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매디슨 카운티의 뒷다리" "매디슨 카운티의 옆다리" "매디슨 카운티의 윗 다리"
이게 무슨 말일까.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배우들의 필사적 애드리브다.
지난 14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는 국내서 처음 시도되는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이하 오첨뮤)'의 공연이 시작됐다. 완결된 구조의 희곡이 존재하지 않는 이 공연은 객석을 채운 100여 명의 관객들이 캐릭터의 이름과 나이, 직업, 꿈부터,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소, 명대사, 투자사까지 결정하는 독특한 형식의 구조를 취한다. 관객이 말하는 대로 당일 공연의 제목이 결정되고, 선택된 사건이 장면과 노래로 만들어지는 이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매회 공연이 첫 공연이자 마지막 공연이라는 것. 단 하루만 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공연이라 더 의미가 있다. 여기에 연출이 직접 무대에 올라 관객이 던진 즉흥적 발상에 아이디어를 더해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암전과 함께 '오첨뮤'가 시작된다. 배우가 무대에 서면 관객석에는 묘한 긴장감이 피어난다. 배우가 긴장감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입 밖으로 "아 떨린다"를 외치며 가볍게 몸을 푼다. 자연스럽게 오프닝 곡의 단어부터 관객의 입으로 정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들은 이름, 직업, 사는 곳 등을 물어 단어만을 쏙쏙 뽑아 하모니를 쌓아 노래를 부른다. 처음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은 배우들의 탄탄한 실력이다. '오첨뮤'에 출연하는 배우들, 이영미·정다희·이정수·김슬기·박정표-홍우진(더블)·민준호-김태형(연출)은 총 연출가인 김태형을 제외하고모두 뛰어난 실력을 갖춘 배우들이다. 그들의 안정된 가창력을 듣고 나면, 이 작품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작품은 완성될 것"이라고.
19일 한정 '오첨뮤' 공연의 제목은 '모범수들'이다. 주인공은 18세 김탱수, 꽃을 잘 피우는 능력을 살려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심각한 꽃 알레르기로 꽃에 가까이 가면 가려움과 기침을 멈출 수 없다. 그런 그의 꿈은 어린 왕자의 장미가 되는 것. 하지만 김탱수에게는 '길치'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어린 왕자에게 갈 수 없다. 이번 작품의 장르는 누와르로, 극의 시작 장소는 장르적 느낌을 풍길 수 있는 지하주차장으로 채택됐다. 거친 느낌을 드러내기 위한 명대사는 "살려는 드릴께."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투자사는 '나중처럼'이다.
위의 설정은 모두 관객의 아이디어다. 관객 참여형 공연이라 '아무말 대잔치'가 되지 않을까 염려했었는데, 기우였다.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은 그 누구보다 이날 공연을 재미있는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을 보였다. 연출의 선택으로 정해지는 설정을 보며 관객들은 차근차근 소재를 쌓아갔다. 박수를 보내고 싶을 만큼 멋진 관객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장난기 가득한 설정도 있다. 플로리스트인데 꽃 알레르기라니, 게다가 어린 왕자의 꽃이 되고 싶은 꿈이라니. '이거 실화냐' 소리가 절로 나오는 황당한 설정이지만, 그것을 힘겨워하면서도 해내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오첨뮤'의 매력이다.
주인공 선정도 즉석에서 이뤄진다. 배우에게 영광스러운 자리인 주인공 선발은 노래를 부르며 서로 경쟁한다. '오첨뮤'는 명세기 '뮤지컬'이니까. 주인공을 하고 싶은 이유도 여러 가지다. "주인공을 한 번 해보니 가장 쉬웠다" "오늘 친구 아빠가 오셔서 내가 주인공을 해야겠다" 등 정말 주인공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아리송한 가운데, 결국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관람하러 오신 배우 이정수가 낙점됐다.
배우들끼리 상의할 시간도 없이 연출의 지시에 따라 극이 시작된다. 관객이 마치 젠가처럼 쌓아놓은 소재와 설정을, 배우들은 아슬아슬하게 하나씩 빼가며 연기한다. 위태로워 보이는 와중에도 애드리브 대잔치를 펼치며 순발력과 눈치, 아이디어를 모두 짜낸 배우들은 점차 합을 맞추며 그럴싸한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몇 가지 약속된 규칙들은 있지만, 그것만으로 나름의 개연성이 살아있는 무너지지 않을만한 스토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배우들의 상당한 연기력을 지녔음을 입증한다. 더불어 즉석 공연인 '오첨뮤'의 완성도를 한층 더 끌어올린 것은 '뮤지컬'의 빠질 수 없는 요소인 음악이다. 피아노와 첼로 연주자는 배우들과 즉석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준비되어 있는 음악을 연주, 극에 생생함을 불어 넣는다.
무대 사고도 가감 없이 노출된다. 공연이 클라이맥스로 접어들면서 김탱수(이정수 분)는 늙은 악당(홍우진 분)과 마주했다. 드디어 늙은 악당을 무찌를 기회와 마주했는데, 이를 살리고 죽이는 것 또한 관객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연출가(김태형)는 관객을 믿지 못했다. 무대 위로 만수르(김슬기 분)를 투입했다. "연출이 나가라고 해서 나왔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김탱수와 쓰러져있던 늙은 악당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김탱수는 하는 수 없이 만수르와 투닥거렸다. 이를 보던 늙은 악당은 "나 여기 더는 못 있겠다"면서 그냥 퇴장해버렸다. 그냥 관객의 입장에서라면 '뭐하자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장면 또한 관객이 함께 만드는 입장에 있기에 웃음 포인트가 된다. 오히려 배우와 관객의 선택을 믿지 못한 연출가를 째려본다. 김탱수는 만수르에게 "아무리 연출가가 나가라고 해도 아닐 땐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지. 네가 그래서 만년 2인자인 것"이라 일침을 가하며 분노의 수염 가시를 발사해 공연을 마무리했다.
'오첨뮤'가 관객 참여형 공연을 표방하지만, 사실 관객이 없으면 만들어질 수가 없는 공연이다. 촘촘한 짜임새를 가진 완성형 공연을 보는 재미와는 다른, 날 것의 미완성형 이야기를 차곡차곡 함께 만들어가는 즐거움은 마치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가며 그림을 감상하는 듯한 재미과 성취감을 선사한다. 단 하루만 볼 수 있는 한정판, 거기에 관객이 함께 만들 수 있는 공연인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미완의 빈틈마저 웃음으로 연결되는 새로움 즐거움이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5월 14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공연.
(사진 제공=아이엠컬쳐, 본사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