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배우가 무대 위에서 걸어간다면, 그것에도 동기가 필요하다.” 김수용의 연기는 탄탄하고 흔들림이 없다. 하지만 그 연기력은 시간이 흘러 쌓인 연륜이나 경험에서 나오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그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제안하며, 부딪힌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당연한 듯 해낸다. 믿고 보는 배우를 넘어, 오래도록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배우다.
최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는 뮤지컬 배우 김수용과 헤럴드POP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김수용은 지난 4월 25일부터 대학로 JTN아트홀 1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광염소나타’에 K 역으로 출연 중이다.
‘광염소나타’는 김동인의 동명 소설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살인을 하면 할수록 놀라운 악상이 떠오르는 비운의 천재 작곡가 J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수용이 맡은 K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J를 파멸로 이끄는 클래식계 저명한 교수다. 무대 위 그는 세련된 슈트로 날렵한 외모를 한층 부각시키며 냉철한 K로 분해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트라이아웃을 거쳐 초연으로 돌아온 ‘광염소나타’에서 K의 역할은 조금 더 넓어져 있었다. J와 S에 중심이 맞춰졌던 이야기가 K에게도 확대되면서 개연성이 탄탄해졌다. 스토리가 확장되고 디테일이 추가된 것의 중심에는 김수용이 있었다.
“2개월간 K를 맡으면서 재미있었다. 사실 나에게는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일인데, ‘광염소나타’가 더 즐거웠던 이유는 K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K는 자칫하면 단편적으로 보이는 인물이다. S와 J를 닦달하고, 나쁘게만 보이면 된다. 하지만 나는 입체적인 연기를 좋아하고, 인물이나 상황이 평면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지켜만 보는 성격은 아니다. 캐릭터에 많은 이야기를 심어내는 작업을 좋아한다. 어렵지만, 재미있다. K는 그 작업이 필요했던 캐릭터라 더 흥미로웠다. 내가 생각하는 K의 커다란 역할은 S와 J의 스토리를 조금 더 당위성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 마디로 MSG 양념 같은 존재다. 두 사람이 더 불쌍하고 처량해 보이도록,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 K지만 그냥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납득할 수 있도록 구축해가는 작업이 재미있었다.”
K를 연기하면서 ‘이유를 만드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말한 그는 K가 그렇게 살아가고, 행동하는 바탕을 찾아서 스스로 먼저 이해하려 노력했다. 김수용은 “배우가 먼저 납득을 하지 못하면 관객도 이해시킬 수 없다. 이유가 없다면 단지 흉내에 불과하다”고 연기 소신을 밝혔다. 꼼꼼하게 캐릭터를 분석해 연기를 펼치던 그에게 지금까지 맡았던 인물 중 이해가 안 됐던 캐릭터가 있었느냐고 묻자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모든 작품이 다 그랬다. 어쩔 수 없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니까. 김수용이라는 사람은 많은 인물을 연기했지만, 역시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성향이 다르다. 같은 결과를 도출하더라도 방식이 다를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게 이해 안 될 수 밖에 없다.”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그때부터 고민을 시작한다고 말한 김수용은 ‘얘가 왜 이랬을까’ ‘이런 행동의 이유는 무엇인가’ 등 인물의 말은 물론이고 행동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파악하며 분석한다. 대체로 창작 작품을 할 때 연구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그는 그래서 배우의 연기가 더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창작 작품은 모두가 맨땅의 헤딩이다. 정답이 없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분명히 오류가 발생한다. 연출자, 작가, 작곡가, 배우도 사람이기 때문에 놓치고 가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만약 대본이 A-B-C-D로 흘러가야 하는데, A-B-E-D-X로 나온 상태라고 하자. 공연 날짜가 있으니 더 이상 수정할 수는 없다. 그러면 보여지는 배우의 입장에서 어떻게든 정당성을 만들어야 한다. 억울할 수 있지만, 말이 안 되는 얘기도 말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배우가 개입할 수 있는 틈이 있었기에 창작 작품인 ‘광염소나타’가 재미있었다는 김수용은 이 작품을 불친절하다고 표현했다. 그 이유는 관객의 상상력을 개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광염소나타’의 인과관계를 놓고 보면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딱히 없었다고 전하자) 이해를 했다면 그것은 관객이 자신의 성향에 맞게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웰메이드 플레이는 완벽하게 보이는 작품이다. 관객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것은 좋지만, 생각하는 대로 작품의 해석이 너무 달라지면 안 된다. 창작자가 생각한 방향성이 있는데, 전혀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지 않겠나. 건축에서도 기본적인 토대와 기둥이 완벽하게 잡혀있어야 여러 가지 기술을 쓸 수 있는 것처럼, 기본 틀을 탄탄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냉정한 시각으로 판단을 내렸지만 김수용은 역시 ‘광염소나타’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처음 합류했을 때, 트라이아웃에서 놓친 부분이 많았다는 아쉬움을 접한 그는 초연에서 토대를 잘 닦아두기 위해 살을 많이 붙였다.
“트라이아웃 대본을 읽은 뒤 내 첫 마디는 ‘J가 왜 K에게 가느냐’는 것이었다. 왜 하필 K인지 이유가 없었다. 이 질문을 던지니 ‘K가 촉망받는 교수라서 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이건 그냥 2명의 천재와 1명의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때 내가 던진 해석은 'J가 S에게 홀릭 되어 있으니, J는 S의 발걸음을 따라가고 싶었을 것이다. K가 S-J와 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두 사람과 한 번 이상의 협업을 진행했을 것이다. 그러니 J도 S를 완벽히 뛰어넘고 싶어서 K를 선택하지 않았을까'다. 그것이 표현되려면 S와 K의 전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 대본엔 없었다. 바뀐 대본에 추가된 것이 ‘그건 너와 정당한 거래였어. 옛날에 우리..(중략). 너 악보도 못봤잖아’ 이것이다.”
이 외에도 김수용이 덧붙인 것들은 많다. 리딩 공연 때부터 지켜오던 ‘K의 팔이 묶여있는 설정’이나 ‘K가 J에게 얘기하면서 걸어가는 동선’, 또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K의 첫 넘버의 스타일도 변경했다. 많은 부분에 의문을 표하고 의견을 제시해 작품의 개연성을 높인 김수용이 대단한 것은 그 의견을 수용하게 만든 높은 설득력이다. 리딩 공연과 트라이아웃을 거쳐 초연에 안착한 작품이 한 사람의 말로 쉽게 변할 리 없다. 함께 하는 배우와 제작진이 그의 의견을 수용한 것은 합당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말 대잔치를 많이 하긴 하지만, 무조건 아니라고 하는 게 아니다. 만들어져 있는 걸 해보고 OK 사인을 받으면 그다음에 말한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게 있는데 하기도 전부터 이거 아냐 저거 아냐 말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겠나. 일단 연기와 노래를 해보고, 그들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더 좋은 제안을 하는 거다. (의견 제시가 많은 편인지 물으니) 거의 모든 작품에서 많이 물어보는 것 같다. 정말 모르겠거나, 교체가 필요할 때 말을 한다. 그 전에는 혼자 해결해보려고 노력한다.”
(인터뷰②로 이어짐)
(사진=서보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