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정 기자] 자극적인 소재를 직접 마주하는 것은 불편하다. 무대라는 공간과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것을 감안해도 옳지 못한 것은 포장될 수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은 트라이아웃부터 돌아올 때마다 뜨겁다. 하지만 균열이 있는 것에도 마무리는 존재한다. 이 어두운 작품을 밝게 빛낸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지난 6월 1일 대학로 TOM(티오엠) 1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인터뷰'가 오는 8월 20일 마지막 공연을 펼친다. 뮤지컬 '인터뷰'는 지난해 5월, 프로듀서 김수로가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첫 무대를 펼쳤다. 입소문만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이 작품은 국내 초연 이후, 교토, 도쿄, 뉴욕 등 3개 도시 진출에 성공한 이 작품은 한국어로 쓴 뮤지컬이 영어로 번안돼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영예를 안으며 창작 뮤지컬의 세계화를 이뤄냈다.

뮤지컬 ‘인터뷰’는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한 소년이 10년 후 죄책감으로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2001년 런던에 위치한 유진 킴의 사무실에 작가 지망생 싱클레어 고든이 찾아온다. 추리소설 '인형의 죽음'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유진 킴은 자신의 보조 작가가 되려는 싱클레어를 맞이해 인터뷰를 시작한다. 유진 킴은 전날 밤 자살을 기도한 연쇄살인범이 작성한 유서를 내밀며 싱클레어에게 글을 써보라고 지시한다. 싱클레어는 내면 속에 감춰뒀던 이야기를 쏟아내다가 본심을 드러내며 유진 킴에게 소설 '인형의 죽음'의 실제 모델이 조안 시니어가 아니냐고 추궁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한 심리 싸움이 부각된다. 파편처럼 조각난 기억들을 퍼즐처럼 맞춰가다 보면 수면 아래 잠겨있던 잔인한 진실이 드러난다. 이 모든 상황을 유도한 유진 킴의 마지막 발언으로 관객은 이야기의 전말을 알게 된다.

뮤지컬 '인터뷰'는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 가해자 미화 논란으로 왈가왈부가 있었던 작품이다. '누가' 죽였는가보다 '왜' 죽였는가에 초점을 맞췄다고 해도 살인의 이유에는 정당성이 부여될 수 없다. 그러나 세 번째 무대로 돌아오며 작품의 끝맺음에 변화가 생겼다. 아동 폭력이 낳는 비극과 사건을 바라보는 피해자의 시각이 전보다 강조됐는데, 이에 대해 추정화 연출은 "박건형의 강력한 건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프레스콜에서 이유를 밝힌 바 있다. 바뀐 결말이 누구도 상처 주지 않는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유진 킴에게 사회적 신분이 아닌 다른 정체성을 부여함으로써 그의 마지막 독백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극 자체는 지루할 틈 없이 쫀쫀하게 전개된다. 진실을 찾기 위해 파헤쳐지는 싱클레어 고든의 비밀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DID)을 앓고 있다는 것. 작품의 핵심이자 범인을 앞에 두고도 살인사건이 빨리 종결되지 못하는 이유인 그의 다중인격은 '인터뷰'를 더욱 위태롭고 불안정하게 흔들면서도 미스터리 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심리 변화와 내면의 고통을 세밀하게 표현해내는 것은 온전히 배우의 몫이다.

싱클레어 고든 역은 이지훈, 김재범, 김경수, 이용규, 고은성이 맡았다. 각 배우에 따라 나타내는 연기 디테일과 캐릭터 표현 방법이 달라서 보는 재미가 더해지는 이들의 연기는 작품 전체를 아우르며 극을 이끈다. 특히 김경수의 연기는 배우의 열연이 작품을 얼마나 돋보이게 할 수 있는지 증명했다. '인터뷰'의 첫 공연부터 섬세한 연기를 선보인 김경수는 본체인 '맷'부터 겁 많은 어린 소년 ‘우디’, 퉁퉁대지만 사실은 정 많은 우디의 쌍둥이 누나 ‘앤’, 강하고 폭력적인 ‘지미’, 냉철하고 속내를 알 수 없는 관찰자 ‘노네임’까지 각 인물의 특색을 잘 살려냈다. 목소리 톤은 물론, 선 자세, 손가락 하나의 행동까지 다름을 나타내어 차별성을 확실하게 보였고, 나잇대와 성격이 다른 인물들의 매력 포인트를 잘 집어내 연기하는 배우의 매력은 물론 극 중 모든 인물에게 시선이 머물도록 입체적인 연기를 선사했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소녀 조안 시니어는 아픔을 간직한 아이다. 조안은 어린아이처럼 맑고 순수한 신비스러움을 지닌 동시에 이 이야기를 가장 잔혹한 동화로 만들어버리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꿈 같은 목소리, 격양되었다가, 성숙해지는 목소리까지 넓은 범위를 모두 감싸 안아야 하는 조안 역은 김주연, 민경아, 김다혜, 임소윤이 활약했다. 이 중 김주연과 민경아는 서로 다른 매력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프레스콜에서 이미 검증된 실력을 뽐낸 김주연은 동화처럼 맑고 투명한 목소리가 강점이다. 소녀의 사랑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외모 또한 조안 역에 잘 부합되는데, 맷을 버리고 가겠다는 단호함을 표현할 때는 싸늘한 표정으로 반전 매력을 드러냈다. 민경아는 아이와 성인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깊이 있는 목소리로 조안을 나타냈다. 그의 풍부한 표현법은 인물을 한층 더 매력적인 인물로 드러나게 했다.

긴 공연 시간 내내 단 한 번의 퇴장도 없이 무대를 지키며 긴장의 끈을 이어주는 유진 킴 역할에는 이건명, 민영기, 박건형, 강필석, 임병근이 함께했다. 마치 대극장 작품을 연상시키는 배우들의 라인업을 봐도 알 수 있듯, 극 중 유진 킴에게 요해지는 연기의 무게감은 굉장하다. 유진 킴은 실질적으로 극을 진행시킨다. 세 인물 중 가장 정상인 같지만,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유진 킴. 그가 과연 무엇을 바라는가에 대한 의문은 조명도 비치지 않는 의자에 앉아 싱클레어를 관찰할 때 더욱 증폭된다. '배우들의 배우'라고 불리는 이건명은 유진 킴으로 명불허전 클래스의 저력을 증명했다. '인터뷰'에 변화를 몰고온 뉴 캐스트 박건형은 슬픔과 참담함 속에 묻어나는 '그럼에도 견뎌내야 하는 이 상황'의 감각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자극적인 소재에 녹아있는 슬픔을 묻히지 않게 했다.

미스터리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를 고조시키는 것은 음악이 한 몫 한다. '인터뷰'는 단 한대의 피아노 연주로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 간의 신경전을 밀도 있게 표현해 극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높인다. 공연 기간 내내 원캐스트로 피아노를 책임진 강수영 피아니스트는 환상적인 강약 조절과 감 좋은 연주 템포로 유진 킴과 싱클레어의 심리 싸움에 긴장감을 빈틈없이 채웠다. 더군다나 캐스트의 수가 많아 각 배우의 대사 속도나 흐름의 성향이 다름에도 강수영은 누구와 붙어도 최고의 케미를 만들어냈다. 이에 대해 강수영은 "그저 배우들과 연습을 많이 했을 뿐"이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기억의 조합을 상징하는 조각난 무대와 캐릭터의 심리를 대변하는 다채로운 조명은 관객의 이해를 돕고 소극장의 한계를 넘어 다채로움을 선사했다.

한편, 뮤지컬 '인터뷰'는 대학로 TOM(티오엠) 1관에서 오는 20일까지 공연된다.

(사진 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