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박서현기자] 유재석, 조세호가 가업을 잇는 '자기님'들을 만났다.

24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더 블록(이하 '유퀴즈')'에서는 가업을 이어가는 '자기님'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첫 번째 자기님은 증조할머니 레시피로 16년째 벨기에 전통 와플을 굽는 패트릭 반 울풋이었다. 한 여의도 맛집 바로 옆 와플집 사장이라는 패트릭은 "방송국 손님이 정말 많아서 방송국 카드 많이 봤다. 코로나 전엔 하루에 와플 1000~1500개를 팔았다. 옛날에 매장 하나 있던 시절에는 혼자 수제 반죽을 했었는데 지금은 매장이 좀 많이 생겨서 기계로 반죽 중"이라고 전했다. 매장이 총 10개 있다는 패트릭에 조세호는 "큰 형님"이라며 호칭을 바꿔 웃음을 자아냈다.

패트릭은 "2002년에 교회 사람들과 2주간 관광을 왔었다. 그 다음에 벨기에에 돌아갔는데 (한국이)너무 좋아서 돌아오고 싶었다. 그래서 2년 뒤 한국 신학교에 입학했다. 사람들 마음이 따뜻했고 한국 인터넷 너무 빨라서 좋더라"라고 말해 공감을 더했다.

현재 팔고 있는 리에주 와플은 증조할머니가 전수해준 레시피. 패트릭은 "주셨다. 20년 전 레시피북을 잃어버려서 속상한데 다 기억한다. 어머니가 와플을 만들어주시면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와 계속 연습을 해서 레시피북 없어도 완전히 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자기님은 2대째 한국 전통 명란을 지키는 장종수 씨. 장종수 씨는 "저는 지금 부산에서 아버님 뒤를 이어 2대째 명란을 만들고 있다. 아버님께서 77년부터 명란연구를 하셨고, 대한민국 수산제조 1호 명장으로 지정돼 있다. 3년 전 돌아가셨는데 지금도 수산제조 명장은 없다"고 답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2006년부터 사업을 잇게 된 장종수 씨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해 졸업을 못하고 호주 유학을 가 졸업을 해 아버지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었고, 마음의 빚 때문에 서울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부산으로 내려가게 됐다고. 그는 "과거 우리나라 시장이 없고 일본 시장이 컸기 때문에 일본 수출을 했었다. 지금은 저희가 일본 시장 없이 100% 국내로 하고 있다. 아베노믹스 때문에 1,500까지 갔던 환율이 890까지 떨어졌다. 수출이 의미가 없었다. 그 때 일본에 수출을 많이 하던 기업들이 거의 수출을 중지했다. 그 때 너무 어려웠고 중요한 건 이때 국내 시장 자체가 열리지 않았던 시점이라 대안이 없었다"며 "2016년에 자사 공장을 매각하고 이사를 갔다"고 힘들던 때를 회상했다.

우리나라의 명란시장이 되살아나는데 큰 공을 세운게 배우 김사랑이라는 장종수 씨는 "2017년 초에 김사랑 씨가 명란 아보카도를 어느 프로그램에 나와서 먹으셨었다. 이후에 정말 인기를 끌어서 매출을 110억으로 끌어올렸다. 다행히 2017년부터는 내수 시장만 가지고 흑자 전환을 할 수 있었다. 정말 기사회생했다"면서 "모르시겠지만 사실 명란 산업에 정말 큰 공헌과 기여를 해주셨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김사랑에게 영상편지를 써 눈길을 끌기도.

장종수 씨는 "원래 명란은 우리나라가 원조다. 일본이 우리보다 시장이 10배 정도 크다. 그래서 국민음식이 된거다. 우리나라에선 단순히 원조가 아니라 명란 자체가 명태에서 나오는데 우리나라 수산 부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명태다. 다른 나라는 다 먹지 않는데 우리 나라는 다 먹는다. 한반도의 수산 쪽에서는 제일 많이 유통되는 국민 생선인데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에서 명란을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밝혀 유재석, 조세호를 놀라게 했다.

장종수 씨는 "살짝 얼어있는 명란을 자르고 밥에 올려 참기름을 뿌려 먹는다. 우리나라 전통 명란은 들기름이랑 먹는다. 밥하고 들기름하고 명란을 김에 싸서 먹어야한다. 치즈, 꿀, 전통명란을 같이 먹으면 와인 안주로 딱이다"라고 맛있게 먹는 비법을 공개하기도.

마지막으로 장종수 씨는 "저는 질문과 (아버지에게)과제를 물려받은게 아닌가 싶다. 아버님이 황무지 폐허와 같은 곳에서 일궈왔는데 제가 이어받아서 저만의 색깔로 응답해야한다는 과제가 있지 않나 싶다. 아버님은 하늘나라에 가면 만날거니까 그때 '참 잘했다 수고했다'라는 이야기를 꼭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1953년에 시작한 신당동 원조 1호 떡볶이집. 2대 며느리, 3대 손녀가 '유퀴즈'를 찾았다. 2년 전 유재석, 조세호가 촬영 중 식사를 한 곳으로 잘 알려져있기도 하다. 며느리 김선자 씨는 "어머니가 아들만 다섯 분이다. 그래서 아들 다섯 며느리 다섯이다. 첫째 형님이 연세가 좀 있어서 둘째, 셋째는 차려서 분가했고 막내 아들은 옆에서 떡볶이 집을 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그야말로 떡볶이 집안인 것.

김선자 씨는 "76년도에 시집을 와서 바로 했으니 46년 정도 했다. 비법 소스는 세 명의 며느리가 같이 만들고 있다"며 "어머니가 2011년에 돌아가셨는데 5년 전에 알려주셨다. 어머님이 하는 일이 있었고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소스를 만들면 우리는 그 소스로 판매를 했었다"고 했다.

당시 매출은 며느리도 모른다고. 김선자 씨는 "팔아놓으면 어머니가 오셔서 싹 가셔가셨다. 돈 가져갈 때는 비닐봉지에다가 가져가셨다"며 웃음을 지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김선자 씨는 "어머니는 오로지 가게 밖에 모르셨다. 젊음을 가게에 헌신했다. 비법 소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단골손님 중 앙드레 김이 있었다는 김선자 씨는 "옆 테이블에 학생들이 와있으면 꼭 같이 계산해주셨다. 계산을 해주시면 팁도 주셨다. 그래서 앙드레김 선생님을 위한 하얀 앞치마도 해놨었다. 앙드레김 선생님이 머리에 흑채를 뿌리지 않나. 얼마 전에 펴봤는데 앞치마에 까만게 묻어있더라. 그립고 안타깝다"고 전했다.

또한 손녀 박은순 씨는 "신당동을 다시 살아나게 해주신 경수진 배우님이 너무 고맙다. 방송 이후 신당동 일대가 마비가 됐었다"며 "경수진 님 어묵이랑 쫄면 서비스로 드릴게요. 꼭 오세요"라고 즉석 영상편지를 남겨 폭소를 더했다.

마지막 자기님은 4대째 105년 대장간의 불씨를 이어가는 전만배·전종렬 씨였다.

전만배 씨는 "중국 국경이 개방되면서 농기구가 쏟아져들어오는데 20분의1, 30분의1로 들어오더라. 살아남을 방법을 찾다가 차에 칼 몇천자루 실고 5년 동안 전국의 칼 사용자를 만났다. 집마다 칼 몇 자루 없는 집이 없더라. 조금만 더 쓰기 편하고 더 잘 들면 돈의 구애를 받지 않더라. 노량진 수산 시장이 칼에 대한 안정적 수요가 있지 않나. 거기서 대장간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하루 만원, 이만원 번 적도 있어서 많이 힘들었는데 자신감은 있었다. 나를 믿어주는 분들이 있더라"라며 힘들었지만 일에 열중할 수 있었던 때를 회상했다. 이연복은 서울 사업장의 고객이라고.

전종렬 씨는 "원래 사육사가 되고 싶어서 애완동물과를 갔었다. 사육사 되는 게 만만치 않구나 싶어서 고민하다가 아버지 일을 도왔는데 하다보니 벌이도 어느 정도 노후가 보장돼있고 기술직이지 않나. 안 그래도 아버지가 후계자 때문에 골치가 아프셨다. 장래 고민을 하다보니 아버지의 고민이 보이더라. 결국엔 후계자라는 자리가 아들 밖에 없는 것 같더라. 가업이라는 게 결국 타인한테 들어가기가 쉽지 않겠구나 싶었다"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에 전만배 씨는 "사실 안 했으면 했었다. 내 고생은 내 선에서 끝내길 바랐다. 좀 더 편하고 깨끗한 직업. 하루에 16시간, 17시간 일하는 거 안 했으면 했다. 마지막 휴가 나와서 그러더라. 이 기술을 배우면 서울 사업장을 물려주시겠냐고 하더라. 네가 10년 안에 인정하는 만큼 하면 조건 없이 주겠다고 했다"며 아들에게 물려주게 된 때를 떠올리기도.

전종렬 씨는 "자세를 하나 알려주시면 일주일간 익힌 자세를 주구장창 했었다. 항상 그 생각한다. 아버지는 맨몸으로 뛰어들었는데 저는 따라가는거지 않나. 칼을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을 최면처럼 한다"고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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