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사람이 좋다' 방송 캡처
MBC '사람이 좋다' 방송 캡처

[헤럴드POP=천윤혜기자]가수 김호중이 '미스터트롯'을 통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트바로티로 거듭났다.

14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트바로티 김호중의 일상이 그려졌다.

요즘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트바로티 김호중.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후 외로움을 많이 겪었다고. 그는 "어머니도 아버지대로 재가를 하셔서 혼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며 할머니와 같이 살아왔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하지만 할머니마저도 세상을 떠난 지 오래. 그는 "어른 만나면 인사 잘하고 싸우지 말고 박수받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며 할머니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그는 진짜로 박수 받는 사람이 됐다. '미스터트롯'이 끝난 지 한 달, 그는 MBC 표준FM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시대' 생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방송국을 방문했다. 그는 정선희와 문천식을 보고는 "연예인이시지 않나. 신기하다"고 긴장했다.

하지만 막상 방송이 시작되자 그는 "노래 덕분에 마음이나 몸이 치료됐다는 글을 볼 때마다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하는가 하면 라이브로 노래를 완벽하게 불러 눈길을 모았다.

김호중은 '미스터트롯'에 출연한 것에 대해 "이 프로그램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정말 땅을 치면서 후회했을 거다. 처음 정했던 종착지보다 더 좋은 종착지에 내린 것 같다. 도전을 하고, 꿈을 꾼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스터트롯'에서 불렀던 '고맙소'의 원곡 가수인 조항조는 김호중과 만났다. 조항조는 "나도 울었다. 은사님하고의 이야기를 할 때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 극찬했다. 조항조는 또한 "성악했으니까 스탠드 마이크가 잘 어울렸다. 한 음 한 음을 정말 잘 부르더라. 연습 많이 했구나 했다"며 "'고맙소'가 다시 태어난 거 아닌가.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덧붙이기도.

김호중은 경연 당시 머물렀던 집에서 새 집으로 이사를 갔다.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시작을 맞이한 그는 "행복한 나날이다. 될 수 있으면 일을 할 때도 많이 즐기려고 하는 스타일이다"고 감개무량한 변화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학창시절을 보냈던 울산을 찾았다. 다니던 초등학교를 돌아보던 그는 "학교 끝나고 데리러 와주시는 부모님들이나 형제 있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며 "1년에 한 번씩 새 학기 때 등본을 떼오라고 하는데 등본에 저랑 아버지밖에 없어서 부끄러웠다. 종례 시간 끝나고 펑펑 울면서 선생님께 드렸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 옆에 오래 있어준 게 CD 플레이었다. 음악이 저하테 친구가 되어주고 형제가 되어줬다"며 당시 음악을 통해 외로움을 달랬음을 전했다.

모교였던 김천예고를 찾은 그는 인생의 스승을 만났다. 고등학교 은사였다. 그는 "오늘의 저를 만들어준 분"이라며 선생님을 소개했다.

김호중은 예고에 진학했지만 비행청소년이라는 꼬리표를 얻으며 방황했어다고. 그는 "돈이 필요했고 돈이 있어야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무 탱크 안 청소도 했었다. 결국에는 음악이 하고 싶은데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원망도 생기고 자신이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수용 선생님과의 만남은 터닝포인트가 됐다 "'너는 노래로 평생 먹고 살 수 있겠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전재산을 다 걸겠다'고 하셨다. 그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다"고 했고 그는 선생님의 지원 속 음악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특히 그는 SBS '스타킹'에 출연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김호중은 "그 때 1승을 했는데 선생님이 삼겹살을 사주면서 우셨다. '너무 잘했다. 잘 할 줄 알았다' 하시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김호중은 서수용 선생님 앞에서 성악을 다시 불렀고 이를 듣던 선생님은 "트로트로 가지 마라"고 하며 "지금은 트로트 괴물이라고 불리는데 그땐 트로트 괴물이었다. 대학교 보낼 때도 걱정 반 기대 반이었는데 지금도 똑같다"고 덧붙여 눈길을 모았다. 두 사제지간의 이야기는 영화 '파파로티'로도 만들어졌다.

독일과 이탈리아로 유학을 다녀왔지만 여전히 그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귀국 후 잠시는 국가 행사에 초청되는 등 성악가로 탄탄대로를 달리기도 했지만 하지만 대중에게 잊혀져갔고 그는 생계를 위해 결혼 축가 전문 가수로 활동하기에 이른 것. 그는 "돈을 주기로 했는데 안 주시더라. 몇 년 간 결혼식 축가도 부르고 동창회, 운동회 가서도 노래를 많이 했었다. 그런 것조차 없었으면 굶어 죽었다"고 밝혔다.

절친한 선배 가수 진시몬을 만난 뒤 그는 할머니의 묘소를 찾았다. "할머니는 제 인생에서 부모님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셨지 않나 생각이 들 만큼 소중하신 분"이라며 할머니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는 또한 "함께 웃고 울고 춤추고 항상 옆에 있는 가까운 가수가 되고 싶다. 언제든 김호중이라는 사람을 생각했을 때 '저 사람 노래하는 사람이지', '믿고 들을 수 있어' 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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