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덕셔니스트 by Alexikakos 남성의 여성에 대한 모든 환상은 크게 두 가지, 어찌 보면 서로 상충되는 성격의 것으로 나뉠 수 있는데, 이 두 환상은 종종 서로 충돌하기에 남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에 대한 혼란을 안겨준다. 두 가지 환상은 바로 성녀의 매력과 탕녀의 매력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안전과 안정을 원한다면, 남성은 여성에게서 섹스와 안식을 얻으려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성녀와 탕녀는 이 두 가지 남성의 욕망을 각 이상화한 환상들이다. 성녀는 남성에게 있어서 궁극적 안식의 이상향이다. 진화는 남성에게 태생적으로 세상의 위험과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역할을 주었다. 남성의 인생은 모든 것을 투쟁으로 인식하며, 끊임없는 생존을 위한 경쟁은 세상살이를 질리게 만드는 데 충분하다. 성녀는 세상엔 결코 보여줄 수 없어 남성 내면만 깊이 잠들어 있을 수밖에 없는, 아파하는 소년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이상적인 어머니 상의 반영이며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상냥한 누이와 같은 존재다. 사랑을 알지언정 욕망은 모르는 그녀는 정숙하며, 더럽고 비정하게도 치열한 세상에 마지막 미덕과 아름다움이 남아있다는 희망을 품게 만드는 최후의 안식처이다. 너무나 순수하고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는 소녀 같은 그녀는 남성에게 낙원과도 같았던 어린아이의 세계로 다시 그를 초청한다.
탕녀는 성모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악마나 짐승으로 대변되는 순수한 본능의 존재다. 소녀라기보다는 원숙한 어른인 그녀는 역시 남성이 깊숙이 억누르고 있는 지극히 생리학적인 욕정을 불사른다. 그녀는 남성들을 오로지 물질적, 육체적 쾌락으로 유혹하며 섹스 이외의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자신을 만족시켜줄 수만 있다면 상대가 누군지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탕녀는 여러 가지 도덕적, 관념적 금기들에 통제되어 해방되지 못하는 남성들의 숨겨진 욕구들을 분출할 수 있는 완벽한 상대다.
여러 가지 종교적 관념처럼 반드시 성녀가 선이고 탕녀가 악인 것은 아니다. 그냥 적절한 표현을 찾아 빌린 용어일 뿐이지, 자연과학의 세계에서는 선과 악이 없다. 오로지 필요와 불필요, 효율과 비효율이 있을 뿐이다. 남성에게는 성녀의 매력과 탕녀의 매력 모두 한 여자 안에서 필요하다. 물론 현실세계에 성녀와 탕녀는 존재하지 않건만, 이데아로써의 두 개념을 현실에 투영한 많은 남성들은 부분적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순수할 줄 알았던’ 그녀가 알고 보니 남자관계가 복잡했다거나, 한없이 관능적인 농염한 여신이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방귀를 뀌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남성의 환상은 깨지고 간혹 실망을 하기도 한다.
그럼 남자들은 왜 이런 쓸데없고 터무니없는 환상을 갖게 된 걸까?
답은 역시 진화심리학에 있다. 남성이 원하는 안정과 번식이란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가능성을 최대화시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남성이 ‘순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여성’을 원하는 사실은 자명하다. 순결한 만큼 자신 이외의 남성과 교배하지 않기를 바라며(즉, 둘 사이에 낳은 자손이 명백히 자신이 유전자를 보유하기를 바라며), 의지할 수 있음을 신뢰한다는 것은 자신이 한 투자만큼 여성 또한 돌려줄 것에 대한 기대를 의미한다.
반면 남성들은 ‘리스크 없는 투자’ 또한 즐긴다. 상대가 만약 어차피 헤픈 여자고 동시에 많은 남성과의 성관계를 즐긴다면 그러한 여성과의 성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투자 의무 없이 나의 유전자를 전달할 수 있는 일말의 기회라도 주게 된다. 내 자손을 다른 남성이 키워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당첨되길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아쉬울 건 없으니 로또 한 장 사두는 심리랄까? 자신이 책임지고 싶어하지는 않기에 탕녀와의 섹스는 환영이지만 교제는 망설여진다. 반대로 완벽한 성녀라면 교제야 예스이지만 별로 상대에게 성욕은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때 흔히들 '지켜주고 싶어서'라는 표현들을 쓴다.
결론을 말하자면 남성은 헤프고 야한 여자와 정숙하고 순진한 여자를 둘 다 좋아한다. 하지만 본능에서 비롯된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섬세하지만은 않기에 남성은 감정의 오류를 일으켜 한 상대에서 두 가지의 모습 모두를 원하기도 한다. 결국 둘 다 남성이 원하는 여성상이니깐. 야한 여자는 완벽한 섹스 파트너, 순진한 여자는 완벽한 배우자감으로 인식한다는 거다. 남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
*Seductionist 유혹이라는 뜻의 Seduction이란 단어에 ist라는 접미사를 붙인 저자의 신조어. 굳이 한역하자면 '유혹 전문가'.
sport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