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은주 기자]“고 김자옥 죽음 내 탓 같았다…꽃할배 그만할까 고민했지만”
나영석 PD가 내놓은 ‘꽃보다’ 시리즈부터 ‘삼시세끼’를 들여다보면 하나의 맥락을 따라 흐른다. 바로 인간미이다. 평소 살아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놓는 게 그의 연출 색깔이다. 날 것의 살아있는 느낌이 묻어난다. 나영석 PD도 이에 동의했다.
“휴머니즘을 좋아해요. 그렇다고 일부러 울리는 건 싫고요. 저도 제 마음이 가는 것만 하는 것 같아요. ‘삼시세끼’도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니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때 제작진이랑 ‘시골에 가서 밥이나 차려먹고 평상에 앉아서 책이나 읽었으면 좋겠다’ 푸념했죠. 농담처럼 하다가 나온 프로그램이 ‘삼시세끼’였어요.” “하는 작품마다 잘 되는데 스트레스 받을 일이 뭐가 있겠냐”고 재차 묻자 “나도 직장인”이라고 답했다.
“길 가다가 사인도 해주고 카메라에 얼굴도 나오니 어떤 분들은 제가 연예인인 줄 알아요. 전 회사원입니다. 대부분의 회사원처럼 윗사람 눈치 보면서 월급 받고 살아가죠. 그런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회사원이라면 다들 겪는 것이겠죠. 저도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tvN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참 공감했습니다.”
“다만 예능은 철저하게 판타지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 팍팍한 게 얼마나 많습니까. 드라마도 보는 게 피곤할 때가 많더라고요. 현실은 시궁창인데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눈에 들어올까요. 지친 시청자 분들이 제 프로그램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래도 난 저렇게 살지 못하지’ 한탄할 수 있겠지만 ‘잠깐이라도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이런 마음을 가지시길 바라요.”
갑자기 고향이 어딘지 궁금했다. “충청북도 청주 사람”이라고 답하며 수줍게 웃었다. 지난 2013년 인기를 모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지방에서 올라온 삼천포(김성균)가 서울역에서 10시간이나 걸려 신촌 하숙집으로 오는 장면이 바로 나영석 PD의 이야기였다.
“대학교 때 서울로 올라왔죠. 삼천포가 하숙집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저의 경험입니다. 물론 도시 변두리에서 성장해서 농촌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내놓은 건 아니에요. 프로그램은 PD 혼자만의 성향으로는 전체를 끌고 갈 수 없어요. 저를 비롯한 작가 및 스태프와 뜻이 맞아야죠. 다행인 건 다들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는거죠. 도시보다 농촌이 편한 사람들이에요. 그런 점들이 프로그램에도 녹아드는 것 같네요.” ‘꽃보다’ 시리즈도 여행이라는 인위적 장치가 들어갔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시청자도 이를 알아줬다. 그러던 중 ‘꽃보다 누나’를 같이 촬영했던 배우 김자옥이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인 지난해 11월 16일 대장암에 의한 합병증으로 투병 끝에 숨지자 죄책감이 엄습했다.
“김자옥 선생님이 그렇게 되니까 ‘내 탓인가’ 자책을 많이 했어요. 나중에 유족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꽃보다 누나’ 촬영갔던 것을 정말 좋아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얘기 듣고서 선생님 가시기 전에 좋은 일을 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마음에 평안이 오더라고요. 사실 늘 겁이 나죠. 연세가 많으신 어른들에게 언제 어디에서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꽃보다 할배’도 애착이 가는 시리즈인데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꽃보다 할배’는 이제는 그만 해도 되는 프로젝트예요. ‘누나’도 잘 됐고, ‘청춘’도 반응이 좋았거든요. ‘꽃보다 할배’ 출연했던 어르신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는데요. 저희를 볼 때마다 다음 여행은 언제 가는지 물어보시면서 굉장히 기다리시더라고요. 그러면 저희도 ‘당연하죠. 빨리 가야죠’ 말씀을 드려요. 그렇게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다시 떠나게 되는 것 같아요.”
‘꽃보다 할배’ 제작진은 오는 2월 중순쯤 중동 방문을 목표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요르단을 주요 후보지라고 보도했으나 세부 사항은 결정된 바 없다. 나영석 PD는 ‘꽃보다’ 시리즈부터 ‘삼시세끼’에 이르기까지 힘들 때마다 도와줬던 배우 이서진을 향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나영석과 이서진의 인연은 3년 전 ‘1박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영석 PD는 깔끔한 외모를 가진 이서진이 허당기 많은 모습에 관심을 보이며 ‘미대 다니는 형’으로 캐릭터를 잡아줬다. ‘1박2일’ 출연은 배우 활동을 주로 해온 이서진에게 제2의 예능 전성기를 가져다줬다. 이후 ‘꽃보다 할배’에서 ‘짐꾼’으로 다시 한 번 기용하면서 예능 날개를 달아줬다.
“서진이 형에게 고마운 게 참 많아요. 더 이상 바라는 건 없어요. 지금도 정말 잘해주고 있으니까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적합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야 해요. 늘 카메라가 돌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서진이 형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딱 맞죠.”
이서진과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던 나영석 PD는 어촌편까지 그를 끌어들이지 않았다. “이서진 옥택연 조합은 정선편에서 가장 빛나는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1년 동안 정선의 풍경, 집, 사람, 계절이 변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거든요. 다만 겨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어촌으로 가게 된 거죠. 그렇다고 서진이 형을 어촌으로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웃음). 그는 이제 정선에 집이 있고 살림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가 사랑하는 염소와 닭 등 정선에 뿌리내린 감정을 흔들고 싶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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