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POP=김나율기자]장트리오가 12.12 사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1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2'('이하 꼬꼬무2')에는 엑소 카이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카이는 평소 '꼬꼬무'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오늘의 이야기는 국방부 헌병대였다. "대한민국 별이란 별은 다 여기 있었다. 군 생활이 하루하루가 고달팠다. 병장이 되서 3개월 남은 정 병장이 내무반에서 쉬고 있는데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다"고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은 말했다.
이어 "진돗개 발령되면 휴가 다 취소되고 전시 태세다. 전투 태세에 돌입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그런데 아무도 이유를 모르는 거다. 지시 사항도 없다. 그렇게 야간 근무를 서는데, B-2 벙커에서 서게 된 거다. 얼마 안 된 신병이 보초를 나섰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병 대신 정 병장이 나섰고, 새벽 1시 30분쯤 총소리가 들렸다. 어디인지 살펴보는데, 길 건너 육군 본부 쪽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바로 벌컨(대공화기)이었다. 누군가 육군본부와 국방부에 쳐들어온 거다. 총을 겨눴는데 어둠 속 그림자가 보였다. 수십 명이 벙커를 둘러쌌다"고 했다.
총격전 후 총소리가 멈췄다고 말하며 "갑자기 누군가 정 병장을 겨눴다. 그런데 다 우리 군복을 입고 있더라. 바로 공수부대였다. 후임병은 이미 무장해제가 됐다. 순간 정 병장은 적군을 발로 차고 벙커로 뛰었다. 정 병장은 총을 맞고 쓰러져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정선엽 병장. 공수부대 최고사령관은 정병주 장군이었다. 진돗개 하나 발령 후 정병주 장군은 여단장을 불러 모으는데 자리에 없는 거다. 연락 안되는 지휘관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다는 황당한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그들은 30단장에 모여 전두환을 기다린 것.
장도연은 "이날이 바로 생일집 잔치가 열리는 거였다. 바로 정승화 체포 작전명이었다. 이는 바로 육군 참모 총장이었다.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실세는 보안사령관 전두환이었다"라고 했다.
전두환은 정승화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2억을 내밀었다고. "전두환이 한직으로 좌천된다는 소문이 퍼졌고, 전두환은 특단의 결단을 내렸다. 정승화를 끌어내린다는 것. 전두환은 투스타, 정승화는 포스타인데 체포하면 하극상이다. 체포하려면 대통령의 오케이 사인이 필요하다."
이어 "최규화는 정치적 야망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결재를 쉽게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귀에 먼저 들어갈까봐 걱정했다. 대통령 결재를 받는 동안 정승화를 체포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찝찝한 사람이 3명이 있었다"라고 했다.
또 "전두환은 3명을 불러 유인한 후 최규화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 그러나 예상 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장관 사인이 없던 것"라고 말하며 "육군 참모 총장은 납치가 됐다. 그래서 군은 전 부대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길었던 밤이 시작됐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육군본부는 사태를 인시했다. 육군본부는 30단에 있는 사람들을 반란군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진압하려면 계령사엄부의 지시가 있어야 하는데, 연락이 안되는 거다. 국방장관을 찾는 사람은 전두환도 마찬가지였다. 국방장관은 공관에서 쉬고 있었는데, 밖에서 총소리가 났다. 총소리가 나자마자 가족을 데리고 피신해 도망갔다"고 했다.
총장, 국방장관 없는 초유의 지휘 공백 상태가 된 거다. 반란군은 진압군을 회유하기로 했다.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본 사람은 특전사령부 보안장관 김충립이었다. 김충립은 "정병주 장군을 전두환 사령부실로 불러오라는 거였다. 정병주 장군은 쿠데타한 놈들에게 안 간다고 했다"라고 했다.
전두환의 지시에 정병주 장군의 부하인 1공수, 3공수, 5공수가 반란군에게 넘어갔다. 이들의 정체는 군내 비밀 사조직 하나회였다. 하나회의 보스는 전두환이었다. 장성규는 "하나회 가입을 위해선 뒷조사를 한다. 결국 유일하게 남은 9공수에게 출동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1공수 여단장은 병력 1,500명을 끌고 서울로 향했다. 장성규는 "만약 1공수가 서울로 오면 전두환 것이 되는 거다. 9공수는 부평에서 출발했다. 먼저 도착하는 부대에 따라 역사가 달라지는 거다"라고 했다.
장도연은 "반란군이 서울을 오려면 한강을 건너야 한다. 서울에 있는 한강을 다 막아버렸다. 1공수는 행주대교로 돌아와야 했다. 9공수는 경인고속도로로 빠르게 왔다"라고 했다.
결국 9공수가 유턴하면서 12월 12일의 밤은 반란군의 밤으로 끝났다. 장도연은 "끝까지 반란군에 맞선 정병주 장군을 체포하라고 했다. 체포령이 떨어지고 부하가 다 도망갔다. 정병주 장군은 특전사의 전설이었다. 정병주 장군은 권총을 꺼내 실탄을 장전했다. 그리고 마지막 명령으로 '5분 대기조 출동. 사령부를 보호하라'라고 했다"라고 했다.
사령실에는 김오랑 소령이 있었다. 장항준은 "김사령은 꿈쩍도 않고 실탄을 장전한 채 들어가 문을 막았다. 정병주 장군과 함께 끝까지 버티기로 한 거다. 그때 3공수가 왔다. 문 하나를 두고 총격적이 일어났다. 얼마 뒤 총소리가 멈췄다. 김오랑 소령과 정병주 장관 모두 피를 흘려 쓰러져 있었다"라고 했다.
국방부 장관은 새벽 4시에 발견됐다고. 장성규는 "국방부 1층 계단에 숨어 있었다. 전두환이 요청한 지 11시간 만에 서명했다. 최규화는 시간을 따로 남기며 사후재가임을 알렸다. 간밤에 자고 일어난 시민들은 탱크를 보고 놀랐다. 이제 전두환의 세상이 왔다"라고 했다.
장성규는 "반란군에 맞섰던 장군들은 고문이 혹독한 조사실로 향했다"라며 "김오랑 소령의 부인은 남편이 죽은 줄 모르고 기다리다가 실명됐다. 이후 봉사를 하며 지냈는데 추락사로 죽었다. 정병주 장군은 정권이 바뀌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당시 대선 후보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단일화가 실패하며 노태우가 당선됐다고. 장성규는 "다시 하나회 세상이 된 거다. 선거 이듬해 정병주 장군은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묘비는 백비였다"라고 이야기를 마쳤다.
끝으로 장트리오는 "당시 나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라며 희생을 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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