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에서 이어짐)
[헤럴드POP=노윤정 기자] 대중이 백청강이라는 가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을 통해서였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백청강은 안정된 가창력과 독특한 음색으로 호평을 받았고, 시즌1 우승자 타이틀을 거머쥐며 꿈을 향한 한 발을 내딛었다.
백청강은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를 위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향했다. 한국 무대에 서고 싶다는 그 바람 하나로 어린 나이에 타지 생활을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가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으로 왔고, 결국 꿈을 이뤘다.
“어릴 적부터 내 자신을 티내는 걸 좋아했어요.(웃음)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해서 주목받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반에서 노래할 일 있으면 무조건 나갔고요. 다들 노래 잘하는 사람으로 저를 꼽아줘서 ‘나 노래 좀 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랐고, 11살 때쯤 H.O.T.의 ‘위 아 더 퓨처(We are the future)’ 무대를 보면서 저런 가수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때는 단순히 어린 마음에 멋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중학교 오면서부터는 공부보다 이쪽 계통 일들이 저한테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음악학교에 들어갔어요. 부모님은 반대하셨죠. 특히 어머니가 많이 반대하셨어요.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길 바라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제가 해야 한다고 정한 건 무조건 해야 하는 성격이에요. 공부도 잘하긴 했어요. 학년에서 10등 안에 들 정도의 성적이었죠. 그래도 가수가 하고 싶었어요”
어린 백청강에게 가수란 화려하게 꾸며진 모습으로 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 서는 직업이었다. 처음 가수라는 꿈을 꿨을 때는 막연히 동경하는 마음이 컸다. 다행히 노래 실력이 뒷받침됐기에 목표했던 대로 무대에 서는 가수가 될 순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겪게 된 현실은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중국에 살 때도 가수로 활동하긴 했었는데 그렇게 유명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지역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죠. 그리고 한국에 와서 가수가 됐는데, 제가 생각했던 가수랑 많이 달랐어요. 가수는 무대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모습이 다 인줄 알았어요. 실제로 겪어보니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어릴 때 가수라고 하면 이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존재로 보였는데, 정작 가수 생활을 해보니까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중국에서 제일 이해가 안 됐던 건 왜 연예인들을 연애를 공개 안 하느냐는 거였어요. 사랑하는 사람인데 왜 숨어서 만날까, 나는 가수 되면 그렇게 안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돼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웃음) 어릴 적에 생각했던 거랑 실제로 가수가 돼 보니까 달라요”
특히 백청강은 의지할 사람이 적고 문화가 다른 타지에서 연예인 생활을 시작했다.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백청강 역시 한국에서 문화 차이로 인한 애로사항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유독 강조하며 당시 겪었던 어려움을 고스란히 전했다.
“중국에서는 90도로 인사하거나 하진 않아요. 그래서 방송국에서 PD님들한테 많이 혼났어요. 그리고 인사를 해도, 눈을 바라보면서 인사하니까 인상이 안 좋다고 혼나고. (…) 전혀 이해를 못했죠. 왜? 나 인사도 했는데? 그런데 회사 분들이 인사를 해보라고 해서 했더니 이래서 안 된다고, 이래서 욕먹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진짜 몰랐어요. ‘위대한 탄생’ 때도 그렇고, 저를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어요. ‘위대한 탄생’ 때는 PD님들이 다 예뻐해 주시고 잘한다고만 해주셨으니까. 문화에 대해 배울 기회는 적었어요”
녹록치 않았을 타지 생활, 그 중 백청강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백청강은 ‘노래를 하지 못했던 시간’을 꼽았다.
“제가 아팠을 때 의사 선생님이 수술이 잘 안 되면 가수 생활을 못할 수도 있다고 하셨었어요. 최선을 다하겠지만, 가수 생활이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 생각해두라고 하셨죠. 수술 후 쉬는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몸에 힘이 없으니까 노래도 안 나오고. 아무 것도 안 되니까 그때는 무대에 못 오르는 것만 생각났어요.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내가 가수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어요. ‘이 길을 가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병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내가 가수를 안 하면 뭐하지?’ 어릴 때부터 가수 말고 하고 싶은 게 없었거든요. 막막했어요. (…) 그래도 음악을 포기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작사·작곡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렇게 힘들었던 시기에 가장 힘이 돼준 건 가족들, 그리고 ‘제2의 가족’인 팬들이었다. 현재 백청강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백청강을 응원해주고 지탱해주는 가장 큰 버팀목이다. 이는 팬들 역시 마찬가지다.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도록 해준 건 제 팬들이었어요. 거의 3~4년 활동을 못했는데, 팬들이 계속 기다려주고 응원해주셨잖아요. 그게 제일 힘이 됐어요. (…) 물론 부모님도 많이 응원해주셨고, 친구들, 지인들도 격려해줬어요. 그런 말들이 저한테는 힘이 많이 됐죠”
“팬분들은 제가 오랜만에 앨범을 내도 좋아해주시고, 지방으로 공연을 가도 다 따라오세요. 그렇게 저를 응원해주시는 게 큰 힘이 돼요. 너무 고마운 마음이에요. 그런 마음을 항상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팬들에게는 항상 고맙고, 앨범이 나올 때마다 같이 들어주시니까 감사하죠. 앞으로도 절 응원해줄 거라고 믿고 있어요. 너무 감사해요. 진짜 제2의 가족이에요. 보면 다 알 수 있어요”
활동 기지개를 펴며 제 2의 가수 인생을 시작하려는 백청강. 그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일단 대표곡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인간 백청강으로는 제일 하고 싶은 게 연애예요. ‘봄 디 봄(BOMB DI BOMB)’도 여자를 유혹하는 노래인데, 그런지가 오래 돼서….(웃음)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연애를 좀 더 해봤을 텐데. 물론 몰래 할 수는 있지만 상대가 힘든 거잖아요. 제대로 데이트하기도 힘들고요. 그래서 연애를 안 하는 거예요. (…) 연애, 특히 공개연애는 아직 이른 것 같아요. 지금은 일에 더 신경 써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일도, 사랑도 다 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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