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안태현 기자] 잔혹한 현실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고통이 존재한다.
세상은 약자를 향한 강자의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 힘의 논리로 인해 돌아가는 세상에서 약자들은 숨을 쉬지 못하고 각자의 공간으로 도피한다. 그 속에서 스스로를 약자라고 규명한 남자는 흐느낀다. “당신에 난 가족조차 지키지 못한 힘없는 노동자야. 그리고 저들에게 난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벌레만도 못한 놈이지. 내 삶은 지옥이고 내 영혼은 점점 끔찍한 유령으로 바뀌고 있어”라는 말을 읊으며 흐느끼는 남자의 등은 처량하다. 숲은 남자의 울음을 삼키고, 그 울창한 나무들로 상처를 가린다. 남자는 진정한 도피를 이룬 것이 맞을까.
영화 ‘숲속의 부부’는 자본의 세계에서 가장 힘없는 노동자 성민(김성민 분)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해직 노동자 성민은 파업 투쟁을 이어가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또한 힘 있는 자들이 가하는 폭력을 목격하고는 성민의 마음속에는 일말의 두려움이 생겨난다. 두려움은 도피로 이어지고, 성민은 아내와 함께 숲 속으로 들어와 자기만의 공간을 꾸리고자 한다. 외부 세계와 단절되기 위한 성민의 부단한 노력이다.
하지만 영화는 성민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꽤 긴 분량을 차지하는 에필로그를 먼저 끌어온다. 에필로그 속 중심이 되는 인물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몸을 파는 여대생(이주희 분)과,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성민의 아내(황금희 분)다. 성민의 아내와 달리 여대생의 이야기는 성민의 이야기와는 어떠한 연결고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로 뚝 떼어놓고 보면 또 다른 영화 서사를 이어붙인 듯한 느낌을 들게 만들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여대생 이야기가 ‘숲속의 부부’의 에필로그로 필요했던 이유는 이들의 이야기가 가지는 감정이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숲속의 부부’는 내러티브 구조를 명확히 하기보다 이미지와 각각의 상황이 전달하는 감정에 더욱 의미를 둔다. 내러티브는 그저 극적 상황을 전달하는 부속으로 활용되며, 영화의 전반을 담당하지 않는다. ‘숲속의 부부’는 계속해서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지긋지긋한 고통의 이미지들을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전작 ‘타운’ 3부작과 ‘무게’, ‘성난 화가’를 통해 파격적인 이미지들을 내보였던 전규환 감독의 뚝심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전규환 감독은 이번 ‘숲속의 부부’를 통해서도 거침없고, 또 집요하게 고통의 감정을 스크린 속 이미지에 담으려 노력한다.
그렇기에 ‘숲속의 부부’는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영화다. 기존의 영화들처럼 서사가 중심되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숲속의 부부’는 그런 의미로 회화적인 영화다. 관객 스스로가 이미지를 통해 서사를 유추해내야 한다. 관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를 받아들이게 되고, 영화는 한 편의 필름이 아닌 다양한 의미로 스크린 위에 투사 된다. 감정 역시 다양하다. 고통을 중심으로 산재되는 감정들이 관객마다의 의미로 스며든다. 여기에는 안타깝게 이번 작품을 유작으로 남기게 된 故 김성민의 연기가 한 몫을 크게 담당한다.
故 김성민은 약자가 자신의 공간 속에서 어떻게 위축되고 광기의 인물이 되가는 지 연기하며, 꾸밈없는 감정을 드러낸다. 또한 故 김성민과 황금희는 영화 속 이미지를 위해 파격적인 노출에 도전한다. 배우들의 영화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구석이다. 이런 故 김성민의 연기에 대해 전규환 감독은 “정말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다”며 “연기를 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배우였다”고 얘기했다.
끊임없이 파격적 이미지를 끌어와 관객들에게 충격을 선사하고자 한 전규환 감독. ‘숲속의 부부’ 또한 그 연장선에서, 또 다시 스크린에 큰 충격을 선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지가 잔인해지기 시작”하는 시간, “비극 앞에선 몸들의 소름이 숨을 조여 온다. 죽음은 우리의 영혼을 해방시켜준다고 플라톤이 속삭인다”는 영화 ‘숲속의 부부’는 뚜렷한 이미지로 한국의 잔인한 현실을 더 잔혹하게 그려낸다. 2월 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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