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주 기자] 가수의 꿈을 펼치기 위해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 방배동 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기획사 문을 두드렸지만 줄줄이 낙방했다. 편의점과 호프집에서 일을 하다가 응시한 Mnet ‘슈퍼스타K1’. 감미로운 목소리와 특유의 미소로 75만 3503명 중 최후의 1인이 됐다. 생애 첫 1등이었다. 그렇게 마이크만 잡을 줄 알았던 그가 6년 후 배우로 우뚝 섰다. 여전히 노래도 부르고 연기는 제법인 데다 가끔 진행까지 맡는다. ‘팔방미인’의 대명사가 됐다. 휴대전화 판매원에서 ‘영국판 슈퍼스타K’로 세계적 오페라 가수가 된 폴포츠만큼 흥미로운 인생을 사는 남자 서인국(28)이다.
“‘이번에는 이걸 해봐야지’ 어떤 계획이나 도전을 세워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참 다양한 일을 했네요. 제 인생, 정말 재밌네요(웃음). 특히 배우는 잘생겼거나 특별한 재능을 지닌 사람만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제가 배우라니요.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서인국은 자신이 배우로 불리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했지만 출연한 작품만 10편에 이른다. 지난 2012년 연기 데뷔작인 ‘사랑비’ 이후 3~4개월에 한 작품씩 참여하며 쉴 새 없이 달려온 부지런한 배우다. 지난 5일 종영한 KBS2 사극 ‘왕의 얼굴’은 서인국의 필모그래피를 한 단계 올려준 작품이 됐다.
지난 3개월 동안 뼛속까지 광해군으로 살았다. 권력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했던 부친 선조(이성재)의 횡포에 휘둘리는 불운의 왕세자이자 부친에게 첫사랑 가희(조윤희)마저 빼앗겨 반쪽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사내로 시청자를 쥐락펴락했다.
이 시대가 원하는 올바른 수장의 모습을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암시한 이 작품의 여운에 아직 취해있는 듯했다. 특히 광해를 떠나보낸 심경에 대해 표현하면서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제가 맡았던 캐릭터 모두 사랑스러웠어요. 이번에는 광해를 만나서 정말 좋았죠. 긴 꿈을 꿨다고 해야 할까요. 광해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광해를 만나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연기가 더 재밌을 것 같아요.” 사극 데뷔는 만만치 않았다. 우선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에 익숙해야 했다. 서인국은 사극과 친해지기 위해 온종일 사극 드라마만 틀어 놨다. 말투부터 몸짓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색다른 광해를 표현하고 싶어서 목소리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뛰어들었다.
“사극만 틀어놓고 생활했어요. 다만 광해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보지 않았죠. 조금이라도 익숙해지면 따라할 것 같아서요. 저만의 광해를 만들고 싶었어요. 제게 다가온 광해는 자유분방한 인물이었거든요. 15세부터 표현해야 했기에 그 나이에 맞게 발랄하게 연기했죠. 어린아이의 젖살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살도 찌웠고요. 시간이 흐르고 왕이 되면서 목소리와 자세에 무게감을 줬어요.”
막상 뛰어드니 현장에서의 고충도 따랐다. 한겨울을 오롯이 지나온 작품이다 보니 추위와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 동생 신성군(원덕현)의 살해 누명을 쓴 뒤 마구간에서 말똥을 치우는 장면만 봐도 추위가 느껴지는 듯했다. 당시 눈발이 날리는 매서운 날씨에 가벼운 차림으로 차가운 진흙 바닥을 뒹굴던 모습이 선연했다.
“사극은 한 마디 한 마디 정확하게 표현해야 해서 에너지 소비가 많더라고요. 캐릭터의 감정 기복도 심해서 표현하기 어려웠고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추위였어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왕의 얼굴’을 찍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목이 길고 눈매가 날카로워서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게다가 이 드라마는 바로 그 얼굴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작품이라 부담감이 더 컸다.
“덜컥 하겠다고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 얼굴이 사극에 안 어울릴 것 같았어요. 고민을 하다가 촬영 전 관상가를 찾아가 ‘왕 역할을 해도 되겠냐’ 물어봤다니까요(웃음). 다행히 눈썹이 짙고 곧게 뻗어서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자신감이 조금 생기더라고요. 제가 미남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거든요. 눈매가 날카롭고…. 한마디로 특이하게 생겼죠. 미남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어요(웃음). 굳이 장점을 꼽자면 독특해서 강하게 기억되는 것 같아요.”
얼굴이라는 큰 산을 넘으니 캐릭터가 발목을 잡았다. 조선 15대 왕인 광해는 여러 작품을 통해 자주 표현됐던 캐릭터라 신선한 느낌이 떨어진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이병헌, MBC ‘불의 여신’ 이상윤, SBS ‘왕의 여자’ 지성, 연극 ‘광해’ 배수빈 등 인기 배우들이 광해라는 옷을 입고 벗었다. 서인국은 패기와 열정을 앞세워 자신만의 광해를 표현했다. 어려울 때마다 동료 배우들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조윤희 선배는 막내라서 유독 잘 챙겨줬고, 이성재 선배는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천성이 따뜻한 분이라 촬영 내내 행복했다”라고 말했다.
‘왕의 얼굴’ 광해처럼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서인국. 이 작품의 메시지에 빗대 자신이 나아갈 길에 대해 말했다.
“이 드라마는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 아닌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광해가 관상이 아닌 심상을 봐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요. 저도 제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열심히 하지 않았을 거예요.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기에 달려왔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시청자가 극중 캐릭터로 배우를 기억해주신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처음 알았어요. 캐릭터로 말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재밌는 인생을 살도록 노력할게요(웃음).”
서인국은 가수로 첫 발을 내딛은 만큼 노래 부르는 것에도 열심을 내겠다고 했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제 감성을 담은 노래를 직접 써서 낼 것”이라는 각오를 밝히며 국내에서도 조만간 앨범을 낼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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