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인터뷰③에 이어)

김수용의 열정은 굳이 뜨겁게 열변을 토하지 않아도 전달됐다. 무대를 대하는 감정, 작품 속 캐릭터에 닿기까지 기울이는 노력, 그리고 공연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 듯 펼쳐놓는 그의 생각 속에는 이 모든 것이 녹아있었다.

김수용은 뮤지컬 데뷔작 '풋루스'(2002)를 준비할 당시 15일 만에 노래-댄스-대사를 모두 완벽히 외워냈다.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첫 데뷔작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뮤지컬 출연이 결정된 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울었다(웃음). 뮤지컬을 하게 됐다는 그 자체가 신기하고 좋았고, 하고 싶었던 것을 하게 됐다는 기쁨이 넘쳤다. 그때는 신인이다 보니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관철할 수 없던 입장이어서 연습하고 외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우선 연습을 안 하면 공연을 못 올리니까. 해야 하는 거라 이 악물고 했다. (지금도 대사를 빨리 외우는지 묻자) 알면 알수록 어렵다고 하잖나. 그때도 연기에 대한 집요한 성격은 있었을 테지만, 시간이 지나고 선배가 되어가면서, 거창하게 말하자면 연륜이 쌓여가면서 내가 여기서 해야 하는 몫이 무언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작품에 참여해서 이런 캐릭터를 어떻게 써야 하고, 보여줘야 하고, 도움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을 하다 보니 덮어놓고 외우는 시간뿐만 아니라 정리하는 시간까지 필요하게 됐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더뎌졌다. 딱히 기간이 정해져 있다기보다 공연 전에 다 외우게 되기는 한다. 그래놓고 연습 때 더블-트리플 캐스팅 배우들은 대본 놓고 자유롭게 연습하는 걸 보면서 혼자 '아 어떡하지'하며 애달파한다." 15년 전 무대에 첫발을 들여놓은 뒤, 김수용은 한눈팔지 않고 무대에 집중해왔다. 그를 끌어당기는 무대의 특별한 매력은 무엇일까.

"무대의 큰 장점은 항상 라이브로 진행되는 느낌이 정말 좋다는 거다. 배우들끼리 매일 다른 호흡으로 맞추는 것도 재미있다. 물론 내 기분에 따라 바꾼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지만, 내 기분과 상대방의 호흡에 따라 같은 이야기와 노래로 공연을 펼치는데 색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배우뿐만 아니라 관객도 함께 느껴서 하나로 뭉쳐질 수 있는 응집의 에너지가 정말 짜릿하다. 반대로 관객과 응집이 안 될 때도 있다. 열심히 공연하고 있는데, 관객이 이해를 못 했을 때는 기운이 확 온다. 그러면 내 마음속에서 '어떻게 된 일이지!? 큰일 났다. 비상이다. 뭐라도 해봐 김수용!' 이렇게 불이 난다. 무엇을 해도 관객을 끌어당기지 못하면 끝날 때 '오늘 나는 망했다. 나는 쓰레기였어' 이렇게 되는 거다(웃음). 특히 비가 많이 와서 눅눅할 때 관객 집중력이 떨어진다. 앉아만 있어도 짜증 막 올라오는 불쾌지수 높은 날 있잖나. 그래도 공연을 보러 왔는데 에어컨을 틀어도 습기만 제거해주면 좋을 텐데 추워 죽겠을 때, 그런 날이 위험하다. 배우들도 관객 반응에 영향을 받으면 안 되는데 덩달아 휩쓸려서 고군분투를 하게 될 때도 있다. 문제는 그게 틀린 방향으로 갈 때가 많다는 거다. 과하게 애써서 오버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면서 무대와 객석의 간격은 넓어지고 그사이에 불신의 벽이 딱 세워지는 거다."

김수용은 어릴 적 드라마 '세자매', '간난이' 등에 출연하며 매체를 통해 얼굴을 알렸다. 20대를 넘어서면서 공연 무대에 꾸준하게 서고 있지만, 어떤 채널을 통해서든 연기를 할 수 있다면 그곳이 그의 무대다.

"'풋루스'를 기점으로 계속해서 뮤지컬과 무대에만 서 왔다. 정말 감사하게 별 탈 없이 무대에 서고 있으니,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무대에 인생을 건 예술인이 되어간다'는 시각도 생긴 것 같다. 더군다나 내가 다작을 하니까 '쟤는 무대만 한다더라'는 말도 돈다고 들었다. 나는 정말 연기를 하는 게 좋다. 아역 출신에게는 위기가 온다. 넘어야 하는 이미지도 있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애기였던 아이들이 크면 징그러워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유승호 같은 케이스는 다른 경우다(웃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까 25살쯤에 연기를 그만두려고 했다. 그때 운 좋게 뮤지컬 기회가 주어졌고, 보신 분들이 좋아해 주셨고, 회사에서 불러주셨다. 시키면 다 한다는 신조로 열심히 하다 보니 뮤지컬도 벌써 16년 차가 됐다. 나는 매체를 포기하거나 안 한다고 말 한 적이 없다. 그저 열심히 공연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 이야기가 좋은 방향으로 포장되니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다. 내 행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분명 김수용이라는 사람을 유추할 수 있는 말이 필요한데, 어쨌든 '무대에 열정을 쏟고 있다'라고 생각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인생의 반 이상을 연기자로서 지내온 김수용은 공연 연출, 음악, 평론 등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앞서 다른 인터뷰에서 의지를 드러냈기에 시도해본 장르가 있었는지 묻자 "지금은 시간이 없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기자로서 특히 관심이 갔던 평론에 관해 물었다. 그의 방향성을 듣자마자 당장에라도 김수용의 평론 코너를 만들어 그의 글을 보고 싶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평론은, 칭찬도 욕도 아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형식의 글이다. 공연의 평론 기사를 많이 접하지는 못해서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사마다 홍보, 비판, 배우 부각 등 작성되는 목적이 있지 않은가. 내가 생각하는 평론은 잘하는 배우와 연출이 있는 가운데, 이런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수용이라는 배우가 있다. 노래도 연기도 잘한다고 치자. 공연을 잘 보긴 했는데, 악(惡)한 연기를 할 때 이런 부분이 부족해. 관객들은 이해하고 봤다고 해도,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한 것 같아. 이런 부분을 더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같은 내용이다. 더불어 무대 장치의 위치 등의 방법론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연기나 무대 쓰는 방식에도 트렌드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 왜 다리를 이렇게 배치했을까.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이 무대 장치의 쓰임새와 이로 인해 배우는 어떻게 움직였고, 남은 공간은 어떻게 쓸 것인가 같은 분석 글도 쓰고 싶다. 물론, 내가 배우를 하면서 이런 글을 쓰면 중립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은퇴한 뒤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최근 공연계에는 몇 가지 사고가 있었다. 그 가운데 관객이 공연장에 착석까지 했는데 시스템 문제를 이유로 공연이 시작되지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임금 미지급 사태'로 번져갔고, 몇 번의 공연 취소와 함께 화제가 됐다. 현재는 다행히 공연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연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반복되는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우선 정말 미치겠다. '햄릿'은 너무 사랑하는 작품이라 죽기 전에 한 번은 더하고 싶었다. 없어지게 생겨서 굉장히 안타까웠다. 공연계에 미지급 사태가 만연하지만, 그 안에 차이도 있는 것 같다. 잘못 전달되면 '배우가 왜 제작사 변론을 하지?' 생각될 수도 있어서 굉장히 조심스러운 입장인데, 극을 만드는 곳에도 사정이 있다. 회사에 미지급 사태가 굉장히 오래 반복되어 있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건강하지 않을 때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행위다. 배우나 스태프에게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는데, 프로젝트를 접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던 '권투하는 작품'은 대응 방법이 잘못됐었기 때문에 더욱 직무유기가 아닌가 생각됐다. 분명 제작사들도 슬럼프가 올 수 있다. '역병' 돌던 그 작품도 문제가 발생했었는데, 대표님이 접근 방법을 달리했다. 직접 일을 처리했고, 도태될 뻔한 상황에서도 나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스태프도 믿고 간 부분이 있다. 돈은 현실적인 부분이 걸려있는 문제라, 지금 당장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고 해도 앞으로 순탄하게 흘러가리라는 법은 없다. 전사-현재 상황-대응책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가 뮤지컬을 10년 이상 하면서 레퍼토리처럼 반복됐다. 탁상공론을 펼친다고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같이 고민은 할 수 있지만 확실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어 안타깝다."

배우가 된 지 35년, 뮤지컬 배우로서 16년 차. 김수용에게 무대란 '보은 해야 할 대상'이다. 연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준 장소, 그에게 무대는 고마운 곳이다. "무대는, 그리고 연기는 내 삶이고 인생이다. 연기 빼고 뭘 제대로 한 게 없는 것 같다. 열심히 공연할 것이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동안 완벽하지 못한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을 수도 없고,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신랄한 비판을 받는 공간이 되기도 하겠지만, 시간과 돈 등 여러 가지를 투자해서 와주는 관객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연기하겠다. 나를 믿고 선택해준 제작자, 연출, 스태프에게도 마땅히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서보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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