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박서현기자] 예리코 작전을 제안한 나라는 어디였을까.
22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서프라이즈'에서는 예리코 작전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야기는 이랬다. 한 교도소 상공 위에 나타난 수많은 전투기들. 그것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구출 작전의 시작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후 큰 화제가 된 작전이 있었는데 '예리코 작전'이라고 불리는 작전이었다. 나치 독일로부터 프랑스저항군들을 구출하기 위한 것.
영국 정보국은 프랑스저항군 측과 긴밀한 작전을 가졌다. 아미엥 교도소에 당시 프랑스는 나치 독일이 점령한 상태로 영국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 교도소는 '아미엥 교도소'로 나치 정권을 반대한 정치범 717명이 수감돼있었다. 당시 12명의 프랑스 저항군을 사형시킨데 이어 곧 100명 이상의 대규모 사형이 집행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는 것.
하지만 아미엥 교도소는 나치 독일의 경비가 삼엄했고, 사형 집행 예정일도 20일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구출 작전을 벌이기 쉽지 않았다.
얼마 후 프랑스 측이 제시한 방법대로 구출하기로 합의했고 8일 후인 2월 18일 영국군에 의해 본격적인 작전이 펼쳐진다. 그리고 며칠 후 영국 정보국은 보도자료를 통해 예리코 작전이 성공했으며 79며의 프랑스저항군을 포함한 258명의 정치범들이 안전하게 탈출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알려진 바와 달리 예리코 작전이 실패한 것이라는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프랑스저항군의 구출 방법은 교도소에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계획에 따르면 낮 12시 폭탄을 실은 폭격기들이 아미엥 교도소에 접근한 뒤 나치범이 교도관들이 식사 중인 곳에 폭탄을 투하하고 그와 동시에 교도소 외벽에 폭탄을 투하해 벽을 무너뜨려 프랑스 저항군들을 밖으로 탈출시키자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근의 기차역을 파괴해 공격대상을 위장하기로 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그와 달랐다. 실제로 작전 당일 18대의 영국군 폭격기가 아미엥 교도소 상공에 도착했지만 오히려 42명이 다치고 102명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게다가 간신히 교도소를 탈출한 258명 중 155명은 곧 다시 나치군에 잡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조사 결과 당시 아미엥 교도소에서 프랑스저항군을 사형시킬 계획은 없었다고 했다. 프랑스저항군의 대단위 사형은 사실이 아니었고 어느 문서에도 그런 계획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자 영국 정보국은 프랑스 측에서 제시한 대로 작전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프랑스 측은 예리코 작전은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했다. 그들은 오히려 영국의 양동작전 중 하나일 거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영국 정보국 책임자는 아미엥 교도소의 공격을 담당한 영국군의 감사편지가 발견돼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양측은 서로 부인하며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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