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천윤혜기자]조영남이 그림 대작 의혹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의 비화를 전했다.
28일 방송된 SBS 플러스 예능 프로그램 '강호동의 밥심'에서는 조영남과 이화선이 출연해 밥심을 얻고 갔다.
먼저 이화선이 등장했다. 이화선은 과거 'X맨'에 고정 출연하며 강호동과 인연을 맺은 바 있다. 그런 이화선이 등장하자 강호동은 반가워했다. 이화선은 강호동을 본 지 15년 정도 됐음을 밝히며 "그쯤 레이싱을 시작했는데 잘 돼서 프로레이서로 10년간 활동했다"고 근황을 전했다.
그는 이세창의 권유로 카레이싱을 시작하게 됐다고. 여자선수가 필요했던 상황이라 이세창은 자신에게 권유했음을 밝히며 "장롱면허라 운전을 해본 적이 없었다. 도로주행 중이라고 하니까 '액셀과 브레이크만 밟으면 된다'고 했다. 저는 '누가 해볼래?' 하면 무조건 고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화선은 또한 "연예인 최초로 카레이서 연봉을 받았다. 5년 동안 아마추어로 활동하다가 프로 경기를 나갔는데 2등을 했다. 그 뒤로 프로팀 감독님이 제의해주셨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처음에는 제가 이렇게 오래 버틸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잘 해줬는데 어느 순간 성적이 좋으니까 '이화선보다 못 타면 레이싱 그만둬야지'라는 분들이 있더라"고 여자라는 이유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고백했다.
그는 "작년에 친동생이 하늘나라로 갔다. 밥심이 필요해서 왔다"며 '밥심'에 출연한 이유를 말했다. 이화선은 "동생이 췌장암 3기로 투병을 2년 2개월 정도 하다 결국은 결과가 좋지 않았다"며 "연년생인데 정말 사이가 좋았다. 제가 살면서 힘든 적도 많고 자신감을 잃을 때도 많았는데 동생은 늘 '언니가 우주 최강 예뻐'라고 해줬다"고 했다.
이어 "셰프라 10년 동안 미국에 있었다. 한국에 온 지 5년 만에 아팠다. 왼쪽 등이 계속 아프다고 하더라. 혼자 한의원도 다니고 마사지도 받다가 혼자 암 센터를 갔더라. 어느날 동생이 '언니 할 얘기 있어. 나 암일지도 모른대' 했다. 그날 밤새 췌장암에 대해 찾아봤다. 조직검사 결과가 암으로 나왔다. 항암을 1년 가까이 했었는데 잘 견뎠다. 암이 수치상 낮아졌는데 수술을 하자고 하시더라. 수술을 했는데 그때부터 힘들었다. 장폐색이 와서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항생제로 인한 장염까지 왔다. 그 사이에 회복을 못하니까 다시 암이 다 퍼진 거다. 희망이 거의 다 보일 때쯤에 다시 절망하게 됐다. 두렵더라"고 고백했다.
이화선은 "마지막 떠나기 전 3개월이 너무 미안하다. 그 밝았던 애가 짜증만 내고 힘들어하고 그래서 저도 짜증을 냈던 것 같다. 동생이 절 보고 싶어했는데 가장 힘든 마지막 3개월 동안 동생을 피했다. 부딪히면 나도 화가 나서 그랬는데 너무 미안했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이화선은 동생이 만들어줬던 새우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주문했고 음식이 나오자 먹먹해지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강호동 표 파스타를 먹어보고 "마음이 느껴지는 맛"이라며 호평했다.
이화선은 '색즉시공' 영화를 찍은 뒤 자신에게 생긴 선입견으로 인해 힘들었다는 속내도 고백했다. 그는 "영화 끝나고 나서 일로 찾는 게 아니라 '밥 한 번 먹게 해달라, 술 한 번 마시자' 하더라. '영화 캐릭터랑 많이 다르시네요'라고 얘기한 사람들도 있고 '욕 한 번만 해주세요', '일 년에 몇 천 만원 보내주면 되는 거야?' 하더라"며 "작품도 노출을 요하는 작품들만 들어왔다. 잠수를 탔다. 제일 소극적인 대처였다. 섹시 아이콘으로만 소비하기를 원하니까 용기가 없었다. 그러다 레이싱에서 프로 데뷔를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모터스포츠 쪽에 집중했다. 거기에서는 저를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았다"고 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뒤이어 조영남이 방문했다. 화수로 활동한다는 그는 "가수는 노래할 때 가이고 손 수 아닌가. 그림 그리는 사람은 화가이기 때문에 둘을 합해서 화수다. 내가 만든 거다'고 남다른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후 "5년 동안 재판 받았다. 기소가 되고 기소되는 순간 방송은 끝났다. 기소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법체계가 기가 막힌다. 1심에서 유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나왔다. 집행유예 이후 방송 활동도 가능했다. 나는 2심으로 가보자 했다. 유죄를 인정하면 평생 죄인, 사기꾼 화가가 되는 거 아닌가. 가짜 화가라는 소리를 못 듣겠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심 선고 전 내가 그런 위치에 처하니까 내 사람이 가려졌다. 예를들어 '창희야 너 그림 잘 그리지? 이걸 그대로 그려와'라고 했다. 얘가 그대로 그려왔다. 잘 하긴 했는데 표현이 잘 안 된 부분을 내가 표현해서 전시를 했다. 조영남 작품으로 팔렸는데 그게 죄가 된 거다. '나보고 얼만큼 칠했냐'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기억하냐. 싸움이 길어졌다. '화투 그림은 대한민국에서 조영남밖에 없다, 내 작품이다'라고 싸운 거다. 2심에서는 그게 받아들여져 무죄가 됐다. 그런데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가 되면 자동으로 검찰 측에서 상고하게 돼있다. 그렇게 나는 대법원까지 갔다. 5년 걸렸다. 특이 케이스다. 딴 건 다 괜찮은데 법원에서 오는 등기를 받을 때마다 피가 마른다. 그걸 친구들한테는 피 안 마르는 척했다. 그 5년 동안 내가 집을 버티고 있느냐가 고심이었다. 집을 팔고 나오면 조영남 망했다는 소문이 날 거 아닌가. 5년간 내가 그 집을 지켰다. 거기에 그림 환불해달라고 엄청 오니까 환불비 주고 집에 앉아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런 그를 위해 이성미와 이경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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