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나는 내가 무엇인지 결정해야 하는데, 못하겠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나로 정의하고 사는가. 110분의 열띤 싸움은 결국 종착지를 찾지 못한다. 그 선택의 중심에 서 있는 존의 우유부단함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고 짜증 나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누구인지 선택하는 것이 왜 필요한가 궁금증이 생긴다.
지난 3월 10일부터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공연된 ‘수탉들의 싸움_COCK(이하 ‘수탉들의 싸움’)’이 4월 9일 막을 내린다. ‘수탉들의 싸움’은 영국의 극작가 마이크 바틀렛의 작품으로 2009년 ‘Cock’이라는 제목으로 영국 로얄 코트 씨어터에서 초연 무대를 올렸다. 당시 ‘정체성’이라는 광활하고 모호한 주제를 솜씨 좋게 한 개인의 이슈로 녹여내며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수탉들의 싸움’의 한국 초연은 2014년. 당시 박은석 김준원 손지윤 선종남이 무대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3년 만에 돌아온 ‘수탉들의 싸움’에는 존 역 이태구, M 역 이명행, W 역 손지윤, F 역 선종남이 무대에 올랐다. 초연에 이어 재연의 연출을 맡은 손정안은 초연 때와는 다른 차원의 부담감을 드러내며 “말이 발생 시키는 원초적인 에너지와 생명력을 무대를 통해 행동의 기호, 인물의 움직임을 더욱 구체화하여 인물의 상태나 심리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무대에 서는 캐릭터 가운데 유일하게 이름을 부여 받은 존(John)이 주인공이다. 존은 7년간 연인 관계를 이어온 M과의 이별을 고한다. 분명 사랑하기는 하지만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M의 태도에 끝이 보였기 때문이다. 존은 우연히 W와 만나게 되고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으며 공감대를 형성, 육체적 관계를 갖게 된다. W과의 환상적인 하룻밤을 보냈지만 존은 여전히 M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M을 찾아가 W와 사랑에 빠졌음을 고백한다.
존과 M, W는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M의 아버지 F까지 이에 합세한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존의 ‘정체성’을 선택시키기 위해서다. M은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다”라며 존에게 선택을 종용한다. W 또한 “아직 선택한 것이 아니었느냐”면서 빠른 선택을 하도록 밀어붙인다. 사실상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F도 나서서 “너는 우리 아들(M)을 사랑했지 않느냐”면서 존의 선택을 기다린다.
M과 W 입장에서는 ‘쟤야, 나야? 결정해’로 정리될 수 있는 문제지만, 존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존에게는 그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결정이 된다. 그는 “오늘 밤이 내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 W에게 가면 아이도 낳고 정상적인 가정을 가질 수 있어. M에게 가면 평생 옳은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 할꺼야”라며 “우리 삶 전체가 오늘 밤 결정되는 것”이라 말한다.
싸움판을 연상시키는 텅 빈 원형 무대 위의 존을 보고 있노 라면 ‘그래 빨리 좀 선택해’라는 생각을 무심코 하게 된다. M을 사랑하지만, W와의 성관계가 좋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면서 왜 누군지 선택을 못 하는지 답답하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 생각하면 여자냐 남자냐 선택하는 성(性)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아니다. 주변에서 존에게 요구하는 결국 누군가 만들어 놓은 카테고리 중 하나를 골라 그곳에 속하라는 압박인 것이다. 그 잣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은 이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M과 W가 불꽃 튀는 말싸움을 하는 동안 존은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멍하니 두 사람을 보고 있다. 존의 행동에 ‘니 일인데 방관만 할 것이냐고’ 따지자 그는 “정말 모르겠다. 두 사람이 같이 있으니까 나는 그 중간에 끼어서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M과 함께 있을 때의 존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연하의 남자친구다. 그러나 W와 있을 때는 20대 후반이라는 존의 나이에 맞게 어른스럽다. 존은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자신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집에서 막내인데 회사에서는 부장인 경우가 있다. 집에서는 사랑둥이여도 회사에서는 카리스마 있고 책임감 있는 모습이 보여질 것이다. 당연히 그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으로 생각한다면 존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모습에 공감이 된다.
존은 대학생 때 커밍아웃한 뒤의 이야기를 전한다. 용기를 내서 남자를 좋아한다는 커밍아웃을 했더니 주변 사람들은 그를 자랑스럽게 떠받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면서 옷도 다르게 입고, 걸음걸이도 달라졌다. 그렇게 그림의 일부가 된 존은 ‘저게 진짜 존의 모습이다. 억압 당하던 것들이 풀어졌다’는 사람들이 멋대로 내린 판단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자 존은 더 노력해야만 했다. 침대 위의 파트너만이 아니라 다른 것까지 바꿔야 하는 상황에 존은 힘겨워 했다.
존은 무대 위에서 내려가지 않는다. 그를 향해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M, W, F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끝까지 자기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내가 무엇인지’ 보다 ‘누구인가’가 중요했던 존의 모습은 기준과 결정에 선택을 강요받으며 힘겨운 싸움을 이어간다. 그러나 링 위에서의 싸움은 승패가 무의미하다. 존의 선택이 무엇이든 그가 존이라는 인간임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소품 없는 무대를 채우는 것은 온전히 배우들의 몫이었다. 직설적인 대사가 난무하는 무대에서 배우들은 현실적인 감정 표현으로 극을 쫀쫀하게 만들었다. 약 2시간가량의 러닝타임을 대사로만 이어가다 보니 관객이 지루해질 위험도 있었지만, 대사 속에 녹아있는 웃음 유발 포인트가 극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수탉들의 싸움_COCK'의 인물 중 누구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돌려 말하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고구마를 먹은 느낌을 선사하는 연극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그 답답함의 이유는 공감과 이해에 있다. 해소는 관객의 몫이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
(사진=노네임씨어터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