 긴장한 모습을 통해 그녀가 숨기고 있을 비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또 그녀는 낯선 곳에서 혼자 생활하는 승훈에게 과도한 호의를 베풀며 수상쩍은 말과 행동으로 승훈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키는 주요 인물이다.

불쑥불쑥 시도 때도 없이 승훈 앞에 나타나는 전직형사 조경환(송영창) 역시 그가 전하는 신뢰감의 뒤편으로 승훈의 편인가 하는 안도감과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며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처럼 등장인물 중엔 그 누구 하나 미스터리하지 않은 캐릭터는 없다. 제각각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는 듯해 관객들은 더욱 유심히 인물들을 관찰하게 된다.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낯설고 의심스럽게 보이기 위해 철저히 계산하고 연기했다는 후문.

'해빙'은 전반부부터 중반부까지는 심리 스릴러답게 승훈의 심리가 심지어 지루하게 느껴질만큼 섬세하게 그려진다. 그러다 어느 지점부터 폭발하게 된다. 충격 반전과 함께. 그제서야 모든 퍼즐 조각들이 맞춰진다.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들이, 혹은 '왜 저러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던 장면들의 비밀이 하나둘씩 풀리는 것. 그렇게 어느새 퍼즐이 완성된다. 마지막 퍼즐까지 완벽하게 맞춰지면 영화가 끝이 나버린다. '해빙'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은 반전에 놀라고 모든 퍼즐이 완성됐음에 속이 확 풀리는 그런 영화다.

한편 '해빙'은 '곡성'처럼 15세 관람 등급 판정을 받았다. 혹시라도 과하게 끔찍하거나 피가 낭자한 여타 스릴러물을 생각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음산한 분위기와 공포스러운 음향까지 관객들이 느낄 심리적 공포감은 엄청나다. 이수연 감독은 “눈앞에서 잔인하거나 무엇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머릿속에서 그것들이 합해져서 다가오는 공포가 큰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심리적 의심과 공포감 만으로도 소름끼치게 무서울 수 있다는 걸 바로 심리 스릴러 '해빙'이 말해준다.

이처럼 살인사건의 비밀과 맞닥뜨린 한 남자와 그의 의혹과 공포, 불안을 심화시키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담아낸 '해빙'. 각자의 비밀을 감춘 인물들 간의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하며, 숨쉴 틈 없는 서스펜스를 선보인 '해빙'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전락'이다. 승훈의 계급적 전락뿐 아니라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인물들이 서로를 나쁘게 만들어 결국은 전락에 이르는 이야기다. 그 과정은 어둡다 못해 공포 그 자체다.

3월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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