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이인희 기자]조선 시대 이우 왕자가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이유는 무엇일까.
28일 방송된 MBC '서프라이즈'에서는 누구보다 독립을 꿈꾸었던 조선의 마지막 황족 이우 왕자의 숨겨진 이야기가 방송됐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의 차남으로 태어난 이우 왕자는 1922년 11살의 나이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에서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본이 벌인 여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에 그는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친일인명사전'에는 뜻밖에도 이우 왕자의 이름이 실려있지 않다. 이후 이우 왕자의 숨겨진 이야기가 세상에 공개됐다.
이우 왕자는 "일본의 음식은 먹고 싶지 않네. 침략자의 음식을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는가"라며 사실 누구보다도 일본을 증오했다. 일본 군인이 된 것도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것. 그는 일본에 온 후에도 일본어를 쓰지 않고 한국어를 사용해 마찰이 잦았다. 음식과 문화 등 일본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우는 "혼인 만큼은 내 나라의 여인과 하고 싶다"며 조선인과 혼인을 결심했다. 당시 조선 왕족의 혼인은 일왕의 허가가 있어야만 할 수 있었다. 이우도 일본인과의 정략결혼을 강요당했으며, 이미 일본 왕실에서 정한 일본 여인이 있었다. 하지만 이우는 박영효의 손녀딸 박찬주와 결혼하려 했고, 결국 아버지인 의친왕과 박영효의 도움을 받아 한국 여인과 결혼했다.
그 후 중국에서도 일본 일선 부대로 전출된 이우는 그곳에서 연합군을 조직했고, 독립 세력을 키우기 위해 비밀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이렇게 3년여에 걸쳐 남몰래 독립을 꿈꾸던 이우는 1945년 다시 일본으로 전출명령을 받게 됐다. 사실 이우의 계획을 눈치챈 일본의 조치였다. 그렇게 일본으로 가기 전 잠시 고국으로 돌아온 이우는 일본으로의 귀환을 차일피일 미뤘다. 그런데도 한 달 뒤 히로시마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우가 근무지로 처음 출근한 날은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날이었다. 길거리에서 피폭된 이우는 다음 날 사망하고 만다. 그는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의해 사망한 유일한 왕족이었다. 왕자의 유해는 고국으로 돌아왔고, 경성운동장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수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이러한 이우에 대한 진실은 기록으로 남아있진 않았으나 뒤늦게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이우 왕자는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유족에 동의도 없이 합사되었다. 유족들은 신사에서 이우의 이름을 빼달라고 항의했지만, 야스쿠니 신사 측은 사망 당시 이우가 일본인 신분이었다는 이유를 들며 현재까지도 유족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현재 그의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의 운현궁 가족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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