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기사는 ‘가능한 사랑’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헤럴드뮤즈=김민지 기자] 완전한 행복 전엔 불완전함이 있고, 가능 이전엔 불가능이 도사리고 있다. 가늠할 수 없는 자유에 대한 환상은 늘 인간에게 욕망을 가져오기 마련.
이창동 감독은 ‘가능한 사랑’을 통해 타인은 ‘감히’ 알 수 없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그려냈다. 가능성을 비추는 저마다의 달을 쫓으며.
영화 ‘가능한 사랑’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21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렸다. 이날 현장에는 이창동 감독,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배우가 참석했으며 전도연은 뉴욕에서의 연극 상연 일정으로 인해 화상으로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녀의 남편,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이라는 점은 물론,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일찍이 수상과 함께 공식 초청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앞서 ‘가능한 사랑’은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한국 영화 최초의 기록이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대해 “지금 살고 있는 현실, 한국 사회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세계를 단순하고 쉽게 이야기하기보다 여러 층위에서 단순하지 않게, 오히려 복잡한 모습들을 감추고 있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라면서 “그것들을 관객들과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보면 해고 노동자 이야기, 어떻게 보면 계급 갈등 이야기, 어떻게 보면 영화 만드는 사람의 윤리 등에 대한 이야기 같다. 이처럼 여러 층위를 두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과 느끼고 생각하고 질문을 나누고 싶어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전도연과 설경구의 호연으로 시작된다.
전도연은 해고 노동자인 ‘호석(설경구 분)’의 아내인 ‘미옥’역을 맡았다. 미옥은 마스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총파업이 가족에게 남긴 후유증 속에서도 상처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인물.
전도연은 자신이 살아온 이외의 세상에 대한 꾸밈없는 동경을 눈빛 하나로 표현한다. 전도연은 “미옥 입장에서 돈과 계급은 사람의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가치를 앗아갈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미옥은 그럼에도 자신의 가치를 지켜낸다. 그에겐 ‘자유’가 가장 탐내게 되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영화 후반부, 자본에 삶이 뺏길 것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미옥은 그야말로 자유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전도연은 이에 “미옥의 자유의지를 표현하는 강렬한 감정신”이라며 “감독님께 온몸으로 정체성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신이라고 이야기를 들어 그에 집중해서 연기했다”라고 말했다.
설경구는 해고 노동자 ‘호석’ 역을 맡았다. 호석은 총파업과 강제 진압 현장에서 겪었던 일들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후유증을 겪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절제된 연기, 그리고 후반부 울부짖음은 압도적인 몰임감을 선사한다.
설경구는 어떤 마음으로 호석을 이해했을까. 그는 “호석은 평범하더라도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낀 사람이었는데, 해고를 당하고 감옥도 다녀오며 자아가 완전히 깨진 상태를 겪었다. 여기에서 오는 수치심과 죄책감과 분노 등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며 위축되는 느낌이 생긴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그려내는 감독 ‘예지’는 조여정이 연기한다. 해고 노동자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감독으로 분한 조여정은 다큐를 통해 카메라 속 사람들을 ‘기꺼이’ 사랑하고자 한다.
조여정은 “예지는 충만한 삶, 관계라는 건 경제적인 안정감과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걸 생각하게 되는 인물”이라면서 “삶에서 자신이 채우지 못한 걸 영화를 통해 담는, 그런 ‘탐하는 마음’이 예지의 욕망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석했다.
이창동 감독은 조여정의 캐릭터 예지가, 감독인 곧 자신과 가장 닮아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예지는 영화를 만드는 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라며 “제가 영화를 만들 때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의 삶. 그들의 이야기에 대부분 고통이 담겨 있다. 그래야만 이야기가 되니까. 그런데 그것이 영화의 재료로 만들기 위한 어떤 서사의 재료로 소비해야 하느냐는 늘 경계에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극에서 예지는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남편에게 기대지 않고, 독립영화 지원 사업을 따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과정에서 정말 자본이 없는 사람들의 기회를 뺏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는다.
이에 이창동 감독은 “창작하는 사람들은 자본의 도움을 빌리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자기만을 생각해 남의 고통을 탐하고 착취하지 않고 그 속에서 어떤 진실 정말로 사랑하려고 하는 마음이 존재하느냐. 그게 가능한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해석했다.
조인성은 조여정의 남편 ‘상우’로, 부유한 집에서 나고 자라 해고 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아내 ‘예지’를 옆에서 응원하고 돕는다. 상우는 극 중 가장 부유한 이다. 어쩌면 해고 노동자와 가장 반대의 선상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멀찍이 떨어져 상황을 관찰하며 다소 냉소적으로 말을 내뱉기도.
조인성은 “현실에서 가진 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일상과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며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안에 어딘가에 숨어 행동하는 인물로 돈의 양면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상우가 유일하게 흐트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조인성은 “상우가 가지고 있는 돈이 어떤 면에선 불편한 친절을 제공하지만 반대에선 냉정한 독을 가졌다. 특히 원하던 사업의 성공 소식을 듣고 상우는 ‘원하는 대로 되는구나’하는 환상에 빠진 상태가 되는데, 이때 갖지 말아야 할 것을 갖겠다는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이 무섭게 느껴졌다”고 표현했다.
‘가능한 사랑’은 호루라기와, 관찰자 시점의 아이 등 다양한 메타포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평등이 무너진 노동의 세계에서 출발한다. 그런 지점에서 파업을 겪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노동자들은 ‘죽은 자’,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산 자’라고 부르는데 그 과정에서 영화는 죽은 자들의 심리 치료 과정을 꽤 오랜 시간 보여준다.
이창동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하는 예지가 담으려는 내용, 인터뷰하고 취재하는 내용 자체를 영화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내용에 있어서도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는 사람의 시선과 내용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영화적으로는 그냥 상황을 설명하는 정도로 처리할 수 있는데, 일부러 마치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전달해 주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두 부부의 이야기면서도 해고 노동자 또는 노동의 문제에 있어서 자기 삶이 파괴되고 자기 일을 잃어버려 정체성을 상실하고 텅 빈 자아를 느낀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그리고자 하는 이야기”라고 의도한 바를 설명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은 9월 23일 극장 개봉,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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