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현장 인권’을 조율하는 가이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권보람 인터뷰

미투 운동 이후 부각된 직업…해외는 활발하나 한국은 아직

“한국 영화 현장에 ‘당연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

[챗 GPT를 사용해 제작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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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뮤즈=김민지 기자] “수위 높은 장면을 하나의 안무인 것처럼 짜주었다는 하예린 배우의 말, 그 말 한마디가 필요했어요. 액션 장면에 무술 감독이 있듯,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노출·베드신에 당연히 필요한 존재가 됐으면 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에 오르는 수많은 이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기획부터 촬영, 조명, 음향 등 무수히 많은 역할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쓸모를 다하는 사람들 속 미처 몰랐던, 하지만 촬영장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가 있다.

국내 1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전하는 촬영장의 ‘필수 존재’에 대하여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국내에서 다소 생소한 이 직업은 ‘인티머시 신’이 포함된 할리우드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인티머시 신이란 배우의 노출이 있는 장면이나 키스신, 베드신 등 성애 행위가 포함된 모든 장면을 말한다. 그리고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인티머시 신을 촬영할 때 감독과 배우 사이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해외 영화에서는 인티머시 신에서의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직업이다. 그렇다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현장에서 어떤 조율을 할까.

권보람 인티머시코디네이터. [본인 제공]
권보람 인티머시코디네이터. [본인 제공]

헤럴드뮤즈는 ‘국내 1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권보람씨를 직접 만나 선진적인 제작 환경에 필요한 직업, 인티머시코디테이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2025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권보람씨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배우는 물론, 현장의 감독과 스태프 모두의 정서적인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굉장히 중립적이어야 하는 사람”이라며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여성만을 위한 건 아니다. 강압적, 가학적인 성적인 장면을 찍는 가해자 역할을 하는 배우부터 촬영 스태프 모두가 예민한 상황 속 보호를 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장에서 인티머시 신이 있을 때는 짧은 안전 교육도 시키고, 배우가 지나갈 때 정면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주의를 주거나, 스태프분들 중에서 폭력이나 강압에 의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런 것도 보호해 주고 상황과 분리를 해주는 조치를 취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가장 주된 역할은 인티머시 신에 참여하는 ‘배우’와 ‘감독’ 간의 조율이다. 특히 예민한 노출과 표현이 포함된 인티머시 신이기에 상세한 대화와 협의를 거칠 수 있도록 돕는 것.

권보람 씨는 “인티머시 장면이 있는 경우 감독 및 배우들과 사전에 1:1로 먼저 만나 ‘배우 동의와 관련한 경계 설정’을 한다”며 “이야기상 해당 장면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어느 정도의 수위를 생각하는 지 등을 매우 상세하게 논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나리오를 받고 인티메이트 신을 분석한 뒤 감독과 구현 방식에 대해 상·하체 노출 범위 등 모든 것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와도 이야기를 나눈다”며 “이때 배우에게 정서적으로 확인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혹시 배우가 표현을 어려워할 수도 있으니 지속해서 의사를 확인하는 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라고도 덧붙였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생소한 직업이자, 알려져야만 하는 위치에 있는 상황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4>의 주인공 배우 하예린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 점은 “매우 귀한 말이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당시 하예린은 로맨스 장면의 높은 수위의 노출 연기와 관련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에게 특별히 감사 인사를 전했는데, 그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수위 높은 장면을 하나의 안무인 것처럼 짜주었고, 덕분에 안전함을 느끼며 촬영할 수 있었어요. 필수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권보람씨는 “하예린 배우가 이야기한 ‘안무’라는 단어가 정확하다”며 “안무를 구성하는 것처럼 성애신의 자세나 손동작, 무릎의 위치 같은 것도 코칭하고 배우들이 캐릭터와 자신을 명확하게 구분하도록 ‘당신은 캐릭터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교육한다”고도 설명했다.

미투 운동 이후 부각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역할론, 해외는 활발 한국은 아직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미투 운동과 함께 역할이 대두됐다. 2017년 10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와인스타인의 스캔들과 함께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촬영 현장 내 갑과 을, 무엇보다 노출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수면 위로 올라왔기 때문. 현장에서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무리한 요구가 절대 생기지 않게끔 하는 게 이 직업의 주 역할이기도 하다.

지난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열린 ‘넷플릭스 크리에이티브 아시아’ 세션에 참석한 일본의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모모코 니시야마. [넷플릭스 제공]
지난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열린 ‘넷플릭스 크리에이티브 아시아’ 세션에 참석한 일본의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모모코 니시야마. [넷플릭스 제공]

해외에서는 이후 제도적으로 인티머시코디네이터의 존재를 명시하고 있다. 특히 배우 인권 보호에 막강한 힘을 지닌 할리우드에서는 더욱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에 대한 목소리가 크다.

권보람씨와 해외에서 함께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자격을 얻은 이들은 이미 현장에 투입된 지 오래라고. 그는 “한국 영화 산업이 예전과 비교했을 때 한 발짝 멀리서 보면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막상 제가 투입되지 못하는 걸 보면 아쉽다. 적극적으로 이 직업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제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낯설지 않은 직업이 되는 것, 한국 영화의 당연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

국내 1호 인티머시코디네이터 권보람씨가 특강을 하는 모습. [본인 제공]
국내 1호 인티머시코디네이터 권보람씨가 특강을 하는 모습. [본인 제공]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영화과에서 기획전공으로 졸업한 권보람씨는 졸업 후 독립영화를 제작하며 영화 산업에 대해 가까이 봐왔기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에 대한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믿는다.

영화 <영주>, <빅슬립> 등의 프로듀서로 일했던 권씨는 미국의 인티머시 프로페셔널 연합(IPA)에서 운영하는 전문 과정을 수강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됐다. 한국에서는 관련된 교육을 받을 곳이 없는 상황이다.

IPA는 영어로 교육이 진행되기에 가장 큰 장벽은 언어에 있다. 다행히 영어에 능통했던 권씨는 교육과정에서 정말 광범위한 내용을 익혔다고.

그는 “(교육 과정에서) 효과적인 의사소통 갈등 해결 방법, 동의 경계 설정 방법, 촬영장 권력관계 이해, 젠더 감수성 교육 등 촬영장 에티켓, 제작 환경 전반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고 시험과 대면 실습 워크샵 등으로 이뤄진 총 6개월의 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참여해 촬영을 마친 단편 영화 ‘갈비뼈’.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참여해 촬영을 마친 단편 영화 ‘갈비뼈’.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지금까지 한국 작품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참여한 사례는 2023년 임하연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졸업 작품인 <갈비뼈>에서 일본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투입된게 유일하다. 일본에선 2021년 1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나온 것을 시작으로 현재 5∼6명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대비되는 상황.

따라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리는 게 우선이라는 권보람씨는 국내 1호의 무게를 안고 제작사의 문을 두드리는 중이라며, 이미 몇몇 작품에서 열린 마음으로 투입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권보람씨는 인터뷰 말미, 다양한 제작 환경에서 자신의 역할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그저 미팅이라도 여러 번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며 “낯설지 않은 직업이 되는 것. 영화를 찍을 때 감독, 프로듀서, 촬영감독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도 꼭 있어야 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게끔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al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