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병헌/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이병헌/CJ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POP=이미지 기자]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궁금해”

지난 2012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로 12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는 배우 이병헌이 오랜만에 사극으로 귀환했다. 바로 ‘남한산성’을 통해서다. 더욱이 ‘남한산성’은 팩션사극이 아닌 정통사극이다.

이병헌은 극중 치욕을 감수해 후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이조판서 ‘최명길’ 역을 맡았다. 이에 최근작에서 선보여온 폭발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대신 최대한 절제, 묵직하면서도 섬세한 감정 연기를 펼쳤다.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헤럴드POP과의 인터뷰에서 만난 이병헌은 ‘최명길’에게 푹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김상헌’(김윤석 분)이 직구 스타일이라면, ‘최명길’은 모든 감정들을 누르고 있다 싶었다. 아주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도 돌려서 은유적으로 이야기하는 거다. 그렇게 캐릭터를 잡았다.”

이어 “되게 실리적인 인물이면서도 멋있다고 생각했다. 왕에게 ‘환궁을 하더라도 상헌은 끝까지 데려가십시오. 유일한 충신입니다’고 하지 않나. 목숨 위태위태한 와중에 자신과 목에 핏줄 터지게 싸운 상대임에도 불구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에 무서울 정도로 이성적인 사람이다 싶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영화 '남한산성' 스틸

특히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의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문장들을 최대한 살렸다. 이병헌은 어려웠지만, 이로 인해 ‘최명길’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남한산성’은 정통사극을 표방해 김훈 작가님의 원작 대사들을 살리려고 했었다. 생경한 단어들이 들리기도 하지만, 그 단어들을 한 문장으로 표현했을 때 의미가 왠지 전달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물론 쏟아내야 할 때는 NG가 난 적도 있었지만 좋았다. 옛스러움은 ‘최명길’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는 방법이었다.”

‘내부자들’의 명대사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은 이병헌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남한산성’에서는 애드리브를 시도해볼 필요가 없었다. 다만 한 장면에서만큼은 의견을 제기했다.

“원래 애드리브를 안 좋아하는 편이다. 다만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야기해주고, 같이 만들어나간다. ‘남한산성’은 워낙 시나리오 완성도가 기가 막힌다. 작가님의 주옥같은 대사들이 가득차 있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애드리브가 필요 없었다. 하지만 ‘김상헌’과 격렬하게 자기 뜻을 주장할 때는 처음으로 왕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직구로 날리자고 요구했었다. 일주일 뒤 대사가 바뀌었다. 하하.”

배우 이병헌/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이병헌/CJ엔터테인먼트 제공

무엇보다 이병헌은 삼전도 굴욕의 순간을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체험하게 됐다. 슬픈 감정을 억눌러야 하니 쉽지 않은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상황이니 혼이 나간 느낌으로 촬영에 임했다. 말로만 상상하던 일이 현실로 일어난 것 아닌가. 왕의 옷에 먼지가, 또 이마에 흙이 묻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된 거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사람임에도 격하게 터져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백성을 살리자고 한 것이지만, 결국 왕이 자신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 왕만큼이나 힘든 내면 상태라 생각했다. 눈물이 터져 나왔지만 소리를 낼 수는 없으니 이 악물고 참으며 울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이병헌은 자신이 ‘최명길’을 연기하기는 했지만, ‘김상헌’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돼 둘 중 어느 한 명의 편을 들 수는 없다고 털어놔 인상 깊었다. 또 그게 이 영화의 관전포인트라고 강조했다.

“둘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모르는 게 슬픈 부분이었다. 소신과 방법을 가진 두 충신의 마음을 다 이해하니깐 둘의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와 닿았다. 평소 어떤 색깔을 갖고 있었든, 아예 관심이 없었든, 중간 입장이든 모두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참여했던 배우로서 관객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나처럼 누구든 선택을 못할 것인지 궁금하다. 그런 생각으로 보면 더 의미 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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