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인터뷰①에 이어)
최근 김수용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캐릭터를 많이 맡았다. 그래서인지 인터뷰를 하며 본 김수용의 진짜 모습은 반전 매력으로 다가왔다. 35년째 배우의 길을 걸어온 베테랑이지만 솔직하고 꾸밈없이 자신을 표현하는 그는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선하고 맑은 힘이 있다.
그런 김수용이지만 ‘광염소나타’에서 맡은 K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고 탐욕스럽다. 본인과 다른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데 힘든 부분은 없었는지 묻자 한숨을 푹 쉬며 고충을 토로했다.
“K는 정말 나와 성격이 다르다. 극 중에서 계속 버럭버럭 소리치고, 죽으라고 말한다. 사람이 살면서 화를 내는 경우는 있지만, 이렇게 소리치고 집어던지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너무 힘들었다. K를 이해하려고 노력 많이 했다. '이래서 화가 났겠지', '이 감정과 정서를 줘야 J가 이렇게 행동할 수 있겠지'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시도해봤다.”
서로 달랐기 때문에 이해하려 노력했고, 다가가려 애썼다. 그 결과 무대 위 K의 옷을 입은 김수용은 완벽했다.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오는 자격지심부터 J를 대하는 냉철하고 잔인한 모습까지. K는 말 한마디에도 차가움이 뚝뚝 묻어나는 악역이지만 무대를 장악하는 힘을 지녔다. 김수용에게 K의 매력을 묻자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더니 다다다 한 번에 대답을 쏟아냈다.
“이런 얘기를 내 입으로 말하기 너무 창피한데(흐읍), 섹시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악(惡)하고 나쁜 인물인데, 내 연기를 통해 K가 그렇게 된 것이 이해되고, 차갑고 나쁜 것에서 비롯된 섹시함이 있다고 하더라. 팬분들이 좋게 봐주시는 거다. 그런데 나는 정말 모르겠다, 진짜다. 평소 나에게 섹시함이라고는 미토콘드리아 만큼도 없다. 특히 내가 연습실에 가면 동료들이 ‘여기 상주하는 거주민이냐'고 놀린다. 연습실에 갈 때는 수염도 안 깎고 머리도 엉망인 채로 편안하게 가니까(웃음). 내가 생각하는 K의 매력은 악인인데 연민이 가는 악(惡)이라는 점이고, 키워드는 열등의식을 꼽겠다.”
'섹시함'이라는 단어에 쑥스러움을 드러내며 엄청난 스피드로 K의 매력을 설명한 김수용 덕분에 한바탕 큰 웃음이 지나갔다. 그렇다면 K의 시각에서 보는 S와 J의 모습은 어떨까.
“K의 입장에서 두 사람은 부러운 인간이다. K는 S와 J의 천재성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지만, 그만큼의 음악적 능력은 없다. 그들이 재목이라는 것을 아니까 부러움과 경탄의 대상이 되는 거고, 더 집요하게 압박하고 고난을 주는 것이다.”
김수용은 앞서 창작 작품을 만드는 어려움에 대해 언급하며 '광염소나타'의 연습실의 분위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이번 초연에는 J 역 박한근·문태유, S 역 김지철·유승현이 함께했다. 2개월간 그들과 함께 연기한 느낌이 어떤지 궁금했다.
“이 아이들이 연기 욕심이 많다. 소극장, 특히 배우가 적은 작품일수록 배우에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넓다. 스토리의 큰 흐름만 망가뜨리지 않고, 상대 배우에게 폐만 끼치지 않는다면 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러니 이것들(?)이 매번 다르게 연기를 한다. 특히 나는 (김)지철이한테 공격을 많이 받았다. S가 칼로 K의 손목에 묶인 줄을 끊는 장면이 있다. 내가 손목을 잡고 ‘아 아파’하면서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지철이가 ‘빨리 나가~(성대모사)’라고 하는 거다. 깜짝 놀란 와중에 정말 웃겨서 목까지 웃음이 올라왔는데 꾹 참고 나갔다. 이날 나갈 때 로봇처럼 나갔을 거다. 또 한 번은 지철이가 칼을 들고나와서 나를 위협하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겁먹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지철이가 나를 도와준다고 '왜? 무서워요~?(성대모사)'라는 애드리브를 쳤는데 너무 웃긴 거다. 그런데 웃을 수 없는 상황이라 힘들었다. 지철이 특유의 말투가 있어서 무대 아래에서 보던 사람들도 빵 터졌다고 하더라." 김지철뿐만 아니라 박한근·문태유 또한 감정과 상황에 따라 다른 연기를 펼친다. 김수용은 이를 서로 연기를 주고받으면서 맞춰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 가운데 김수용과 K 역 더블 캐스팅인 이선근은 좀처럼 무대 위에서 만날 일이 없다. 혹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선근을 ‘프리티 선근’이라 칭하며 ‘광염’ 팀의 개그를 담당하고 있는 포지션이라고 말했다.
“안 믿으시겠지만 선근이 별명이 ‘프리티 선근’이다. 굉장히 재미있다. 개그맨이나 정상윤처럼 내추럴 본 개그맨은 아닌데, 착하고 순수함에서 나오는 개그 감이 있다. 자기 생각과 진지함에 입각해서 말을 하는 건데,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묻어나온다. 요즘에는 무대 위에서 K를 하면서도 그 귀여움을 뿜뿜하고 있는 것 같다. 관객의 마음을 얼마나 훔쳐가려고 하는 것인지(웃음). 나중에 선근이 회차를 한 번 보러 가고 싶다.”
매번 애드리브가 발생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노련한 배우들이 함께 합을 맞추니 피치 못하게 웃음이 터지는 사고도 있을 법했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실수했던 적은 없었느냐고 물으니 김수용은 "있다"고 답했다. 그의 에피소드를 들어보니 극에 크게 지장을 줄 정도의 실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김수용은 이를 간단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 이유 또한 분명했다.
"며칠 전, S랑 싸우다가 '그렇겠지, 악보도 혼자 못 읽던 니가 썼던 모든 곡들이 사실..(생략)'이라는 대사에서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됐다. '곡들이'라고 해야 하는데 '곡들은'이라고 말한 거다. 사실 그렇게 해도 상관없는 부분이었는데, 아차 싶어서 두 번 반복했다. 또 언젠가는 J에게 말하면서 흥분하는 장면에서 너무 감정이 격양돼서 '니, 어, 니, 어!, 니…가 그그, 그 내가 어, 니 비밀을, 그 세상에 알리면!! 이 소나타가 영원할 것 같아!?'라고 말했더니 웃음이 터졌다. (큰 사고는 아니라고 하니) 무대 위에 둘밖에 없고, 관객이 감정에 빠져서 극을 보던 와중에 흐름이 툭 깨지면서 ‘저 사람 왜 저래?’ 이렇게 생각하면 몰입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은근히 큰 사고다.“
'광염소나타'의 매력 중 하나는 배우들이 직접 치는 피아노 연주다. 개막 전부터 S와 J 역 배우들의 연습 모습이 공개되기도 하며 큰 관심을 끌었는데, K의 피아노 연주는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김수용에게 피아노 실력을 물었더니,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놨다.
"K도 피아노를 친다. 그런데 코드 2개만 잡고 치는 간단한 연주다. '광염소나타' 제안을 주시면서 맨 처음에는 K를 제시하셨다. 그러면서도 J, S, K 모두 잘 어울린다면서 뭘 해도 좋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피아노를 많이 쳐야 하나요?' 물었다. S는 모든 곡 반주, J는 엔딩 때 광염소나타를 쳐야한다고 해서, K로 마음을 굳혔다(웃음). 대표님은 나를 K로 염두에 두셨던 걸로 알고 있다. K는 J와 S의 스토리를 사방에서 다 받쳐줘야 하는데, 내가 선배이기도 하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감사한 말씀도 주셨다. 사실, 리딩 때부터 함께 하자고 제안이 왔던 작품이다. 그때는 J 역으로 제안을 들어왔는데, 뮤지컬 '인터뷰' 초연을 보시고 연락을 주셨다고 하더라. 어떤 역할이든 잊지 않고 불러주셨다는 게 정말 감사했다."
'광염소나타'는 트라이아웃부터 큰 사랑을 받으며 초연 무대까지 안착했다. 김수용은 초연 무대에서 더욱 입지를 잘 다져서 계속해서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르길 바라고 있다.
"방탄소년단 노래처럼 트라이아웃 때 '피 땀 눈물~'을 흘려 만든 작품으로 알고 있다. 배우뿐만 아니라 연출, 스태프까지 누구 하나 고생을 안 한 사람이 없다. 그때 고생해서 초연까지 온 만큼, 더 잘 다져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지금 멤버들에게 다 있었던 것 같다. 바람이 있다면 초연 끝나고 다음에는 완전체 공연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올라오면 좋겠다."
(인터뷰③으로 이어짐)
(사진=서보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