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병은 / NEW 제공
배우 박병은 / NEW 제공

[헤럴드POP=성선해 기자] 예측할 수 없는 사람과의 만남은 흥미롭다. 배우 박병은(40)이 그랬다. 작업대출의 세계를 그린 영화 '원라인'(감독 양경모/제작 미인픽쳐스, 곽픽쳐스)에서 그는 야망을 쫓는 남자 박 실장을 연기했다. 어찌나 찰떡 같은지 쉽게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냉랭하고 차가워 보이는 인상 뒤로는 빈틈 많은 구석이 숨어있다. 상대방을 쉴 새 없이 웃기는 농담은 덤이다. 남들이 말하는 조금 더 쉬워 보이는 길을 거부한 박병은은 뒤늦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돌고 돌아 데뷔 20여 년을 바라보는 지금에서야. 하지만 아직 갈 길이 구만리다.

# 낚시 익히 알려진 것처럼 박병은의 취미는 낚시다. 그의 어린시절부터 함께한 나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취미다. "초등학교 시절 집 앞에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난 그 저수지에서 스티로폼을 띄워놓고 놀았다. 거기서 동네 어르신들이 무료함을 달래려 낚시를 하더라. 그걸 구경하다가 흥미가 생겼다. 누가 버린 낚싯줄과 바늘, 떡밥을 주워서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내 첫 낚시다. 그러다 설날에 용돈을 모아서 낚싯대를 샀다. 무려 30년 전 이야기다. 그때 시작한 낚시를 중고등학교 때는 물론 지금까지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는 국회의사당 앞에서도 낚시를 했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고2때 좋아했던 신입생 여자애가 있었다. 키가 엄청 크고 귀엽게 생긴 아이였다. 그 친구가 국회의사당에 촬영을 왔다가 날 우연히 발견했다. 당시 나는 거지꼴이었는데 '병은 오빠'라고 부르더라. 어찌나 창피했던지. 그래도 낚시터에서 사람 공부 많이 했다."

"20대 초반에는 지방으로 낚시를 많이 갔다. 그러다 읍내 목욕탕에도 들르곤 했다. 뜨거운 물에 '슥-' 들어가면 어르신들이 놀라더라. 시골에서는 볼 수 없는 하얀 피부에 머리 기른 애가 있으니까. 참고로 20대 때 나는 뽀얀 피부에 눈이 컸다. 머리에는 브리지도 넣었다. 옆에서 슬쩍 보면 여자애 같았을 거다. 낚시하고 있으면 '무슨 사연이 있어서 여기까지 오게 됐냐'고 묻는 조사님들도 계셨다."

배우 박병은 / NEW 제공
배우 박병은 / NEW 제공

# 개그 본능

'원라인'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이동휘는 박병은을 향해 "코미디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그는 재미있는 인터뷰이로 통한다. 헤럴드POP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개그를 시전하며 눈물 나게 웃겼고, 풀 메이크업을 하고 온 기자를 곤혹(?)스럽게 했다. 차가운 인상 뒤에 숨은 반전이다. 하지만 마냥 웃기기만 한 건 아니다. 동료 진구는 박병은에 대해 '촬영장에서는 의외로 조용한 편'이라고 말했다. 어떤 모습이 진짜 그일까.

"다 내 모습이다. 70%는 즐겁고, 20%는 생각에 빠져있을 때가 있다. 말을 안 하고 있으면 화가 나 있거나, 날이 선 상태로 보시더라. 또 친하지 않으면 내게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오다가 사고라도 났어요?'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외모 때문인가 보다. 평소엔 직설적이긴 하지만 감정적이진 않다. 늘 행복한 편이다. 농담하는 걸 원체 좋아한다."

# 인내와 치열함 '원라인'에서 박병은은 야심 가득 행동파 박 실장을 연기했다. 부와 명예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실제 박병은과는 거리가 있다고. 그는 촬영이 끝나면 좋은 낚시터를 찾아다니며 침낭 생활을 한다. 그의 말을 빌자면 럭셔리한 버전의 노숙이다. 즐겁게 사는 걸 즐기는 박병은, 연기는 그가 거의 유일하게 욕심을 냈던 일이다. 20여 년이 넘게 한 우물만 팠다.

영화 '암살' 스틸 / 쇼박스 제공
영화 '암살' 스틸 / 쇼박스 제공

"어릴 때는 진짜 예술가 혹은 위대한 배우가 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여운 포부다. 내가 안양예고를 나왔다. 고등학교 때 연극을 열심히 했다. 소극장에서 자면서 무대 망치질까지 다했다. 의상을 구하러 안양 시장도 돌아다녔다. 분장도 친구들과 서로 해줬다. 그게 연기와 나의 첫 대면식이었다. 이후 중앙대학교 연극과에 들어갔다. 거기 가려고 4시간 자고 공부했다. 근데 막상 입학하고 나니 고등학교 때와 비슷한 걸 배우더라. 흥미가 떨어져서 1학년은 아웃사이더처럼 지냈다. 중대 호수에서 낚시하다가 걸려서 퇴학 당할 뻔 하기도 했다. 정말 유랑객처럼 살았다. 지나가던 선배가 날 보고 '이상한 사람이다'고 하더라.(웃음)" "(대학 졸업 후에는)오디션을 정말 많이 봤다. 동료들과 모임을 결성해서 1주일에 한 번은 영화사를 돌았다. 100군데를 돌리면 10곳에서 연락이 온다. 그중에 오디션이 되는 경우는 1~2개다. 그것도 '누구 친구' 등 단역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나는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확 뜬 것도 없이 단편영화부터 했다. 정말 미세하게 조금씩 나아졌다."

사실 박병은은 눈에 띄는 외모 때문에 소싯적 아이돌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길은 배우라고 믿은 그는 한눈팔지 않고 꾸준히 스스로 길을 개척해왔다. 영화 '암살'(2015)의 카와쿠치 역으로 빛을 보기 전까지 이런 생활은 계속됐다. 정말 대단한 인내심이라 할 수밖에.

"그걸 알아주시는 분이 나의 아버지다. 원래 말씀이 되게 없는 분이다. 근데 '암살'이 좀 잘되고 난 뒤가 아버지 생신이었다. 그때 취기가 약간 오르셔서 '얘는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는데 열심히 하더라'고 하더라. 원래 술도 잘 안 드시는 분이다. 그 말을 스쳐가듯 들었다. 처음 부모님께 인정받은 거다. 정말 뿌듯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봤을 때도 내가 열심히 했구나' 싶더라."

배우 박병은 / NEW 제공
배우 박병은 / NEW 제공


popnew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