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안태현 기자] 중년의 로맨스는 터부가 아니다.
KBS2 주말드라마 ‘같이 살래요’(연출 윤창범/ 극본 박필주)는 그간의 드라마들과는 결이 다르다. 물론, 출생의 비밀과 같이 이미 많은 드라마들에서 사용된 소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같이 살래요’는 이를 전면으로 끌어오지 않는다. ‘같이 살래요’에서 주가 되는 이야기는 중년로맨스다. 이 부분이 확실하게 그간의 드라마들과 차별점을 만드는 구석이다. 기성의 드라마들은 젊은 청춘 남녀의 사랑에 포커스를 맞춰왔다. 가족드라마들의 경우,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에 헌신해야하고 그 가정을 지켜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은 큰 비중이 없었거나, 아예 다뤄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려의 시각도 존재했다. 60대의 사랑을 누가 흥미 있게 볼 것인가라는 의문들이었다. 일전에 영화 ‘장수상회’,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 노년의 사랑을 그린 작품들이 존재했지만, TV드라마에서 중년의 인물들이 등장해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대개 중년의 사랑이 보기 민망하다는 이유. 그렇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청춘이 독점한 일종의 특권이 됐다. 세대 간의 불평등이었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사랑이 존재했다. 늙어가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뎌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며, 정상적인 것을 부끄러워하는 비정상적인 인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같이 살래요’는 터부시되던 중년의 로맨스가 민망하지도 않고, 흥미가 없는 것도 아니며,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라는 프로파간다의 성격을 띠었다. 대중들은 이러한 ‘같이 살래요’의 메시지에 응답했다. 중년의 사랑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얘기하기 보다 더 빨리 극 중 박효섭(유동근 분)과 이미연(장미희 분)이 이어지기를 응원했다. 물론, 그동안 형식화되었던 로맨스 장르에 역할만 치환한 것이기에 쉽게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중년의 로맨스를 터부시하던 분위기가 확실하게 타파됐다는 것은 꽤 괄목할 만한 성적이다.
유동근은 이러한 중년의 로맨스가 결국에는 인생을 얘기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8길에 위치한 한 음식점에서 진행된 ‘같이 살래요’의 기자간담회에서 유동근은 기획단계부터 박효섭과 이미연의 로맨스는 “연기자 입장에서 굉장히 좋은 장치였다”고 얘기했다. 그는 “젊은이들의 로맨스는 이미 많은 드라마에서 많이 봐왔던 장치들이지만, 60대의 로맨스는 그간 주말드라마에서 해보지 않은 시도였다”며 ‘같이 살래요’가 가지고 있는 중년로맨스라는 소재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어 유동근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부모님에게 ‘연애하세요’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됐다”며 “또 아이들에게는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서 엄마, 아빠에게는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지도 이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나이 드신 분들은 그저 자식 잘 키우고 공부 잘 시키는 게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유동근은 “(결국 중년의 로맨스는) 노년들에게도 자기 인생을 계발할 수 있도록 하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그간 중년의 로맨스가 허락되지 않은 건 대중의 시각이 문제가 아니라 노년의 삶에 대한 너무나 전형적인 시선들이 존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소설 ‘은교’에는 이러한 문장이 등장한다. 우리 사회는 늙음을 터부시한다. 늙음은 결국 감정의 고갈이며, 삶을 모두 통달한 듯 그저 제자리를 지키는 고승처럼 우상화시킨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젊음과 늙음의 차이란 그저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살아왔느냐다. 중년의 로맨스가 부끄럽지도 거북하지도 않다는 것은 결국 많은 대중들이 가져온 늙음에 대한 경계의 빗장이 풀린다는 것의 의미다. 결국 그것이 ‘같이 살래요’의 궁극적인 이야기, 모두 함께 살아간다는 뜻이 아닐까.
popnew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