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멋진 배우도 좋지만 극에 담긴 이야기를 보고 듣자. 흥겨움 속 가려진 드라마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2015년 초연에서 새로운 장르와 흥겨운 공연으로 호평을 받았던 뮤지컬 '인 더 하이츠'가 재연으로 돌아왔다. 국내 뮤지컬 무대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랩, 힙합, 스트릿 댄스, 강렬한 리듬으로 무대를 풀어내며 최고의 브로드웨이 쇼 뮤지컬다운 면모를 보였던 그 작품이다. 초연에서 활약했던 양동근, 정원영, 장동우, 키, 김성규은 한층 더 완성도 높은 캐릭터로 돌아왔고, 김유권, 박강현, 차학연, 안재효, 이상이가 새롭게 합류했다.
아이돌부터 뮤지컬 배우, 래퍼 겸 배우까지 어느 하나 규칙성이 없어 보이는 캐스팅은 무대마다 다른 감각을 선보이며 회전문 관람을 이끌었다. 매력적인 배우들이 한껏 모여 작품 자체보다는 배우에게 시선이 모인 경향이 있지만, 뮤지컬 '인 더 하이츠'가 품은 드라마는 배우들 매력에 지지 않을 만큼 의미가 있다.
맨해튼 북서부의 워싱턴 하이츠. 중남미계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이 거리는 언제나 활기가 가득하다. 누구나 포용하는 할머니 클라우디아부터 성격 좋은 우스나비, 운수회사의 베니, 미용사 바네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한대 모여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하이츠의 자랑인 운수회사 사장 딸 니나가 집에 돌아온다. 명문대 스탠포드를 다니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온 니나는 자신을 환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에도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니나의 말에 화를 내던 아빠 케빈은 회사를 팔아서라도 학비를 내겠다고 선언한다.
여자를 좋아하지만 어떻게 해야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우스나비는 소꿉친구 바네사를 좋아한다. 예쁜 얼굴에 환상적인 몸매를 가진 바네사는 언제나 빚 독촉 전화를 받으며 집세와 각종 세금 걱정을 하는 어려운 처지다. 그 사이 니나는 베니와 연인 관계가 된다. 하지만 니나의 부모님은 "좋은 애지만, 베니는 안된다"는 말로 둘 사이를 격하게 반대한다.
우스나비는 자신의 슈퍼마켓에서 1억 원의 복권 당첨자가 나왔다는 것을 알고 흥분한다. 깜짝 놀랄만한 복권 상금의 주인공은 할머니 클라우디아. 그녀는 상금으로 고향에 돌아갈 꿈을 꾸며 손꼽아 그 날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클라우디아는 결국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정전과 강탈, 절대 안전하지 않은 하이츠를 하나둘 떠나는 사람들. 우스나비 또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짐을 꾸린다.
우스나비의 사촌 동생 소니는 그리피티 피트에게 거금을 쥐여주며 특별한 부탁을 하고, 우스나비의 마음을 움직일 선물을 선사한다. 더불어 바네사까지 합세, 우스나비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낸다. 사랑과 정(情)이 넘치던 거리 하이츠를 외면할 수 없었던 우스나비는 자기가 성장한 그곳에서 다시 한번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희망이 꺾였던 니나 또한 힘을 내 스탠포드로 돌아가 공부하기로 다짐한다.
우스나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랩과 앙상블 배우들의 화려한 칼 군무는 단연 시선을 압도한다. 퍼포먼스를 더욱 빛나게 하는 라틴풍의 신나는 음악은 자리에 앉아 박수만 치고 있어야 하는 관객의 몸을 근질거리게 한다. 워싱턴 하이츠에서 겪어내는 이민자의 힘겨운 삶, 평생을 그 나라에서 살았지만 낯선 사람 취급을 당하는 설움을 노래하는 넘버는 가사 내용은 찡할지언정 우울함이 조금도 묻어나지 않는 리듬을 구사한다.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소망하는 그 순간에도 "내 몸에도 라틴 피가 흐른다"고 말하며 골반을 돌리며 춤을 선보인 니나처럼, 애틋함과 힘겨움을 라틴의 정열과 파워를 담아 승화시킨다.
'인 더 하이츠'가 품고 있는 현실은 공감도가 높다. 학업을 중단하고 온 명문대생 니나는 "하루 종일 공부하는 애들을, 아르바이트하느라 잠 잘 시간도 모자란 내가 어떻게 이겨!"라고 울부짖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류가 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교육, 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니나와 그의 부모에게 미래가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래서 아빠 케빈은 단번에 회사를 팔아 돈을 마련하겠다는 결정을 한다. 이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알아줄 정도다. 그만큼 교육에 투자되는 돈과 시간은 막대하다. 착실한 조기 교육으로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경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더욱 치열하게 학점 경쟁을 하고, 그 후에는 취업이라는 관문이 기다린다. 끝없이 나타나는 경쟁과 생존의 압박 속에서도 교육을 포기할 수 없는 건, 지금을 벗어나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열망하는 모두의 바람.
쉽게 나아지지 않는 삶, 일확천금을 해도 누릴 수 없는 인생, 결국에는 머무르게 되는 생활, 이런 현실들은 '인 더 하이츠'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화려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 그리고 랩이 어우러진 흥겨운 무대에서 풀어낸 이야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서 '인 더 하이츠'는 또 보고 싶은 작품이다. 미국 워싱턴 하이츠라는 공간 설정과 이민자의 삶을 전면에 드러낸 것은 낯설지 몰라도, 그들이 가진 스토리의 요소 하나하나는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또한 현실의 무게를 무대에서까지 보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듯, 지긋지긋한 그레이 빛 현실에 찬란한 컬러감을 입힌 것은 관객의 피로감을 덜어준다.
초연에 이어 다시 한번 '인 더 하이츠' 무대에 선 인피니트 김성규(베니 역)와 장동우(우스나비 역)는 안정된 연기력을 선보이며 무대를 이끈다. 특히 우스나비로 분한 장동우는 극의 중심에서 재간둥이의 면모를 드러내며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캐릭터를 잘 표현해냈다. 누구와도 허물없이 잘 어울리는 우스나비의 성격을 가끔은 호들갑도 떨지만 무겁지 않게, 중심을 잃지 않는 연기력으로 잘 드러냈다. 뮤지컬 무대에서 듣는 랩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그의 안정된 랩 실력은 관객의 흥을 돋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이돌에서 예능돌로, 그리고 이제는 무대까지 점령한 김성규는 차분하게 연기력까지 선보이며 진정한 '사기캐'임을 증명했다. 운수회사에서 일하는 베니로 분한 김성규는 블랙 팬츠와 화이트 셔츠로 심플한 의상을 입고도 존재감을 뽐냈다. 캐릭터 자체는 우스나비보다 독특함이 적었지만, 니나와의 러브라인으로 시작하여, 스페인어를 못하면서도 배차를 해보고자 노력하는 열정 있는 청년, 갑작스레 닥친 절망 속에서 희망을 꿈꾸는 건실한 인간으로의 소소한 매력을 제대로 드러내며 이야기의 한 축을 잘 소화했다.
한편, 우스나비 역에 양동근·정원영·장동우·키·김유권, 베니 역에 김성규·박강현·차학연·안재효·이상이, 바네사 역에 오소연·제이민, 니나 역에 최수진·나하나 등이 출연하는 뮤지컬 '인 더 하이츠'는 오는 2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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