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주 기자]올해 영화계 이변 중 하나를 꼽으라면 ‘베테랑’의 천만 클럽 가입일 것이다. ‘베테랑’의 선전은 의외였다. 우선 대진운부터 좋지 않았다. 거리 곳곳을 뒤덮은 포스터, 도심 건물을 통째로 삼킨 대형 홍보판 등 물량 공세로 쳐들어온 영화 ‘암살’을 상대하기에는 몸집이 작았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도둑들’로 천만 맛을 본 ‘베테랑 감독’ 최동훈인 데다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등 스타 배우들이 뭉쳤다. ‘암살’의 흥행은 이미 예상됐다.
2주 차이를 두고 나온 ‘베테랑’에게 ‘암살’의 그늘은 짙었다. 천만을 향해 매섭게 돌진하던 중이라 ‘베테랑’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적어 보였다. 다행히 좋은 작품은 외면받지 않았다. 뚜껑을 연 ‘베테랑’은 쫄깃했다. 틈을 주지 않는 탄탄한 전개, 빨려드는 속도감, 캐릭터에 완벽 몰입하며 유영하는 배우들. 결국 류승완 감독에게 9번째 도전 만에 첫 천만 기록을 안긴 작품이 됐다. ‘베테랑’이 낳은 최대 수혜자는 유아인(29)이다. 주연 배우 황정민은 연기 내공이 상당한 배우다. ‘베테랑’에서도 그의 연기는 생생하다. 정의를 위해 달리는 서도철 형사가 황정민의 몸짓을 통해 사실감 있게 그려졌다. 그는 이미 잘하는 배우로 유명했다. 그런 와중에 유아인의 연기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허를 찌른 한 방이랄까. 최고 권력을 갖고 부정한 행위를 감추기 위해 더 악랄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재벌 3세 조태오. 부당한 대우에 반항하는 배기사(정웅인)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아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자신의 아이를 가진 다혜(유인영)를 무참히 내치는 잔인무도한 인물이다. ‘유아인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나’ 할 정도로 정교하게 표현해냈다. 개봉을 앞둔 영화 ‘사도’와 SBS 50부작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 이어 줄줄이 대기 중인 감독들과 제작진의 러브콜에서도 유아인의 힘을 입증한다.
배우들 사이에서도 유아인의 연기는 단연 화제다. 올해 본 영화 중에 인상 깊은 작품이나 배우를 묻는 질문에 ‘베테랑’ 속 유아인이 빠지지 않았다. 황정민을 위협하는 유아인의 맹활약은 한국영화 천만 클럽에 가입한 20대 배우 중에서도 눈에 띈다. 흥행 역대 3위인 ‘괴물’의 고아성이나 역대 4위 ‘도둑들’의 김수현이 있지만 극 전체를 전면에서 끌어가는 힘은 보여주지 못했다. 비견할만한 배우가 있다면 역대 8위작인 ‘왕의 남자’에서 강렬한 선을 보여준 이준기 정도. 이후 10년 만에 얻은 값진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유아인의 연기가 놀라운 것은 곱상한 외모에 갇히지 않고 여러 캐릭터를 넘나들며 연기의 변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베테랑’의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는 까다로운 역이었다. 부를 가졌으나 정신적 결핍이 심한 비정상적 인물이다. 마약에 의존할 정도로 감정 기복이 심한 데다 온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어렵다. 형제들과 다른 배경에서 오는 자격지심과 복수심으로 뭉친 인물로 감정선이 복잡하다. 유아인이 이 어려운 과제를 과감히 택할 수 있었던 건 전작에서 이미 여러 작업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개봉한 영화 ‘완득이’가 본격 신호탄이었다. 이후 영화 ‘깡철이’를 거치면서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강철 역으로 눈도장을 찍더니 ‘밀회’에서는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은 애절한 사랑 연기로 나이의 경계를 허물었다.
유아인의 독보적인 활약은 같은 20대 또래 배우들에게 자극이 되고 있다. 쉴 새 없이 터지는 연기력 논란과 한정된 캐릭터와 안일한 선택에 갇혀 의미 없는 자기 복제에 지친 20대 배우들이 꽤 된다. 20대 배우만이 표현할 수 있는 과감함과 신선함을 찾아보기 어려울 때도 많다. 이들의 튀는 색감이 작품에도 반영되지 못해 20대 활약이 상대적으로 미미해 보일 정도다. 쉼 없는 도전과 어떤 캐릭터든 깊이 있게 빠져드는 유아인의 행보는 20대 배우들에게도 연기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물론 유아인이 처음부터 연기를 잘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4년 KBS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으로 데뷔해 고교 시절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여느 아역 배우가 그렇듯 연기가 미흡했고 자신의 색깔이 쌓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역 배우 출신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가 이미지 변신이 어렵다는 것이다. 유아인도 그랬다. 데뷔 초반 사랑받는 이미지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 틀을 깨고 나온 ‘베테랑’ 속 유아인은 자신의 가치를 아직 다 드러내지 못한 중고 신인이나 이미지 한계에 갇힌 아역 배우들에게 울림이 되고 있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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