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나희 기자]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순간 모든 것을 함께했던 친구들부터 아련했던 첫사랑까지. 영화 '순정'(감독 이은희)을 보고 있자니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 떠오른다. 하지만 비슷할 수도 있었을 이들의 운명은 한 가지 사건을 계기로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닮은 듯 다른 추억 여행으로 관객들을 초대한 '순정'. 1991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보낸 초청장에는 과연 무슨 내용이 담겨있을까.
※ 해당 기사에는 '순정'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는 라디오 생방송 도중, 23년 전 과거에서 온 편지를 받고 1991년을 회상하는 DJ 형준(박용우)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당시 전라남도 고흥의 한 섬에는 5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남자보다 더 털털한 길자(주다영), 마라톤 선수를 꿈꾸는 산돌(연준석), 아줌마 뽀글 머리가 인상적인 개덕(이다윗), 말은 별로 없지만 진득한 모습으로 믿음을 주는 범실(도경수), 그리고 아픈 다리를 가진 만인의 첫사랑 수옥(김소현)이다.
남자와 여자의 사이를 떠나 한 섬에서 오랫동안 함께 해온 이들의 우정은 참 해맑다. 특히 다리가 아픈 수옥을 위해 바다 건너 섬에 놀러 가거나 노래자랑에 참여하는 네 친구들의 노력은 가상하면서도 따뜻하다. 다섯 명의 배우들은 마치 원래부터 친구였던 것처럼 환상의 호흡으로 반짝이는 청춘의 단면을 보여준다.
추억 여행에서는 첫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친구들의 사랑을 받는 수옥. 그중에서도 범실, 산돌, 개덕이 그에게 품는 마음은 좀 특별하다. 특히 범실은 수옥의 창문 아래서 그의 목소리를 몰래 듣거나 그를 지켜보고 항상 업어주는 등 무뚝뚝하지만 믿음직한 모습으로 설렘을 자아낸다. 아픈 다리에 절망하는 수옥을 곁에서 지탱해주는 모습에선 이미 소년이 아닌 한 사람의 남자로 성장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과 사랑은 아직 신체나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십 대이기 때문에 때때로 불안해진다. 단순한 친구가 아닌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눈 뜨는 시기라서 더욱 그렇다. 그리고 아픈 상처를 입은 성인 버전의 형준, 길자(김지호), 민호(박해준), 용철(이범수)의 등장은 이들이 행복하게 마무리된 쌍문동 5인방과는 다른 운명으로 갔음을 암시한다.
'순정'은 자연스럽게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십 대들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잡아낸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응팔'과 닮아있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이문세의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존재와 캔자스의 '더스트 인 더 윈드(Dust In The Wind)', 아하의 '테이크 온 미(Take On Me)', 무한궤도의 '여름이야기',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등의 음악들이 들려올 때면 더욱 그렇다.
특히 추억을 회상하는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은 '응팔' 뿐만 아니라 지난 2011년 개봉했던 영화 '써니'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다. 다만 아픈 다리를 가진 수옥의 상황과 아련한 첫사랑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흐름을 달리한다. 서로를 좋아하는 범실과 수옥의 이야기가 다소 짧아 아쉬움은 남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은희 감독이 원했던대로 '그때 그 시절 순수했던 감정'을 담아내는 데는 성공한 듯 보인다. 오는 2월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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