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본능적인 배우다. 대사 하나에서도 묻어나는 짙은 감정은 공연장 공기를 압도한다. 스스로 겸손하여 조심스럽게 사람을 대하지만, 온몸에서 내뿜는 자신감과 당당한 에너지는 무대 위 그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폭발적인 가창력, 과감한 연기력, 그리고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 실력까지 심쿵 유발 포인트를 모두 갖춘 그는 11년 차 뮤지컬 배우 김경수다.

최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는 뮤지컬 배우 김경수와 헤럴드POP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2007년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로 무대에 첫발을 디딘 후 쉴 틈 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는 김경수. 그는 현재 뮤지컬 ‘스모크’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세상을 떠나려는 ‘초(超)’ 역을 맡았다.

2016년 트라이아웃 공연을 선보인 후 본 공연으로 돌아온 뮤지컬 ‘스모크’(연출 추정화)는 천재 시인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 제15호]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작품이다. 트라이아웃 공연에서 ‘난해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스모크’는 대사와 가사를 간결하게 만들고 압축하여 드라마의 밀도를 높이며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려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순수하고 바다를 꿈을 꾸는 ‘해(海)’, 모든 걸 포기하고 세상을 떠나려는 ‘초(超)’, 그들에게 납치된 여인 ‘홍(紅)’ 세 사람이 아무도 찾지 않는 폐업한 한 카페에 머무르며 일어나는 이야기로, 시대를 앞서가는 이상의 천재성, 식민지 조국에서 살아야만 했던 예술가의 불안, 고독, 절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날고 싶었던 열망과 희망까지. 세상과 발이 맞지 않았던 절름발이 이상의 삶과 예술, 고뇌를 세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지난 3월 23일 뮤지컬 ‘스모크’가 공연되고 있는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는 프레스콜이 열렸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김경수는 “이번 공연 연습에 많이 참여를 못 했다. 김재범, 박은석 배우에게 도움을 많이 받아 무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대 위 김경수의 '초'에서는 빈틈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발언의 이유가 궁금해 첫 질문으로 던지자 김경수는 "공격 대상이 되었던 것이냐"며 웃어 보였다.

“말 그대로 연습을 잘 못 했다. 예상했던 연습 기간도 아니었다. 그 당시 뮤지컬 ‘광염소나타’(2017)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한창 ‘스모크’ 출연 배우들이 열을 올리며 작품 수정에 참여하는 시기에 나는 거의 참여를 못 했다.”

김경수는 작년 ‘스모크’ 트라이아웃 공연에 ‘초’로 참여했다. 호불호가 많이 갈렸던 공연이지만, 그는 그때 트라이아웃 공연이 이상 같아서 개인적으로 좋았다고 털어놨다.

“이번 공연을 위해 (김)재범 형과 (박)은석이가 스토리 라인을 주로 만들었다. 같은 '초' 배역인 두 사람이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나는 본 공연에 대해 더욱 할 말이 없다. 그들이 구축한 라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트라이아웃 공연을 했기 때문에 본 공연과 부딪히는 부분도 있었다. 트라이아웃이 정말 난해했었기 때문에 관객들, 특히 뮤지컬을 많이 접하지 못했던 분들은 ‘무슨 내용이야’ 하면서 괴로워하셨다. 시인 이상을 이해하고 보신 분들마저도 ‘꼭 이렇게 어렵게 풀어야 했느냐’는 의견이었다. 연출가와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관객 의견을 수용했고, 변화가 생겼다. 나는 개인적으로 트라이아웃을 좋아했는데, 난해한 말로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 것을 이상의 심정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대사 중에도 ‘우리는 20세기에 나서 21세기를 살려 하는데, 이 사람들은 19세기에 나서 18세기를 살려고 한다’는 말이 있는데, 오히려 거꾸로 가려고 한다는 말에 굉장히 이입됐었던 공연이다.”

트라이아웃 때는 자아로 존재했던 ‘초’지만, 본 공연에서는 ‘해’가 바라보는 ‘초’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극 자체의 시점이 달라지면서 방향성도 달라졌고, 분량도 줄어들었다. 이에 대한 김경수의 생각은 어떨까.

“분량이 줄어든 것은 스토리상 합당하다. 정서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다 보니 땀도 나고 힘든 부분은 있지만, 오히려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고 많은 생각을 하지 않게 되어 좋다. 트라이아웃 때는 ‘초-해-홍’이 ‘자아’로 같은 존재였다. 이번 작품에서는 ‘초’와 ‘해’는 같은 존재고, ‘홍’은 인생과 삶을 내포하면서 조금 더 디테일하게 나뉘었다. 트라이아웃이 몽글몽글했다면, 지금은 더 선명해졌다. 자아로서 존재했을 때는 ‘홍’과의 관계가 있어서 ‘해’와 ‘홍’에 대한 감정을 생각해야 했다. 그때는 ‘초’가 자신의 의지로 극을 이끌어가는 능동적인 면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해’가 바라보는 ‘초’의 이야기에 가깝다.”

이상의 시를 기반으로 만든 작품인 ‘스모크’는 많이 친절해졌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세 주인공인 ‘초-해-홍’의 관계가 변하면서 ‘초’ 존재의 표현도 달라졌다. 김경수가 생각하는 ‘초’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초’가 ‘해’에게 ‘빨리 쟤(홍) 기억해. 보면 뭐 기억나는 거 없어?’라고 부추기면서 밝혀버리면 된다. 그런데 굳이 둘만의 시간을 준다는 것이 ‘초’가 게임을 한다고 생각했다. ‘초’가 ‘해’에 대한 원망이 큰 만큼 복수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고통을 느낀 만큼 너도 고통을 느꼈으면 좋겠다 혹은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뒤로 빠진다. ‘해’와 ‘홍’에게 시간을 주고 무슨 대화를 하는지 지켜본다. 두 사람을 데리고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초’가 미쳐있다는 걸 보여준다. ‘해’가 ‘초’의 목숨줄을 쥐고 있으니까 벼랑 끝에 몰린 사람처럼 구는 것이다. 나는 뉘앙스와 느낌으로 ‘초’를 많이 접하고 있다. 그래서 강하고 자극적으로 표현될 때도 있고, 그걸 숨겨보고 싶기도 하다. 초반과 현재 공연은 또 다를 수 있다. 어떤 계획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죽고 싶다’ 하면서 벼랑 끝에 몰린 채로 미쳐서 죽음의 게임을 한다고 생각을 하니, 소리를 질렀던 대사도 어떨 때는 담담하게 할 때도 있고, 눈만으로 연기하는 경우도 있다.”

‘초’를 선(善)과 악(惡)으로 가른다면 악에 가깝다고 말하는 김경수. 그는 “누군가를 압박하고 괴롭히는 ‘초’의 성향을 내가 만든 것 같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김경수는 그런 성장 과정이 캐릭터 성격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엄하셨다. 뜻을 거스를 수 없었고, 말대꾸도 못 했다. 그런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을 몰라서 스스로 가두고 눌러가며 많이 참고 살았던 것 같다. 기억 속에 저장된 그 감정들을 공연에서 푸는 것 같기도 하다. 참았던 감정을 퍼붓고 나면 나도 내가 궁금하다. 감정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절제가 안 될 때도 있다. 특히 한 포인트에서 터지는데 ‘때가 됐다’는 생각과 함께 폭발한다.”

(인터뷰②로 이어짐)

(사진 제공=더플케이필름앤씨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