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 캡처
tvN '벌거벗은 세계사' 캡처

[헤럴드POP=김지혜 기자] 최태성이 핵무기에 대해 밝혔다.

지난 6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역사 강사 최태성이 핵폭탄에 대해 강의했다. 게스트로는 타일러, 서민재 교수가 함께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히틀러보다 먼저 핵폭탄을 만들어내기 위해 비밀리에 암호명 '맨해튼 프로젝트'에 착수,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다. 또한 1945년 7월 16일 그 위력을 확인하기 위한 핵무기 실험 트리니티 테스트에 나서 핵무기의 파괴력까지 확인하게 됐다.

이 트리니티 테스트보다 4년 앞선 1941년 하와이 오아후섬 진주만이 공습을 당했다. 당시 태평양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일본을 저지하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석유를 포함한 모든 수출을 금지하자 결국 일본은 동남아 지역 유전으로 눈길을 돌렸고, 이를 위해 미국에 대한 선제 타격이 필요하다고 판단, 그것이 진주만 공습이었다는 것.

진주만 기습에 성공한 일본은 이후 기세를 몰아 미드웨이 해전을 감행했으나 오히려 역습을 당하고 태평양 주도권을 미국에 빼앗기게 됐다. 그러나 항복을 수치로 여긴 일본은 자살 특공대 가미카제까지 동원하며 저항했고, 미국은 전쟁을 종결시키려 도쿄에 소이탄을 무차별 투하했으며 원자폭탄 '리틀보이'까지 히로시마에 투하했다. 또한 3일 만에 핵폭탄 '팻맨'을 나가사키에 투하하면서 결국 일본의 항복을 이끌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함은 당연한 수순. 이처럼 핵폭탄 피해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나라는 일본이긴 하지만, 두 번째 피해국은 다름아닌 한국이었다. 두 번의 핵폭탄 투하로 인해 당시 한국인 사망자는 약 4만 명이 발생했고, 피해자만 7만 명에 달했다고. 이는 식민지라는 이유로 일본에 노동력을 착취당해야 했던 영향이 컸다.

최태성은 이뿐 아니라 또다른 이유로 더 많은 한국인 피해자가 양산됐다며 "정리나 재건을 위한 사후처리 때문에 조선인들이 동원됐다. 보호장비 없이 강제 노역을 해야 했고 그 도시 청소로 피폭자 수가 늘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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